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좋아한다. 두고두고 꼼꼼히 곱씹어 보기도 좋아한다. 이번 소설들도 오랜만에 먹어보는 토종된장국 맛처럼 나에게는 익숙하면서도 감칠맛나는 작품들이었다. '부석사'는 익히 보아온 신경숙 소설이라 일단 편안했지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신경숙의 소설이 너무 모범적이라 그런 것 같다. 상처를 지고 상처를 극복하려는 남녀가 떠있는 돌(부석)처럼 결코 일치될 수 없는 인간관계를 아는 듯한데도 그들은 길을 잃은 결말 부분에서도 서로 맞닿은 돌이 되고자 한다. (진주에 '응석사'라는 조그만 절이 있는데, 이는 돌이 서로 맞닿아 있다는 뜻인가? 그 절은 지난 겨울에 가보니 공사가 한창이었다.) 모범적인 것을 탓하면 안되는데, 나는 지나치게 모범적인 것들은 경계하는 경향이 있다. 세상은 이처럼 요지경 속인데도 모범적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부류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세상에 발을 묻고 있으면서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의연히 나아가는 부류, 하나는 세상에 때묻지 않은 부류. 나는 특히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와 '비파나무 그늘 아래', '그 섬에 가기 싫다'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이승우의 문장들은 그 무표정이 좋다. 짐짓 차가운 척해 보는, 사실은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외로운 자의 무표정이다. 그 무표정에 정이 간다. 관계 맺기에 익숙치 않은 날 닮은 듯한 문장이다. 이승우 그는 어떤 사람일까? 어쩌면 꽤나 건방진 척해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여린 사람일 거다. '비파나무 그늘 아래'는 어질어질한 게 마음에 들었다. '그 섬에 가기 싫다'는 섬뜻한 게 아주 날카로운 소설이라 생각한다.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평이 너무 느낌 위주다.아무튼 오랜만에 소설 읽으니 뻐근한 몸이 풀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