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책이라서 그랬을까? 제법 오래 전에 마지막 책장을 덮었건만 도통 정리를 할 수 없었다. 한 번 대출연장을 했기에 이제 무조건 반납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서야 비로소 이 두툼한 책을 앞에 놓고 짧은 단상으로나마 정리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다! 책을 읽어내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전공과 관련된 치밀한 책읽기를 해야 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자신의 관심에 따라 집어든 책에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면서 즐기는 일이 무슨 어려운 일이랴. 정작 수고를 필요로 하는 것은 읽은 책을 어떠한 형식으로든 자신의 '노동의 생산물'로 만들어내는데 있다.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고 그것을 독서일기 혹은 서평으로 정리해내는 것 -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요네하라 마리가 인용한 사이토 미나코(齌藤美奈子)의 말이 인상적이다: "무언가를 쓰는 일이든 읽는 일이든, 모든 지적인 작업에는 인간의 존엄을 회복시켜 주는 힘이 있다. [...] 감정을 발산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자기와 주변을 관찰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225쪽). 아마 요네하라 마리의 인간적 매력에 사로잡히는 것은 이 말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녀 자신에게 해당되기 때문이리라.

p.s. 요네하라 마리는 일본어-러시아어 통역가답게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그리고 한반도의 역사에 대한 통찰과 날카로운 현실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작가의 독서목록을 훑어보니 일본에서는 "컬트 국가" 북한을 비롯하여 이들 지역에 대해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관심과 지식의 정도와는 대조될 정도로 상당히 많은 전문서적들이 출간되고 있는 듯하다. 거의 관심이 없었던 이 지역들의 역사와 현실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 내가 거둔 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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