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 병원 밖의 환자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양창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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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다. 환자들은 저마다의 아픔을 가지고 의사를 찾아간다. 어떤 사정으로 병원에 가는지는 전부 다르지만, 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전부 같다. 이 아픔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 진료실에 들어서면 환자는 의사와 마주 앉아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고, 그것을 듣는 의사는 갖가지 검사와 질문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진단을 내린다. 진료는 짧고 간결할수록 좋다. 그래야 더 많은 환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에 필요한 시간은 평균적으로 단 3분. 180초 동안 의사는 자기 앞에 앉아 있는 환자의 불편함을 파악하고 그에 알맞은 처방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3분이라는 시간은 얼마나 짧은 시간인가? 라면이 채 익지도 않는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의사는 환자를 정말로 파악할 수 있는가? 각각의 환자에게는 저마다의 맥락이 존재한다. 아픔을 치료하는 것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원인을 제거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3분이라는 시간은 환자가 어째서 그런 아픔을 가지게 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진료실에 당도하게 되었는지를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심지어 병원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환자들이 병원 밖에는 수없이 많다. 그래서 저자는 왕진을 다니기 시작했다. 병원 밖의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는 저자가 진료실 안에서, 또 진료실 밖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일들을 담백하게 써 내려간 에세이집이다. 우리나라는 의료 보험이 잘 되어 있고, 또 의료 정책이 잘 실행되고 있는 나라로 세계에서 손에 꼽히지만, 제도의 바깥에도 언제나 사람은 살고 있다. 저자는 의료 행위가 가진 '공공성'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의료 시스템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들에게 가닿기 위해 진료실 바깥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 결과, 저자는 600회가 넘는 왕진을 다니며 가장 '병원 밖'에 오래 있는 의사 중 한 명이 되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의료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어려운 사람들이다. 제대로 된 집조차 없어 천막을 치고 살아가는 모 씨 할아버지, 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기 위해 굽은 몸을 이끌고 새벽같이 출발해야 하는 모 씨 할머니 등. 그중에는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라는 명제가 당연하지 않은 이들도 수없이 많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살피지 못했던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는 꽤 자주 독자의 코끝을 찡하게 만들곤 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고 하던가. 병원에 닿지 못한 환자들의 사정은 안타까움을 넘어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독자는 곧, 겨우 다른 사람이 적은 글을 보며 그들의 삶을 안쓰러워 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탓에 책장을 잠시 덮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끊임없는 반성과 성찰을 거치며 '필요한 의사'가 되고자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 그는 지역 사회를 위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주민들의 가까이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런 그의 마음가짐과 실천력은 비단 의료인에게만이 아닌, 이 사회의 다른 모든 구성원에게 필요한 태도이다. 사회는 결국 그것을 이루는 구성원의 집합이다. 각기 다른 사연과 사정을 가진 이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받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회 안에서 누군가는 혜택을 누리며 잘 살고 있을 때, 다른 누군가는 제때 병원에 가지 못해 더 큰 문제를 떠안고 살게 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적어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헤아리려는 노 력을 해야 하지 않는가? 이 책에 담겨 있는 글은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여, 무언가 행동하고 싶게끔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읽은 경험이 그저 지나가는 '독서'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독자는 우리의 '안'이 아닌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 것이다.


* 해당 글은 한겨레출판 서평단에 선정되어 단행본을 제공받은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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