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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사이 - 애매 동인 테마 소설집
최미래 외 지음 / 읻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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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식사 자리로 사람 파악하기>

당신은 어떤 식습관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가? 당신이 이 말에 대답하는 것만으로 나는 당신을 파악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말한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 식기구 사용 습관, 입맛 등 식사 자리는 사람을 파악하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반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수단으로도 좋았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흔히 밥을 먹는다. 밥을 먹을 때, 서로 차이를 느낄 때가 많다. 가령 밥 먹는 속도나 젓가락을 올바르게 잡는 것, 같이 먹는 국물에 숟가락을 아무렇게나 넣는 것 등 우리는 밥 먹을 때 사소한 것에서 정을 쌓아가기도, 정이 떨어지기도 한다.

소설 속 '나'는 20대 초반에 닭발을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았지만, 20대 중반에는 연어스테이크와 일본 가정식을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는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 식습관을 가지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가? 식사자리는 나를 파악할 수 있다.

한편, 나-선정, 나-아빠는 식사 자리로 서로를 알아간다. 때론 좋아하는 음식을 공유하기도, 요리하기도 한다. 음식의 취향이 당신과 내가 다르지만, 조금씩 맞추어간다. 주인공 '나'가 선정의 음식 맛에 익숙해지듯이, 그것이 좋아지듯이.


<세상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것들>

세상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일까? 소설에서 힘겨운 생활을 보낸 아빠는 '나'에게 조언한다. 바다, 가난, 인간은 세상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고.

먼저 바다는 흔히 끝을 알 수 없다는 말을 쓴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발바닥이 땅에 닿기까지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무서워진다.

두 번째로 가난은 벗어나기 힘들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가난은 함부로 이해한다고 말해선 안 되는데, 그것은 눈앞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인간 또한 세상의 깊을 가늠할 수 없다. 어떠한 인간이 한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란 불가능하듯이, 우리는 한 사람의 세계를 완전히 가늠할 수 없다. 즉,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이는 '나'와 선정이도 그랬다.

<미래와 미래>

우리는 한때 미래를 꿈꿨던 사이. 왜 헤어졌을까? 그리고 왜 슬플까?

선정이와 '나'는 미래를 꿈꿨던 사이다. 둘은 연인이 되었고, 선정이의 제안으로 함께 살아갈 집을 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미래를 꿈꿀수록 조금씩 둘은 멀어진다. 앞서 말했듯,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인다.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는 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세상에 대해 정말 '모르기 때문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두 번째로는 '알기 때문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한 사람에 대해 우리는 조금의 정보를 얻었을 때, 가장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알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다. 어디까지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의 깊이가 들어갈지 모른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한때 미래를 함께 꿈꿨던 사람을 떠올리면 왜 헤어졌을까? 그리고 왜 슬플까? 그건 우리의 현실 앞에서 멈추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며, 여기서 말하는 '현실'은 바다일 수도, 가난일 수도, 인간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로 막았던 현실들은 당신은 이해할 수 있는가?

'나'와 선정이는 알기 때문에 헤어졌을까? 모르기 때문에 헤어졌을까? 아마 함께 바라본 바다의 깊이가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다고 하자.


<그 외 소설>

대표적으로 소개한 최미래의 「얕은 바다라면」뿐만 아니라 조시현, 성해나 등 다양한 작가들도 'ㅇㅁ'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했다.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모두 다른 소재와 다른 느낌이 들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비로소 너와 나의 사이가 경계적이라는 것. 즉, 애매한 사이일 때 소설은 비로소 완성됐다.

맛을 알면 더 먹고 싶은 음식들처럼,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외로움을 잘 느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조금씩 알아버린 경계의 측면에서 우리는 '애매한 사이'이며, 그럴수록 우리의 다음이 더 궁금해질 것이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 식기구 사용 습관, 입맛 등
식사 자리는 사람을 파악하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반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수단으로도 좋았다. - P16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선정이가 손해를 보고도 가만히 있어서?
그 모습이 답답해서?
그런 걸까.
우리가 함께 바라본 바다의 깊이가 달라서?
그랬던 것 같아.
그렇다고 하자.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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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취소
호영 지음 / 읻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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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와 이야기>

호영은 사람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거나 혹은 과거의 자신을 인용한다. 많은 사람을 초대한 '전부 취소'는 조금 더 풍요롭다. 호영 덕분에 많은 좋은 글을 얻어갔는데, 이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얻어가는 것과 비슷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읽으며 나의 미숙함들을 채워갔다. 비록 호영의 어휘가 조금 과격할지라도, 호영의 언어들에 솔직함이 담겨있었다.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호영을 조금 더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동시에 나의 생각들도 조금 달라지고 있었다. 그 생각들과 관련해 공유하고자 한다.


< 나에게 수식되는 것들 >

내 이름 앞에 무언가 수식되는 일은 무척 무서운 일이다. A의 연인, 회장, B의 친구, 00학교 출신 등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의 아는 정보를 수식으로 붙인다. '끼리끼리'라는 법칙 아래 수식되는 사람들과 우리는 동일시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강력한 이유의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수식어라면 더욱 그 수식어를 떼내기 어렵다. 호영의 경우, '트랜스젠더이고 따라서 정신병자이므로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주시해야 한다거나, 내가 가진 자질이나 의사결정의 타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라고 덧붙인다. 즉, 호영이 커밍아웃을 했다면 회사에 있는 동안 수식어를 떼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 이름에 수식어가 붙는 일은 동시에 수식어의 책임을 짊어진다. 그때마다 숨기려고 애쓰는 건 호영뿐만 아니라, 나도 그랬다. 나의 앞에 수식어가 붙은 건 나를 단정지어 생각하는 것이기에 매우 안 좋아한다.


< 누군가 죽으면 나도 함께 죽는다 >

호영은 엄마를 떠올리며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이 기억하던 나, 그 사람과 놀 때만 나오던 나도 죽게 된다'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죽으면 왜 그렇게 슬플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사람과 나 둘만이 공유했던 기억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즉, 그 사람이 아는 내가 사라진다. 둘만의 기억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못할 때 오는 슬픔들이 있다.

그러나 호영이 말했듯, '예전의 나는 연속되며 연속되지 않는다'. 즉, 그 사람이 죽어도 나는 연속된다. 그 사람과 있었던 나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되어있다. 이는 예전의 내가 있지만, 없는 일.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내가 되어가고 있다.


<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그렇지 않아도 될 때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해보다 인정'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해까지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곤 나도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다'라는 말들로. 호영은 "불특정 다수의 인정을 받아야만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이라고 말한다. 내가 나로 살기에 인정이 무조건 필요한 일은 아니지만, 인정이 있으면 조금 덜 외롭다.

호영은 덧붙인다. '성별 정체성이라는 건 나 혼자 내가 누군지 안다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인식을 통해서도 만들어지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누군가가 내린 찰나의 판단으로 인해 고꾸라지는 일들이 생긴다. 한 사람의 판단, 한 가게의 내규가 내 앞의 문은 벽이기도 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나에게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판단을 할 때, 우리는 조금 더 조심스러워져야 한다.


< 조금 모르겠는 방식으로 >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호칭에 대한 고민을 한 번씩 거친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선배, 형, 오빠, 언니, 누나, A씨 등 다양한 선택지들 중 우리는 어떻게 그 사람을 불러야 하나 고민한다. 그럴 때면 서로 합의를 거치는 과정은 매우 예의처럼 느껴진다. "당신은 어떻게 부를까요?"라는 말이 그 사람과 잘 지내고 싶다는 말을 포함하고 있다. 그때 동시에 말을 놓기도 하며, 서로 친해지기 편한 사이가 된다.

우리는 지금 이분법으로 나누어진 세계를 살고 있다. 밸런스 게임을 할 때 겪는 지옥들처럼 우리는 둘 중 하나를 무조건 '선택'해야 하기도 한다. 이는 때론 강제적이다. 그때마다 나는 '모르겠다'라는 답변을 매우 좋아한다. 몰라서 '선택하지 않겠다'가 아닌, 무언가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임을 뜻하는 말이 좋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어딜가나 중간지점이 있다. 나는 자주 '중간지점'을 택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지금은'이라는 말을 앞에 덧붙이는 것. 혹은 점심메뉴를 선택할 때, '나눠먹자'는 선택지를 결정하는 것. 우리는 이분법의 세계에서 벗어나 조금은 모르겠는 방식으로 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 연결되기 위한 언어들을 약속하기 >

내가 모른다고 해서 미뤄왔던 세계들을 마주했을 때, 나는 언어에 관해 약속했다. '언어는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정되는 것이기도 하며, 우리는 매일 소소한 협상을 하면서 서로 연결되기 위해 지정된 언어를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타인의 가장 사적인 진실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언어를 구사하면서 서로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때마다 서로를 깊이 파고들 순 없겠지만 인식하고 뒤엉키면서 우리는 고민한다. 당신에게 연결될 수 있는 언어가 무엇인지. 그것은 비로소 우리의 약속으로 이어질 것이다.

만약 커밍아웃을 했다면, 회사 내 대다수의 사람에게
그 소식은 커피 마시면서 언급할 가십거리 정도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몇몇 사람에게는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수식하게 될 것이다. - P46

어디선가 읽었는데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이 기억하던 나
그 사람과 놀 때만 나오던 나도 죽게 된다
예전의 나는 연속되며 연속되지 않는다 - P76

곧 만나게 될, 또는 방금 만난 사람의 젠더, 성별, 성적 지향이
무엇인가에 대한 가정을 붙들고 있지 않는 것.
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길 원하는지 말하기 전까지는 기다리는 것.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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큔, 아름다운 곡선 자이언트 스텝 1
김규림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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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고를 때, 사람마다 보는 기준이 있다. 책 표지나 책 제목, 그리고 출판사를 보기도 한다. 나는 주로 작가의 믿음으로 책을 고르는 편에 속한다. 그래서 첫 소설을 응원하는 자이언트 스텝 시리즈는 나에게 책을 고르는 데 새로운 도전이었다.


<큔, 아름다운 곡선>은 잘 읽히는 것은 물론, 쉽게 이야기에 다가갈 수 있었다. 현실에 일어나지 않은 세계에 관해서 글을 쓴다는 건, 하나의 세계관을 창조해야 하는 일이다. 그럴수록 세계관의 허점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깨끗할 만큼 빈틈 없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 사랑이다. <큔, 아름다운 곡선>은 사랑을 '쉽게' 다루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어느 순간에 확 와버린 것이 아니라, 천천히 당신에게 녹아드는 사랑이다. 사랑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편견 없이 그저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Her>이 떠오를 만큼, 사랑에 관해 진지하고 아름다웠다..


또한, 인상 깊었던 점은 에필로그다. 1부와 2부 사이에 에필로그가 있다는 건, 나에게 새로운 구성이었다. 에필로그는 소설 속에 생겼던 궁금증을 풀어주었고, 정말 소설 속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큔, 아름다운 곡선>은 자이언트 스텝 시리즈의 아주 좋은 시작이다.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참신함과 아름답기도 한 사랑 이야기. 이는 다음 자이언트 스텝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채워준다. 

저도 이제 당신처럼 유한한 삶을 살게 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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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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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겪었을 사춘기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책이 꽤 두꺼워서 "못 읽으면 어쩌지" 걱정했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이틀 동안 다 읽었다. 하루만 투자해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거다. 그 이유는 문장들이 서로 잘 연결되어서 자연스럽게 잘 읽힌다. 이런 책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나도 영상 미디어에 익숙해진 사람인지라, 요즘은 책 읽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막히는 부분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부분 없이 술술 잘 읽었다. + 작가의 문체에 감탄했다..!!!


단순한 소재와 익숙한 인물들이다. 특이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뻔한 이들의 이야기에 서서히 스며들었고, 궁금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뒤에 갈수록 "뻔한 이야기"라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그러니 이 소설은 끝까지 놓지 않고 읽어야 한다.😲


주변에 한 명쯤은 있을 것 같은 나래, 보람, 곽근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전혀 헷갈리거나 "얘가 누구야"하지 않았다. 이름을 딱 들으면, '아. 시끄러운 애'하고 떠올랐다. 그만큼 작가가 인물의 성격과 이름, 상황을 잘 꾸렸다는 뜻이다.


작가를 모른 채로 읽었던 소설이다. 다 읽고 난 후, 인터넷검색을 통해 알았다. "이현" 앞으로 그의 작품을 찾아볼 것 같다. 읽으면서 그들과 함께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것만 같았다. 내가 그들과 함께 같은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공감이 됐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공감이 아닐 거라 믿는다.


호정이와 은기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여전히 각자의 일과 공부를 하며 살아갈까? 아니면 여전히 상담하고, 돈 벌며 치열하게 살아갈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눈물을 흘리며 조금씩 버티고 있다. 지금은 충분하지 않다. 현재 텅 빈 곳이 채워지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서로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것만으로 충분해 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때의 은기를 생각하면 기우뚱한 가로등이 떠오른다. 한낮에 홀로 불이 켜져 있는 가로등. 그러다 밤이 되면 슬그머니 빛을 잃고 어둠에 잠기는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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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산책하듯
김상현 지음 / 시공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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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에 호감이 있다. 하지만 산책이 나의 귀찮음을 이기지 못해서, 고작 학교 가는 길이 나에겐 산책이었다. 항상 친구와 등하교 했던 나는, 친구에게 가끔 거짓말하며 혼자 걸어가곤 했다. 그럴 땐 부정적인 기분에 가득 차서 혹여나 친구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서였다. 혼자 걸어가면 생각이 정리되고, 멍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길에 기분을 풀어놓았다.

 

하루 동안 책 한 권을 읽는 건 오랜만이다. 뻔한 말이지만, 책 자체가 제목 자체이다. 매 순간 산책하듯 그림을 보고 읽었다. 읽고 나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 책을 읽을 때, 작가님의 조언들을 듣고 있는 혹은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말하지 않은 채 그저 길을 걷는다. 누구의 이야기도 않은 채 온전히 걷는 길.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 것만 같은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그 길은 도시 중에 가장 시골 같은 곳일 것이다. 그런 곳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 온전히 둘만 걷는 곳. 나는 그런 곳에서 작가님과 걸은 듯하다.

 

공감이 가득한 책이다. 생각에 잠기면, ‘나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나?’, ‘너무 깊게 생각하나?’ 하면서 생각의 깊이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이젠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구나하며 피식 웃을 것이다. 공감의 위로를 슬며시 건넨 책이 있기에 나는 덜 외롭게 생각할 것 같다. (작가님은 위로가 싫다고 했지만, 나한텐 이것이 좋은 영향이다.)

 

오래 마음속에 남는 책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산책에 대한 호감이 행동으로 옮겨가 내 삶에 변화를 줄 듯하다. 좋은 책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릴 순 없지만, 내 삶에 작은 변화를 준다면 그것이 좋은 책 아닐까?

 

아슬아슬해서 잊어버리고 싶은 어떤 순간. 과감하게 끊어내면 가벼워질 수 있을까. 하지만 확신이 없어서, 일단 묶어두어본다. 상처는 여전히 그대로, 매끄럽게 이어지지도 않겠지만, 매듭은 항상 눈에 띄고, 어딘가에 툭툭 걸리니까 종종 돌아봐주었음 해. 그때 내가 위태로웠음을.’

 

시공북클럽에게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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