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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조선 문학동네 플레이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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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K-문학 등 전 세계에서 우리 것이 각광받고 있는 이때에 눈길을 끄는 책표지다.

요새 우리나라 전통 복식 중에서도 갓이 유행이라고 하던가? 

이렇게 힙하게 한국적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 멋지다. 자연스럽게 소설도 기대하게 된다.


한국 소설에서 내시를 전면에 내세운 적이 있나 싶다.

소설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내시는 약간 감초 역할...

그마저도 신체적 특성으로 희화화되거나, 뭔가 약삭빠르고 비열한 이미지도 많이 가져갔던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내시에 대한 인상이 많이 달라졌다.

내시는 궁궐의 최고권력자를 보좌하는 사람, 당연히 최정예 공무원이었을 텐데 왜 그렇게 인정받지 못했을까?


이 소설의 주인공 반석호는 개에게 물려 후천적으로 고자가 된 다음 내시 집안에 양자로 들어간다.

일등내시가 되어 왕(고종)을 보필하는 것이 반석호의 꿈.

라이벌인 양대방과 공부로 겨루는 등 우여곡절 끝에 반석호가 만난 왕은 너무 어린, 자기 또래 남자아이였다.

두 남자아이는 철저한 위계질서 안에서도 가능한 만큼 마음을 나누고,

반석호는 왕에게 충심과는 다른 '특별한 마음'을 품은 채 일하게 되는데...


슬픈 건 지난 역사는 이미 결말이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고종과 조선이 어떤 운명을 맞는지 알기에 반석호의 마음을 따라 읽어나가며 슬픔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고종의 최측근인 내시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고종의 모습과 스러져가는 조선의 마지막 풍경이 고즈넉하니 마음을 가라앉힌다.

웃음과 사랑과 눈물이 어룽진 아름다운 역사소설을 읽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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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의 칼날은 문학동네 플레이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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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할 수 없는 감정은 대부분 악감정이다. 그중 제일은 아마 복수심이 아닐까 한다.

타인을 해치고 싶을 만큼 미워하는 마음. 그것은 사람에게 너무나 해롭다.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갉아먹는데, 복수를 실행에 옮기기로 하면 그 사람의 인생마저 망가진다.

모두가 복수란 허망한 것이며 결국은 자기 자신을 해치는 일임을 안다.

그럼에도 복수하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다.


책을 처음 펼치면 초반부의 질주하는 자객 이야기에 홀려버리고 만다.

그대로 끝까지 질주하는 것도 흥미롭겠지만, 이 작품에서 주요 사건은 이 초반부에서 한차례 완결된다.

그후 이어지는 것은 처절하고 잔혹한 사건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놀라운 것은 앞선 굵직한 사건 전개와, 그후 인물들 한 명 한 명이 자장가처럼 들려주는 조곤조곤한 이야기의 무게감이 거의 동등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안에 담긴 감정의 농도와 무게가 동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재앙이 들이닥치게 만든 누군가에 대한 끝없는 원한을 되새김질하는 사람의 마음,

재앙을 피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벌벌 떠는 사람의 마음,

복수심을 흘려보낼지 그대로 쥐고 살아갈지 번민하며 애태우는 사람의 마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차갑게 말하지만 그 속이 불구덩이 같고, 그래서 이 이야기가 처연하게 느껴진다.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의 복수는 성공한다. 누군가는 실패한다.

잔혹하지만 그로 인해 피가 끓는 듯한 감동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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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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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은 여유에서 온다는 걸 때때로 느끼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인생이라는 위태로운 묘기에 대해 이 작가는 이미 많이 알고 있다.

다양한 인물과 상황을 접하며 그 자리에서 무수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짐작된다.

불편함, 소외감, 괴리감, 위협감, 우월감, 안도감, 서운함, 상실감, 동질감, 애틋함, 포용감...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마음만 해도 이렇게나 많다. 

이 많은 것들을 이미 깊이 알고 있는 자의 여유가 책의 곳곳에 묻어난다.


그런 여유가 어떻게 드러나냐고?

일단은 해석하지 않아도 다 느낄 수 있게끔 쓰여 있다는 점에서 느껴졌다.

어느 영역에 통달한 사람이 굳이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도 핵심을 쏙쏙 알려주듯이,

일상의 작은 사건만으로도 복잡한 심리와 갈등을 읽어낼 수 있었고, 그게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건 단편 문학의 최고 묘미겠지.)

게다가 이 소설집은 곳곳에 웃음 포인트를 담고 있다. 세련된 유머다.

멋을 잃지 않고 웃기는 데 얼마나 많은 공력이 드는가. 시도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소설들은 누군가의 감정의 싹틈을 그릴 때, 그와 동시에 또다른 누군가의 안에서 발생하는 반대급부 또한 염두에 둔다.

내가 뭔가를 느끼면 내 앞의 상대방도 뭔가를 느낀다는 관계의 공식, 혹은 인간사회의 진리가 작가의 머릿속에 흔들림 없이 펼쳐져 있달까.

그것은 소설 안에서 때로는 먹이사슬 속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처럼 잔인한 구도로, 때로는 서로 보듬어 공생하는 생물들의 미더운 구도로 그려진다.

작품마다 설정된 중심 화자가 그 구도 중 한 편을 맡지만, 소설이 오롯의 화자의 입으로만 쓰이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작가의 객관적인 시선이 결국엔 소설에 드러나는 모든 입장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이 흔들림 없는, 객관적이고 어떨 땐 냉철하게도 느껴지는 넓은 시야. 여기에서 이 작가가 지닌 멋을 느꼈던 것 같다.


작가는 어떤 시간을 지나왔기에 이런 깊은 시선을 지니게 되었을까.

그는 '신인 소설가'로서 자신이 한차례 지나온 길을, 아직 그 길을 지나는 중인 인물들을 통해 그려나간다.

나는 그 길을 얼마쯤 지나왔는지. 독자로서 이 작가가 소설로 내는 길을 계속 밟아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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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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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장인이어서 그런지, 내 안의 가장 하고 싶던 이야기를 외쳐주는 듯한 시원함이 있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외쳤으면 좀 민망하기도 했을 것 같은데, 나와 같은 듯 다른 상황을 제시하고 내가 느낀 그 감정을 풀어준다. 오피스 소설의 최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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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마치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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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의 최근작, 

특히 드라마 안나 원작소설인 <친밀한 이방인>을 읽은 독자라면: <친밀한 이방인>보다 센 서사, 안나보다 독한 이마치라는 인물 때문에 놀랄 것 같다.


정한아의 초기작,

특히 첫 장편, 너무나도 반짝이던 <달의 바다>까지도 기억하는 독자라면: 정한아 소설이 약 20년의 시간을 지나며 획득한 수려한 어둠에 놀랄 것 같다.


정한아의 작품을 <3월의 마치>로 처음 접한 독자라면: 한 사람, 한 여자의 인생을 이렇게나 낱낱이, 이토록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는 정한아의 과감함에 놀랄 것 같다.


그리고 <3월의 마치>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든: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던 이마치의 인생을 읽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정한아 작가는 이런 걸 참 잘한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삶이 어떤 모양이든 계속해서 살아가고 싶게 만든다.

앞서 정한아의 소설이 20년의 세월을 거치며 더욱 독하고 과감해졌다고 썼지만,

그런 면에서 정한아 소설은 20년 동안이나 낙관의 힘을 잃지 않고 있다.


당신은 소설 속 이마치처럼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과거의 무수한 시점으로 돌아가서

그때의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은지.

마구 소리치고 싶을지, 하염없이 사과하고 싶을지, 말없이 안아주고 싶을지 궁금하다.

아직 현실에서는 '과거의 나'들을 직접 만날 방법이 없지만,

그들은 언제나 우리의 기억 속에 있었다.

<3월의 마치>를 덮고 나서 기억을 더듬어 강렬했던 순간들에 존재했던 나들을 찾아보았다.

그들 앞에 서서 하고 싶은 말을 오래오래 고르고 있다.

한 편의 소설로 지금까지의 내 전 생애를 돌아보게 되다니. 매우 의미 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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