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의 정수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10월
평점 :
저자 윌리암 해즐릿(William Hazlitt, 1778–1830)은
수식어가 여럿 따르는 인물입니다.
영국 메이드스톤 출신, 탁월한 에세이스트, 문예 비평가, 정치저널리스트,
급진적 자유사상가, 반체제 운동 옹호자가 그것입니다.
그의 작품들, 특히 에세이는 200년이 넘은 세월이 흘러도
문학계는 물론 여타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책은 국내에 소개된 3번 째 에세이집입니다.
표제작인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를 포함해
8개의 에세이가 실렸습니다.
「진부한 비평가에 관하여」는 일견 비평가들에 대한 비판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관점을 확장해 보면, 배웠다는 사람들, 즉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으로 보입니다.
지식의 축적이
인간성이나 공감 능력과는 별개일 수 있음을 언급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를 위해 배웠다는 이들이 오히려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상식적인 판단을 놓치는 경우를 예로 듭니다.
그들의 무지를 꼬집습니다.
진정한 지혜와 지식은 단순한 정보나 학문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국면을 이해하고,
타인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합니다.
「온화한 사람의 두 얼굴」은 겉으로 온화하고 친절해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는 결단력이나 진정한 도덕적 용기가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조명합니다.
온화함이 반드시 고결함을 뜻하지 않으며,
갈등을 피하려는 나약함이나 자기 보호적 태도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진정한 인격이란 단순한 온화함을 넘어,
정의와 진실을 위해 불편한 상황도 감수할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합니다.
「종교의 가면」은 위선적이고 공허한 언어와 주장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저자는 정치, 종교, 도덕 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럴듯한,
특히 지도자들의 말이 실제로는 진정성 없이 반복되며,
권력 유지나 사회적 체면을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고 꼬집습니다.
이는 진실을 가리고, 인간의 자율적 사고를 마비시킨다고 지적합니다.
진정한 도덕성과 신념은 외양이 아니라
행동과 일관된 삶에서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인격을 안다는 것은」는 인간의 자아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과 경험에 따라 변화하는 심리적 흐름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기억과 감정, 의식의 연속성 속에서 자아를 파악하는데요.
이런 과정과 흐름 속 우리가 동일한 존재라고 느끼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감정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돈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는 경제적 빈곤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지적 삶을 유지하려는 고뇌가 담겼습니다.
그는 돈이 없는 삶의 불편함과 사회적 소외를 솔직하게 묘사하면서도,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자유와 자율성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빈곤이 인간의 감수성과 창의력을 억누를 수 있으나,
동시에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도인 곡예사」는 인도 곡예사의 놀라운 기술을 묘사하며,
인간 능력의 한계와 예술적 완성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곡예사의 정밀하고 반복적인 동작을 통해
숙련과 집중의 위대함을 강조하는데요.
육체적 기술이 지적 성취 못지않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예술과 노동, 신체와 정신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진정한 아름다움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기울이는 헌신과 노력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는
젊은 시절 우리가 느끼는 영원성의 환상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청춘이 한창일 때, 죽음이란 멀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여기며,
삶은 무한히 펼쳐질 것처럼 느낀다고 말합니다.
이런 감각과 느낌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차 사라지고,
인간은 유한성을 자각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젊음에 대한 낙관 이면에 자리한 덧없음을 철학적으로 성찰하며,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로 이끕니다.
「병상의 풍경」은 병상에서 겪은 자신의 고립 경험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삶의 덧없음을 성찰합니다.
병에 걸려 누워 있는 동안 세상과 단절된 느낌,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인식 변화,
그리고 건강했던 시절의 기억들이 어떻게 감정적으로 되살아나는지를 묘사합니다.
저자는 병이 단순한 육체적 고통을 넘어, 존재의 의미와 인간관계,
삶의 가치에 대한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합니다.
책의 서문 격인 「옮긴이의 글」은 마치 시리즈 3권의 종합 혹은 결론으로 보입니다.
8편의 에세이에 대한 간략한 요약, 그의 생애와 배경,
철학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시대와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역자는 해즐릿의 글은
“계몽주의의 이성과 낭만주의의 감성을 잇는 다리였으며,
그의 문장은 때로는 시처럼 아름답고, 때로는 철학처럼 날카롭다.
그는 감성적이면서도 냉철했고, 도덕을 중시하면서도 위선을 경계했으며,
고독한 사색가이면서도 사회의 맥박을 누구보다 정확히 읽었다”고
평가하며 글을 마칩니다.
더불어 해즐릿이 우리에게 “훌륭한 벗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첨언합니다.
역자의 희망에 응답하고자 하는 분들,
자신의 삶과 주변을 “날카롭게”, “감성적이면서도 냉철하게”
통찰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이 글은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가의 삶과 글에 비해 저의 생각과 글쓰기가 ‘회색빛’이 돌며,
‘퇴행성관절염으로 절뚝거리는 다리’같다고 자각하며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