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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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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대학생서포터즈8기의 마지막 미션도서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입니다!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호모 데우스>에 이은 인류 3부작의 마지막 시리즈인데요. <사피엔스>가 다른 모든 개체를 뛰어넘어 지배자가 된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고, <호모 데우스>가 신이 된 인류의 미래를 개괄했다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인류에게 닥친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493쪽에 달하는 하라리의 21가지 제언은 총 5부에 걸쳐 저술됩니다.

1기술적 도전에서는 21세기 생명기술과 정보기술 혁명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인류가 지켜왔던 일자리, 자유와 평등이 도전받고, 위태로워질 미래를 그립니다. 특히 협력과 상호작용의 결과로 행성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인류가 미래에는 대다수가 사회와 점차 무관한 존재가 될 거라는 시나리오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이와 더불어 디지털 독재생물학적 계층 분화는 단지 영화 속 시나리오나 먼 미래의 일이 아니란 걸 느끼게 합니다. 정보기술사회로 진입한 이래, 데이터를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할 정도로 데이터의 힘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정보에 대해 소수와 대중이 부여하는 가치의 모순이 느껴졌는데요, 구글이나 아마존 등의 거대 기업은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개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나보다 내 취향을 더 잘 아는 AI의 등장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것은 이것이 가까운 미래에 인간 해킹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어떤 이유도 지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편, 대중의 정보 소비 성향은 뉴스 시장을 통해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공짜 뉴스를 소비하며, 모르는 사이 우리의 주의를 팔고 있습니다. 책은 이러한 뉴스 시장의 진실을 공짜로 무언가를 얻는 경우 당신이 상품이다라는 유명한 말로 설명합니다. (책의 한국 독자를 위한 77)

2정치적 도전은 공동체, 문명, 민족주의, 종교, 이민에 대해 다룹니다. 이 장에서 다루는 모든 키워드는 인간의 정체성 형성과 긴밀히 연결된 단어들이라고 느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류의 역사는 집단의 역사입니다. 인간은 오랜 과거에서부터 공동체를 형성하고, 문명을 창조하고, 민족주의와 종교로 단결했으니까요. 이민이라는 키워드가 현대에 와서 더 두드러진 것은 난민 문제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이 난민 문제는 민족주의와 연결돼 강력한 찬반논쟁이 오고 가고 있어요. 하라리는 이 장에서 인간 집단이 확립하기 위해 사용한 상징과 체계를 설명합니다. 이 상징과 체계는 개개인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세계관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차이를 통해 각 집단은 서로에게 선을 긋고 공동체 내의 이른바 동족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게 됩니다. 하지만 현재에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에 인류에게 닥친 문제는 지구 차원의 문제이며, 지구 차원의 문제에는 지구 차원의 해답이 필요합니다. 지구 차원으로 대처하는 일이란 지구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자유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감으로 각 사회가 붕괴하고, 불신하여 민족주의로 돌아서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민족주의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논의의 초점이 아닙니다. 내 나라, 내 민족에 대해서만 배타적인 선호를 보이는 열렬한 민족주의가 이민문제를 넘어서 세기의 문제로 떠오른 핵전쟁, 생태붕괴, 기술적 파괴라는 세 가지 문제의 현실적 대안으로 왜 적합하지 않은지 논의합니다.

3절망과 희망과 제4진실에서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다룹니다. 인간은 공포에 너무나 쉽게 반응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 앞에서 효율적인 대응보다 과잉대응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테러리즘과 전쟁의 역사 속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인간이 손쉽게 앎 밖에 있는 것을 신의 이름으로 설명하며 무지를 감추는 성향을 낱낱이 공개합니다. 이는 무신론의 윤리와 세속주의로 이어지는데요, 하라리가 종교를 부정하거나, 믿음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종교가 역사 속에서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발휘하는 힘의 원천에 대한 진실을 드러낼 뿐입니다. 세속주의자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진실입니다. 종교와 달리 믿음이 아닌 관찰과 증거에 기반한 과학적 진실에만 반응합니다. 진실, 연민, 책임에 가치를 두는 세속주의는 종교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준일뿐입니다. 하라리가 바라본 과학적 세속주의 가장 큰 이점은 자신의 그늘을 인정한다는 것인데요. 실수와 오류를 인정하고 변화를 실천하는 것이죠. 하라리는 자신의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사람보다 무지를 인정하는 사람을 더 신뢰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인간은 무지를 인정해야 합니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정보의 흐름 속에서 개인은 무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잡해진 세계를 이해하는 일 앞에서 인간은 무력해 보입니다. 하라리는 인간은 언제나 탈진실의 시대에 살아왔다고 말합니다. 허구를 만들고 믿는 시대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허구는 사피엔스종을 하나로 묶고 단결하여 지배자가 된 힘이었습니다. 인간의 허구와 신화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허구와 실체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하라리가 이 책을 쓴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허구와 실체를 구분하여 세뇌 기계에서 빠져나오는 것. 현재의 사피엔스들은 더 늦기 전에 이러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장은 5부 회복 탄력성입니다. 이 장과 연결해서 옮긴이의 글에서 인상 깊게 본 내용이 있었는데요. 옮긴이와의 인터뷰에서 하라리는 10대 시절 인생의 목표나 의미에 대해 궁금해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으며, 그런 것들을 몰라도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다음에 커서 일상적인 세상사에 함몰되지 않고 큰 그림을 이해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 다짐의 실천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문에서도 하라리가 밝혔듯이 우리는 일상의 문제에 치여 진정 중요한 걸 놓치고 있습니다. 무력감을 느끼며 회피하는 걸 수도, 아니면 정말 큰 크림을 보지 못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장기적으로 인류 사회를 붕괴시킬 어리석거나 무지한 선택입니다. 전통적인 교육은 인류를 기술 파괴로부터 지켜주지 못하고, 인생의 의미나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누군가가 정의해준 삶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래에는 그것이 초지능을 가진 알고리즘이 되겠죠. 지금까지의 방식이 괜찮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혹은 미래 세대에게도 괜찮은 방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세계는 과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라리는 책을 시작하며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하며, 이야기 안에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이야기란 인간들의 살아온 세월의 축적이란 단순한 의미를 뛰어넘습니다. 역사학자로서 하라리가 포착한 이야기는 목적이 있는 일종의 구조입니다. 이 구조는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의미 부여하기를 통해 믿음을 형성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그 모든 이데올로기나 종교, 세계관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외면이 아닌 내면에도 있습니다. 내면의 스토리텔러는 나만의 신화를 구축하고 정당화합니다. 자아가 나의 통제 밖에 있게 된 순간, 나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내 몸 기계에 갇힌 내가 되고 맙니다. 하라리는 나에 대한 탐구는 기술의 결정체인 알고리즘이 뺏어가기 전에 스스로 먼저 해야 할 일임을 명시하고, 그 실천으로 명상을 소개합니다. “오직 관찰하라.” 자기 관찰을 통해 내 안에서의 허구와 실체를 확실히 구분하여 불안정한 사회에서 속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사피엔스의 숙명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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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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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이어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집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읽었습니다! 무라카미가 잡지에 연재했던 무라카미 라디오의 세 번째 시리즈로 마지막 편입니다

 

책을 읽으며 '에세이란 참 읽기 좋은 글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에세이도 여느 책과 마찬가지로 종이 위에 적힌 활자를 읽는 것뿐인데도 마치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드니까요에세이의 정확한 정의를 찾아보니, '모든 문학형식 가운데 가장 유연하고 융통성있는 것 가운데 하나'라고 하더군요. 에세이라는 장르가 유달리 특별한 건, 형식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그 유연함에서 작가가 매력을 극대화해 보여줄 수 있는 매개체라는 점, 아닐까요? 그러고보니 형태만 다를 뿐 최근 많은 탤런트가 라이브방송이나 SNS를 통해 팬들에게 다가가는 것과 다름없는 것 같네요. 소설에서 문체로 재능을 맘껏 보여줬다면, 팬으로서 일상 속 작가의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다는 건 독자로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죠.

 

또 에세이를 쓰는 일은 용기 있는 일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글이란 곧 나를 나타내는 방식인데, 에세이는 특히나 자신의 생각과 모습이 솔직하게 담겨 있으니 말입니다. 나 자신(自身)에 대해 자신(自信)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자신이 쓴 에세이를 읽는 사람이 많다면 말이죠. 책에 나온 한 에세이에서 무라카미는 '나는 위선적인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며, 본인도 단언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걸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위선적인 게 아닌가 하고 말이죠. 맞는 말입니다. 나를 위한 것이었든, 타인을 위한 것이었든 잠시동안 다른 사람이 되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법한데요. 무라카미는 비판받은 적도 있고, 그로 인해 기분이 상한 적도 있지만 '상처 없이 살아갈 수 없다'라며 긍정의 힘으로 마음을 다잡는다고 해요. 이 부분에서 나 자신에 대해 자신을 가지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에서 나오는 거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밤, 무라카미의 에세이를 읽다가 잠에 들었습니다. 일찍 끝나버린 첫 수업에 갈 곳을 잃은 제 시간을 책임져주기도 했습니다. 일하다가 잠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에 무라카미가 낮잠을 청하듯, 무라카미의 에세이가 머리 아픈 독자들에게 좋은 낮잠이 돼 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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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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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에서 추가도서로 제공받은 버스데이 걸에 이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두 권을 읽게 됐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입니다!

 

제목이 정말 참신합니다. 살면서 채소의 기분이나 바다표범에게 키스당하는 걸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 이 책은 무라카미의 머리를 스쳐간 무수히 많은 생각들을 에세이로 쓴 것입니다. 마치 무라카미가 '상상력의 풀장'이란 이름으로 개장한 수영장 안에 풍덩 뛰어드는 기분이었습니다저 또한 작가를 따라서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느낌이네요.

이 책은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이름으로 무라카미가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엮어 발간한 책이라고 해요잡지에 연재한 글을 모두 모으니 세 권이나 됩니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는 세 권 중 두 번째로 나온 책인데요. 이 사실을 몰랐던 저로서는 첫 번째로 나온 책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를 뛰어넘게 됐지만, 읽다보니 그런 순서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연작소설도 아니고 에세이인데다가 모아둔 글이 전부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었거든요책 안에서도 마음에 드는 소제목을 찍어 그걸 먼저 읽어도 상관없을 구성입니다.

 

읽으면서 발견한 것 중 하나는 모든 글이 딱 네 쪽의 글과 한 장의 그림으로 이뤄졌단 사실입니다.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 건데요, 잡지에 연재했던 글이니 글의 분량이 정해져 있었을 테고, 책으로 나온 결과 모든 에세이가 정해진 만큼으로 딱 네 쪽씩 차지하게 됐나 봅니다글과 함께하는 그림을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오하시 아유미라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인데요, 형태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서 귀여운 그림들이었습니다. 또 에세이에서 전하는 메시지를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작업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세이의 끝에 나오는 작가의 후기는 무라카미가 아닌 오하시 아유미 씨가 맡았는데요, 이 후기를 통해 모든 그림이 동판화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선이 많지 않아 그리는건 어렵지 않아보였는데 동판화 작업 얘기를 듣고 돌아가 그림을 다시 보니 그의 노고가 다시 보입니다

 

"사람은 때로 안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음악에 실어 그것의 무게로 제 자신이 낱낱이 흩어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 음악에는 그런 실용적인 기능이 있다"(219)

 

무라카미 씨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보다 그저 한 인간으로 느껴졌습니다. 에세이를 읽으며 무라카미의 여러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공감도 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음악 듣는 걸 참 좋아하고 지갑은 잊어도 꼭 챙기는 것이 이어폰인데요. 음악의 실용성에 대해 생각하면서 음악에 나를 맡기지는 않지만, 저 문장에서 이야기하는 바와 같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았든 음악은 언제나 나의 위로가 돼준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고마운 존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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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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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에 추가도서로 신청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버스데이 걸>을 읽었습니다!

어느덧 방학도 다 지나고 알찼던 방중독서생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로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신 단편이 나왔다는 걸 듣고 궁금함에 읽어보게 됐는데요, 단편이라 그런지 받아본 책은 정말 얇은 책이었어요. 하지만 책 표지만큼은 그 얇기에 비례하지 않고 강렬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탁 치는 듯한 한 문장이 독자를 사로잡는데요, 바로 "당신은 스무 살 생일에 무얼 했는지 기억하나요?"였습니다. 스무 살이라면 이미 지나서 저에게도 그 때의 생일날이 있을텐데, 저는 이 질문에 대답할 만한 기억이 도무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있나요?

 

이미 짐작하셨다시피, 책은 스무살 생일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카트 멘시크라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이 더해져 마치 동화책을 보는 듯 했어요. 단숨에 읽어버렸던 58쪽짜리 책입니다.

 

책은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생일이라는 기념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생일의 기억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추억으로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생일을 대하는 감각이 무뎌졌다고 해야 할까요.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 생일은 점차 특별한 날이 아닌 여느 날과 다름없는 보통날이 돼버린 것 같아요. 어른들이 생일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걸 보며 씁쓸했던 기억도 있는데, 어느 순간 그 모습이 내가 돼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나이에 상관 없이 생일이라는 건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특별한 것이라고 작가 무라카미는 말합니다. 그리고 책 속에서 인생을 통틀어서 단 하루뿐일 스무살의 생일날, 인생의 구조를 바꿔놓을 수도 있을 사건을 장치해놓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해보며 던져진 질문 앞에서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를 그려보기도 했는데요. "인생의 구조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여자 주인공의 말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 라는 것." (57쪽)

 

인생이 구조처럼 나라는 존재도 대체 뭔지 감이 안 잡힐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고,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을 가졌으며, 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그 모든 것이 전부 나라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다'라는 말은 체념적으로 들린다기보다 오히려 나에 대한 이해에 결국 도달한 사람의 여유같은 것이었습니다.

 

무라카미 앞에서 '생일이 뭐 별거야?!'하고 말하면 아마 그가 열을 내며 반박할 겁니다. 어쩌면 '생일이 별건가' 하고 생각하는 누군가는 사실 그 누구보다 특별한 보통날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려면 하루뿐인 생일만큼이나 하루하루 채워지는 인생의 모든 날들을 소중히 여기고, 특별한 시간이 되도록 신경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스무 번째 생일은 지나갔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가올 그 날을 진심으로 축복해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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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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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서포터즈 3차 미션도서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장편소설 <좀도둑가족>을 읽었습니다!

소설을 읽기 전에 영화 '어느 가족'을 먼저 알게 됐는데요, 그 영화의 원작이 바로 이 <좀도둑가족>입니다. 영화는 제71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어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소설을 읽고 나니 활자로만 상상했던 가족이 영상으로 구현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져 상영이 끝나기 전에 꼭 보러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좀도둑가족>은 그동안 읽었던 미션도서 중 가장 빠르게 읽은 책이지만, 가장 오래 여운이 남은 책입니다.

 

 

258쪽의 책의 목차는 이렇습니다. 

 

책은 제목대로 어느 좀도둑 가족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하지만 이 가족은 특별합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닌 선택으로 뭉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란 보통 이미 정해진 사이라는 관념이 강해서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이는데요, 이들은 진짜 가족을 잃거나 그들로부터 버림받거나 그들을 떠나와 가짜 가족의 구성원이 되기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어딘가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과는 먼 이 가족에게 한 소녀가 구성원으로 합류하며 동네 사람들의 시선에선 알 수 없는 그들의 속 깊은 사정을 다룹니다. 인물들이 가족으로 형성되기까지가 기승전결의 구조를 이루지 않아서 책을 읽는 것은 '이 가족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의 궁금증을 풀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각 가족 구성원의 개인사를 알게 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애정이 가는 작품이었어요.

 

가족이란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_

사실 이들은 '가족이 되자!'라고 해서 모인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같이 살게 됐고, 남들이 볼 때 노인과 중년의 남성과 여성, 젊은 여자와 아이 둘은 가족 구성원으로 보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죠.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상처를 지닌 존재란 것인데요, 그 상처는 보통 함께 살았던 진짜 가족으로부터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 상처를 다시 받고 싶지 않아 함께 사는 서로에게 기대하거나 책임을 지는 부담을 가지지 않을뿐더러, 그건 성가신 일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이지만 함께 하면서 각자의 상처를 치유해나갑니다

 

이 아이를 안고 안기는 것만으로, 자신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136)

 

이 사람들을 보며 가족이란 것이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을 둘러싼 사회가 가족을 바라보는 잣대가 '진짜는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고, '가짜는 선택에 의한 가족'이라면 그런 구분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편의를 위한 구분일뿐입니다. 소설에서도 인물들의 이름은 진짜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사회가 만들어낸 법과 제도, 언어와 같이 편의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 약속한 기호 같은 것들로는 정의할 수 없는 것도 분명 있으니까요.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유전자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된 이들이 서로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지에서 찾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이들을 부르는 이름 '가짜 가족'이 진짜 가족보다 더 '진짜' 가족으로 보이니까요.  

 

세상에 단둘이 있는 것 같았다. 내내 함께 있으면 좋을 텐데. 쇼타는 생각했다”(251)

 

아빠, 아저씨로 돌아갈게_

선의의 의도로 행한 일이 꼭 좋은 결과를 보는 것이 아니듯, 이 사회가 '구제' 또는 '구원'이라고 생각한 절차가 과연 그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 또한 그 가족에 대해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수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증거들만을 수집했다면 수사관 미야베처럼 생각하고 분노하지 않을 거라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해체라는 결말로 드러난 분명한 사실은 사회가 이상적이라 생각했던 원상복귀가 개인들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갈 곳을 잃어 방황하는 아키나 다시 멍이 든 린, 혼자가 된 오사무의 모습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좀도둑가족의 결말이 행복한지 아닌지는 개인의 판단에 달린 것 같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정해진 답이 없듯이 이야기의 경우의 수는 수만 가지도 더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이게 가장 그럴듯한 결말이라고 작가는 결론을 내린 듯합니다. 하지만 가족을 바라보는 관념의 변화가 책을 통해 이뤄졌다면 또 다른 이야기의 결말은 이미 만들어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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