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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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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어리디 어린' 대학생이다. 아직까지 읽어본 책도 많지 않고, 지식이나 인생의 깊이도 낮다. 하지만 데미안은 나에게 특별한 느낌이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때부터 이 책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데미안과 나와의 만남은 초등학교 6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흥미로운 책 제목과 함께 항상 학급 도서의 문고판으로 자리를 꿰차고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데미안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책을 워낙 안 읽는 나였지만, 한 번 떠들어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데미안을 안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첫 장을 읽으려는 순간, 같은 반은 유식한(?) 남자아이가 '데미안은 내 꺼야' 하고 보던 걸 뺏어가 버리는게 아닌가.... 이상한 자식 다 보겠네 하고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데 이후로 중학교에 올라와서 도서관에서 본 데미안은 나를 다시 유혹하고 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진지하게 읽어주자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는데, 의외로 재미있다는 생각과 함께 고전도 읽을 만 한게(?) 있군 하는 친근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는 고전이라면 진지하게 어쩌구저쩌구 떠드는 머리 아픈 책들이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데미안의 쏙쏙 들어오는 문장은 나에게 그 책의 의미를 떠나서 큰 기쁨을 주었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 대학교에 입학하고, 1년이 지난 최근에 나는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수필집에서 데미안에 대한 전혜린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데미안이 그렇게 위대한 책인지 그 때까지 잘 몰랐다. 독일의 전몰학도들의 배낭에서 발견되었다는 데미안. 전혜린의 친구가 죽기 직전까지 읽고 있었다는 데미안.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정신적 지주 전혜린이 빨간줄까지 찍찍 그어가면서 책종이가 닳아지도록 읽었다는 데미안이 자기를 다시 찾아주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당장 대학도서관에서 데미안을 찾아왔다.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가서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데미안을 차근차근 의미를 새기며 읽어나갔다.

한장 한장 읽을 수록 느껴지는 헤세의 지적 향기, 젊은이들의 방황.. 날고 싶은 초인으로의 욕망. 그의 글들은 아름답기 그지 없으면서도 하나의 구도를 제시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고전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고전은 나이가 들수록 읽을 때마다 의미가 새로워야 한다고 어떤 학자는 말했다. 나의 영원한 고전은 아마 데미안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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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루나
이사벨 아옌데 지음, 황병하 옮김 / 한길사 / 199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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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반의하며 읽었던 소설. 중남미 문화를 체게바라 평전 이후 두번째로 접하게 했던 소설. 무엇보다도 소위 진보적 남성들이 행한다는(?) 사회운동 내에서의 나의 불만, 나의 의문을 말끔히 해소시켜준 소설. 에바루나는 책을 덮는 순간,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느기게 됐다는 만족감에 충만하도록 해준다.

특히 내가 인상깊게 봐둔 부분.

이제는 그는 자신을 스스로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건장한 남자로 자처하고 있었지만 나는 여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불행이고, 그래서 다른 여러가지 보호와 제약을 받아야 한다고 그는 믿고 있는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나는 결코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었다. 우베르토는 이성적인 판단력을 갖게 된 이래 항상 그런 식으로 생각해왔고, 혁명조차도 그러한 그의 태도를 바꾸어놓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우리들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게릴라들이 제기하는 사회악의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그가 그의 꿈을 꾼다하더라도 내게는 평등이 주어지지 않을 거 같았다. 나랑호와 그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민중이란 단지 남성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들도 투쟁에 공헌 할 수 있어야 하는데도 우리들은 결정권과 힘으로부터 제외되어 있었다. 그의 혁명은 내 운명의 본질을 바꾸어 놓을 수가 없고, 어떤 경우에서든 나는 내가 살아있는 마지막 날까지 내 스스로의 길을 나 혼자서 개척해야 될 것이리라. -P.290~291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한 남자선배가 여자들의 순종적이고 가정적인 모습을 강요하면서, 노동자 권익 수호를 외쳐대는 모습이 모순으로 느껴지고, 그 선배가 가식적이고 혐오스럽게 보였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이제는 제대로 반박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들이 말하는 노동자를 위한 민중을 위한 사회혁명에 여자는 없다고, 당신들 머리 속에서 노동자와 민중은 남자만을 지칭한다고.......'

한편 이 소설에는 이사벨 아옌데의 사회운동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녀가 글을 쓰는 이유를 여주인공 에바루나의 입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저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예요. 현실은 하나의 혼란이고, 모든 것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측정하거나 판독 할 수가 없어요. 지금 우리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당신 등 뒤에서는 크리스토발 콜론이 아베리카를 발견하고 있고, 그를 맞아들이고 있는 색유리창 속의 인디언들은 당신의 사무실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정글에서 여전히 발가벗고 살고 있고, 앞으로 백년은 더 거기서 그렇게 살고 있게 되겠지요. 저는 바로 그 미로 속에 하나의 길을 열고, 그 혼돈 속에 약간의 질서를 부여하고, 인간상황을 좀 더 참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보려는 거예요 제가 글을 쓸때는 그렇게 바라는 것을 쓰는 거지요.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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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전집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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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슈타인 가이더는 '소피의 세계'에서 '정상인 듯한 인간 세계에 의문을 품고, 작은 자연현상 하나에도 호기심을 품는 사람'은 누구든지 철학자라고 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러한 철학의 정신을 정확하게 구현해 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태어난 해는 1882년으로, 여성이 보통 선거권을 얻은 시기와 대략 일치한다.

그녀는 '지극히 정상인 듯한 인간 사회'에 의문을 품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로 '인간평등'이 실현되고, 계급이 타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여성들은 옥스포드 대학 도서관에 연구원을 동반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지, 캐임브리지 대학의 만찬에 비해, 뉴운엄 대학(여자대학)은 변변한 식단없이 재정난에 허덕이는지.. 이 모든 것들이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모순으로 비춰졌으나, 그 시대의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그 사실은 당연하게 받아들여 졌다.

그렇다면 왜 여성은 가난하고, 사회적 약자로써 존재하는가? 그 이유는 여성이 남성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여성의 열등함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우월성과 권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남성은 여성을 희생시킴으로써, 스스로 비인간화되었고, 이는 여러 약탈과 제국주의적 야욕의 기반이 되었다. 여성의 역사는 성적 억압의 역사였고, 끊임없이 자아실현의 기회에서 물러나도록 조장되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적절한 예를 '세익스피어의 누이'라는 허구적 인물을 만들어 설명한다. 즉 세익스피어와 똑같은 재능을 가진 누이가 있었다면, 그녀의 누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장치에 의해 창조적 능력을 말살 당하고, 이단시 되거나 심지어 미치기조차 했을거라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 울프는 100년후라면 여성이 자신의 생각을 창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될 거라 낙관했다.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고, 여성권익은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사고는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이 책에서 '자기만의 방'이 뜻하는 말은 여성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뜻한다. '방'이 의미하는 것은 '창조적인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즉 '자기만의 방'은 자아실현을 위해 여성 스스로 소극적이고, 의지하려는 마음을 과감히 버리라는 의미다.

결국 그녀는 남녀가 지극히 평범한 사회를 느껴보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녀의 노력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 곳곳의 여성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몇 년전 '여성부'가 신설되어 '제도적'차원에서 여성의 보호(?)를 도모하고 있지만, 그 제도 아래에는 '여성은 약자'라는 전제만이 무섭게 존재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표면적인 면보다 전체적인 안목, 정신의 개혁이 필요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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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범우사상신서 3
에리히 프롬 지음. 방곤,최혁순 옮김 / 범우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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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의 에세이 중에 대표적으로 '사치의 바벨탑'이라는 글이 있다.(전혜린-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여성들이 스스로 능력을 발휘하며 존재를 추구하는 삶을 살지 않고, 소비라는 수단 즉 예쁜 옷이라던가 비싼 가방 신발 등등의 물질만을 추구함으로써 스스로 비 본질적인 삶에 빠져서 그 삶이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줄 것 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러한 소유욕은 욕심을 부릴수록 사라지지 않고, 더욱 증폭된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는 전혜린이 말한 여자의 소유욕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 팽배해 있는 소유 관념과 그로 인한 인간 소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우리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앞의 전혜린이 언급한 예처럼 소유물들을 많이 모음 으로써 만족할 것이냐, 아니면 스스로 물질에 의지하지 않고, 정신적인 순수성으로 이루어진 존재적 삶의 양식을 선택할 것이냐가 그것이다. 물론 후자가 우리의 장수(?)와 마음의 평안에 이로움은 이 책의 논리정연한 근거에 의해 밝혀 진다.

프롬의 책을 읽을 수록 느끼는 것은 그의 풍부한 통찰력과 인간에 대한 애정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데 있다.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말이 전혀 과장으로 들리지 않을 많큼 그는 학자로써의 냉철한 시각과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의 주장의 하나의 학파를 형성하지 못하고, 그가 주장했던 삶의 방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는 못했지만, 그의 학문은 우리 인간세상의 모순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도 여자들이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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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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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전혜린인데, 막상 서평을 쓸려고 하면 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점을 꼭 제시할 수 없을 만큼 그의 모든 점이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의 글은 읽고 해석해서는 안된다. 그대로 느끼기만 해도 그 감동이 뼛 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다. 앞에서 그가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했는데, 그도 그럴것이 우리나라의 여성 교육이 시작된 이례로 그녀만큼 뛰어난 정신을 소유한 인물은 거의 없었다고 나는 자부한다. 그녀가 죽은지 40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저작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시대를 앞서가는 그녀의 성찰성 때문일 것이다.

첫번째 에세이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는 그녀가 죽기 직전 출간을 앞두고 썼던 에세이다. 두 번째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는 그녀의 일기와 서간집에서 발최한 글들을 편집해서 출판한 것이다. (이미지에 나온 사진은 구판이고, 최근에 신판이 나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기와 서간집을 추천한다. 그녀의 고뇌한 흔적, 지적 향기는 그녀의 일기에서 더 강렬한 빛을 발한다.

전혜린은 한국 여성 최초로 독일 유학을 갔다온 사실 말고도, 그 의문스런 죽음으로 더 알려져 있다. 사인은 자살이라고 한다. 그의 일기를 보고 있으면, 그녀가 죽을 수 밖에 없었다고 믿을 수 밖에 없다. 그녀의 삶 대부분은 죽음에 대한 의문으로 그 생을 이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길게 쓰고 싶지 않다. 그녀의 저작들은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보지 말고, 꼭 사서 조금씩 음미해 보길 바란다. 사실 한 번 읽는 것으로 그녀를 알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알아갈 가치가 있는 여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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