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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가 된 청소부 - 산다는 것과 초월한다는 것
바바 하리 다스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1999년 3월
평점 :
서평이란 거 처음이다. 처음이니만큼 별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다만, 요즘은 펜으로 쓰는 것보다 자판으로 글을 쓰는 게 더 익숙하여 여기에다 좀 긁적이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매달 독후감을 써라고 하여 검사도 하는데, 정작 나는 책 읽기도 힘들고 독후감은 더더욱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알라딘 서평쓰기를 계기로 자주 책도 읽고 독후감(?)도 쓰고 싶다.
너무 오랜만에 쓰는 독후감이라, 거의 처음인 것처럼 느껴진다. 서평이라고 이름 붙이기가 뭣하다. 아이들이 쓰는 것처럼 쓰질 것 같다.
이 책은 이름만 많이 들어보고, 정작 읽어보지 못한 소설이다. '바바 하리 다스'란 작가의 이름도 처음 들어본다. 다만 옮긴이 류시화는 이미 유명한 역자이며, 시인이다. 류시화 란 이름과 정신세계사란 출판사를 보고 이 책의 분위기를 감 잡을 수 있었다. 그렇고 그런 좀 따분한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흥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너무도 오랜만에 책을 들여다 봐서 그런가?
처음과 중간 부분은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여기서 간단히 좀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끝부분이다. 즉, 자반(닥터 피터)이 시골로 들어가 모든 욕망을 끊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내린 눈 때문에 죽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내린 눈이라.. 마치 무슨 축복을 의미하는 듯하다. 크리스마스 날에 눈에 파묻혀 죽게 된다는 것은 자반의 성스러운 봉사에 값하는 성스러운 죽음이다. 마치 하늘로부터 부름을 받게 되는 듯...
그러나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세상에 대한 욕망을 끊고 사는 것이, 그러다 생에 대한 욕망조차 없이 사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물론 종교의 종류를 초월하여 아무런 사심 없이 세상에 봉사하는 자반은 정말로 성자이다. 그러나 마지막 죽기 전의 자반은 과연 성자인가? 인도 사람들이 내생과 윤회를 믿기 때문인가? 나도 얼마쯤은 내생과 윤회를 믿는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이생에 충실을 다하지 않음은 또다른 과오라고 생각한다. 이생에 대해 아무런 욕망을 느끼지 않는 것, 삶은 고해라 하여 모든 혈연애와 욕망을 끊어버리는 것은 현재를 무시하고 미래에만 가치를 두는 이기적인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누군가 반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성스러워지는 것, 초월을 단순한 도피라고 생각한다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초월과 도피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이기심의 유무에 그 차이가 있다고 말할 것인가? 그러나 그것 또한 애매한 문제이다.
아무튼 이 책은 참 오랜만에 읽게 된 책이고, 또 쉽게 읽은 책이다. 이런 류의(인도풍의) 사상을 지닌 책을 내가 좀 쉽게 생각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요즘 난 별 의욕 없이 지낸다. 자반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비판적으로 보는 이유는 지금 내 모습에 대한 반감 때문일 수도 있다. 정말이지 난 봉사의 사명감도, 내 생에 대한 강한 애착도 별로 가지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그냥 숙제를 해 내듯 살아내고 있는 듯하다.
이런 내 생활에 좀 촉촉한 기운을 첨가하고 싶었는데, 생각대로 된 것 같다. 이 책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는 않으나, 역시 책을 읽는 건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더 열심히 책 읽고 서평도 써야 겠다. 처음 쓰는 서평이니, 혹시 읽는 이가 있다면 너그러이 생각해주시면 고맙겠다.
참 오랜된 책, 참 오랜만에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