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
재키 울슐라거 지음, 최준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만큼 샤갈의 작품 세계를 그의 삶과 주변 인물들, 그리고 당시의 모더니즘적 맥락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는 저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고 있는 중이다. 다른 관련 책들은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일단 750페이지가 넘는 책의 분량이 내용의 방대함을 증명하고, 저자의 예술에 대한 돋보이는 통찰력은 읽기 전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샤갈뿐만 아니라 러시아 예술가들, 유대인 예술가의 정체성, 유럽 모더니즘 예술의 전개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문제는 번역이다!!!  원서와 대조해보니 중간중간 빼먹은 문장이 적지 아니하고, 사진이나 그림도 누락된 것들이 있으며, 번역자가 '..의'와 '..에'의 용법 차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번역을 했으며 (상당히 거슬린다), 비문 또한 자주 눈에 보인다. 편집과정에서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도 보인다. 93쪽에 이어지는 94쪽 본문은 94쪽 첫 단어가 아니고 밑에서 5번째 줄부터다. 즉 중간에 내용이 중복해서 실린 것이다. 또한 원서에 수록된 Index가 누락되어 있다. 수 많은 지명과 인물들의 이름, 작품들이 본문에서 언급된 만큼 Index는 꼭 있어야만 했다. 전체적으로 너무 성급하게(!) 출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번역자, 편집자, 출판사의 성의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일은 항상 '분노'를 동반한다. 그것도 괜찮은 번역서들에서 발견하게 되면 더욱 그렇다. 왜 보다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서 출간하지 못했을까? 그것도 민음사 정도의 메이저급 출판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정말 충실하다 (저자에게는 별 다섯개를 기꺼이 주고 싶다). 일독이 아깝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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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링 짐 매드 픽션 클럽
크리스티안 뫼르크 지음, 유향란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보다 치명적 매력이 돋보이는 옴므 파탈을 기대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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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take it as it comes. Hold your ground and take it as it comes. There's no other way."  (79)
How long could he watch the tides flood in and flow out without his remembering, as anyone might in a sea-gazing reverie, that life had been given to him, as to all, randomly, fortuitously, and but once, and for no known or knowable reason?  (125)
Old age isn't a battle, old age is a massacre.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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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회의 장편소설 <콰이어트 걸>을 관통하는 바흐의 '샤콘느'.  

  

 

 

 

'샤콘느'는 세 부분으로 나뉘죠. 종교화처럼 3부작이죠. 나는 이 음악이 천국으로 가는 문을 제시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것은 소리의 우상이에요. 난 샤콘느가 죽음에 관한 음악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539)

  

D단조는 죽음의 음조예요. 바흐는 마리아 바르바라와 자식 둘을 잃었어요. 바흐는 아이들과 그녀를 사랑했죠. 샤콘느의 테마는 죽음이에요. 운명의 불가피성, 불변성을 들어보세요. 우리는 모두 죽어요. 그리고 여기 1악장에서 여러 대의 바이올린이 서로 대화하는 것 같은 환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바흐가 음역을 바꾸면서 네 개의 현을 동시에 긁어 소리를 낸 주법을 들어보세요. 이 소리들은 우리 각자,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있는 수많은 목소리에요. 어떤 목소리는 죽음을 받아들이지만 어떤 목소리는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이제 길게 이어지는 아르페지오 악절이 시작돼요. 한 악장에 화음을 세 개 혹은 그 이상 연주해서 에너지가 쌓이는 느낌이 강해지죠. 들려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최소한 세 대의 바이올린으로 이 음악을 연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542)

 

두 번째 악절은 장조입니다. 연민과 깊은 슬픔에 차 있죠. 이 두 번째 악절은 내 영혼의 진통제입니다. 바흐도 나처럼 상실의 아픔을 겪었죠. 그의 고통을 들을 수 있어요. [...] 위로의 음악이 승리의 음악으로 바뀝니다. 바흐는 바이올린에서 트럼펫 같은 소리가 나게 만들었어요. 여기, 165번째 소절로 시작되는 부분, 여기에 바흐는 4분의 4박자를 넣고, 세 번째 손가락으로 D현을 연주해서 팡파르 효과를 강조하는 동시에 A현을 열고 연주했어요. 이렇게 연주하면 A현의 배음이 강해지죠. 들어보세요. 이 부분이 177번째 소절까지 계속됩니다. 바로 여기서 고요하고 깊은 환희가 시작되는 겁니다. 음악적인 정지 효과를 풍부하게 써서 커다란 갈망의 느낌을 주는 거죠. 바흐는 죽음과 화해한 겁니다. 그러면 된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겠죠.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닙니다. 좀 더 위대한 것이 다가오고 있어요. 201번째 소절에서 우주선이 이륙하기 시작해요. 2악절은 1악절처럼 아르페지오로 끝나죠. 이제 세 번째 악절의 첫 부분을 들어보세요.(543)

   

다시 D단조로 돌아왔어요. 브람스가 그의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 서두의 테마에 사용한 것과 같은 현이에요. '샤콘느'는 모든 고전 음악을 통틀어 가장 빛나는 작품이에요. 이제 229소절에 가짜워지고 있는데, 그 소절에서 바리올라쥬로 바뀌죠. 바흐는 개방된 A현과 D현에서 음을 바꾸는 방법을 번갈아 사용합니다. 이 음악은 애도하면서도 동시에 활력으로 가득 차 있어요. 1악절의 죽음이 다시 나타나지만 이제는 위로와 승리 그리고 2악절의 내면의 평화가 드러납니다. 이것은 천장을 뚫고 가는 음악입니다. 이 음악은 죽음이 항상 옆에 존재하지만, 힘과 에너지와 연민으로 가득 찬 위대한 삶의 한 방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길 들어보세요, 241소절부터. 깨달음의 빛이 죽음 자체를 관통해 비추고 있습니다. 바흐는 정신 바짝 차리고 죽음을 지켜볼 수 있다고 말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음악에서 직접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 비결이 뭘까요? 이것이 제 질문입니다.(544)

  

 카스퍼의 질문에 블루 레이디는 이렇게 대답한다.  

용서죠. 비결은 용서예요. 용서란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용서는 건전한 상식으로 하는 겁니다. 상대방이 다른 식으로 행동할 수 없었다는 걸 깨달을 때 용서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당신도 달리 행동할 수 없었다는 걸 알 때 가능하고요. 우리 중에 결정적인 상황에서 진정 뭔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545)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오히려 그 대위법적 세계에 깊이 빨려들어가는 바흐의 음악..  

읽어야 할 책들, 써야 할 논문들.. 이런 작업을 하는데 가장 적합한 음악은 바로크 음악, 그 중에서도 바흐의 음악이다. 내가 좋아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비롯한 건반악기 작품들과 천상의 성악곡들..  

내가 소장하고 있는 CD들.. 유학시절 궁핍한 생활에도 ebay에서, 중고가게에서 하나 둘씩 모아놓은 것들이 한국에서의 각박한 일상에서 유용한 정신의 양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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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2010-07-20 11:13   좋아요 0 | URL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곡이라 여러 연주를 가지고 있는데요.
요제프 시게티의 연주를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죽음' 바로 그 영감이 떠오르는 연주입니다.
http://music.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675124628
 

눈[雪], 서리, 얼음, 빙하, 북극해, 그린란드, 아이스란드.. 이 책을 따라 읽어내려가는 동안 만큼은 여름을 잊을 수 있다. 추리소설인만큼 흥미진진하고 중간중간 삶에 대한 서늘한 성찰들도 얼음 송곳처럼 솟아 있다.  

 

 

이해하고 싶다는 것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고자 하는 시도다.(55)  

내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순간도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의 어떤 것도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통로가 될 수는 없다. 마치 남겨놓고 가는 유일한 것인 양 매 걸음을 떼어야 한다.(180) 

지금 이 순간, [...] 선택의 자유라는 것은 단지 환상이라는 사실이 더 명확해졌다. 인생은 우리가 한번도 해결하지 못했던, 쓰디쓰고 본의 아니게 우스꽝스러우며 반복적인 갈등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는 사실도.(341) 

음이 나쁜 것은 미래를 바꿔놓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를 기억과 함께 외로이 남겨놓기 때문이다.(415)  

여러 곳을 여행하다가 아주 추운 곳까지 이르면 생존은 곧 단순히 깨어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음은 잠 속에서 이루어진다. 얼어 죽는 사람은 아주 짧은 수면 단계를 지난다. 출혈로 죽는 사람도 잠에 빠지게 된다. 빽빽하고 젖은 눈사태 속에 묻힌 사람은 질식해서 죽기 전에 잠에 빠진다.(453)  

인생에서의 행복과 슬픔의 분포는 간단한 산수로 얻을 수 없고 표준 할당 같은 것도 없다.(541)  

<스밀라 눈에 대한 감각>에 등장하는 '북방의 빛' 관장은 이런 말을 한다.  

언어는 홀로그램입니다. [...] 모든 인간의 발화에는 그 사람의 언어적 과거가 총체적으로 깔려 있습니다.(202)

10년 후 출간된 작가의 작품 <콰이어트 걸>의 주인공 카스퍼에서 이 관장의 말이 생각났다. 과연 작가는 이 문제에 10년 동안이나 골몰한 것일까? 암튼 멋진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스밀라 눈에 대한 감각>보다 <콰이어트 걸>이 더 마음에 든다.) 전체적으로 신비주의적 색채가 짙게 배여 있고 동화 같은 결말이기는 해도, 음악/음악가/소리/음향에 대한, 그리고 예술과 철학에 대한 빛나는 보석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침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지. 적어도 나한테는 그래. 먼저 고귀한 침묵, 기도 이면에 들리는 침묵이 있어. 사람이 하느님 가까이 있을 때 나오는 침묵. 그 침묵은 짙어. 모든 소리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와 같아. 그리고 또 하나의 침묵은 신에게서, 그리고 타인에게서 멀리 떨어진 부재의 침묵. 고독의 침묵이지.(289)

오늘 성당의 제대 앞에 서 있었던 나의 침묵은 어떤 종류였을까? 두 개의 침묵이 서로 공명(共鳴)하고 있었을게다..  

"자긴 하느님을 믿으니까 우리 둘을 도와달라고 기도해줄 수 없어?"
"뭔가를 원하는 기도는 할 수 없어. 적어도 다른 음표를 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어. 다만 자신이 타고난 음표를 최대한 잘 연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거지."(152) 

카스파는 내게서 어떤 음조를 들을까?

그런데, 

숭고한 순간이었다. 켐프[Wilhelm Kempf - 독일 피아니스트]가 베토벤 소나타 109번의 제1악장을 천천히 연주하는 것 같은.(294)  
그녀는 이제 완전히 F단조였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현악 4중주처럼.(231)

이런 구절은 해당 연주곡을 찾아서 들으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소 귀찮기는 하겠지만.. 

하지만,  

그 비밀은 G단조의 비극이었다. [...] A장조의 완벽주의가 누그러지지 않았다.(157)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제5도에서 한 단계 높은 음조를 받아들이는데, 이것은 음향학적인 성숙과 같다.(158)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절박한 기분은 D단조다.(251)
누군가가 순수하지만 고르지 않은 C장조 현의 세 음(音)을 휘파람으로 불었다.(523)  


나로서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구절들..  절대음감을 지닌 피아니스트인 친구에게 이 작품을 강력 추천한 이유는, 그 친구라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랴.. 신이 내게 허락하지 않은 재능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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