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재난 국가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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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을 살아가는 청년 세대는 '공정'이나 '평등' 같은 키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입시 경쟁에 내몰려, "대학만 잘 가면 돼"라는 말 한마디만 믿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지금의 청년 세대는 대학에 입학한 후, 또다시 가혹한 취업 전선으로 내몰린다. 점점 심해지는 취업난과 바늘 구멍 같은 기회를 뚫기 위해 몰려드는 수많은 경쟁자. 그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 중인 청년 세대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말은 얄밉게 들리기만 할 뿐이다.

이런 극렬한 경쟁 사회에서 젊은 세대의 욕망은 종종 엉뚱한 곳으로 튀기도 한다.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바꿀 생각은 않고, 그 구조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유명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등장했던 '피라미드'가 떠오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사회가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 세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 사무치게 해봤을 질문들에 대해, 이 책은 제법 납득할만한 해답을 제공해준다.


『쌀 재난 국가』는 말 그대로 '쌀'과 '재난', 그리고 '국가'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오늘이 어디에서 기인했는가를 면밀히 파헤친다. 총 여섯 개의 장으로 나뉜 이 책은 벼농사 체제의 출현과 함께 발달한 우리네 특유의 공동 문화에 대해서부터 시작해서 팬데믹을 살아가는 동아시아인들의 생활 습관 및 사고방식에 대한 분석을 거쳐, 현재 대한민국에 만연한 불합리를 어떻게 타파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그 해결책에 관해 논의한다. 저자의 학술적 연구를 기반으로 쓰인 책이다 보니, 아무래도 중간중간 익숙하지 않은 용어나 서술 방식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전반적인 구성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물 흐르 듯 읽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독자는 그저 책의 흐름을 따라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을 이어가면 된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쌀', '재난', '국가'를 현 상황을 분석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키워드로 선정한 것일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러 불합리는 바로 벼농사 체제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이 바로 이에 관한 내용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발달한 연공제의 기원을 벼농사에서 찾는데,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설명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었다. '평등'과 '경쟁'을 동시에 추구하는 우리의 모순적인 태도는 모두가 함께 노동하면서도 수확물은 각자 챙겨가는 벼농사 체제에서 기원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리고 이 구조가 몇백 년 후, 자본주의 시대에까지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재난을 겪으면서 국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저자는 과거 농경 시대에는 재난을 막거나 그 피해를 잘 수습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었다고 설명하며, 오늘날 국민이 국가에 요구하는 역할과 어느 지점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갖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결국, '쌀'과 '재난', 그리고 '국가'를 통해 어떻게 하면 현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에 관해 탐구하는 책이다.


저녁을 먹으며 밥을 한 숟가락 크게 떴을 때, 숟가락에 담긴 밥알들을 보며 순간적으로 이 책이 떠올랐다. 이 작은 쌀알은 몇천 년 동안 우리에게 실로 대단한 영향을 끼쳐왔다. 저자는 책의 앞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훗날 당신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한 수저를 입에 떠 넣는 어느 순간, 동아시아의 재난 대비 국가와 한국 사회의 협업 및 위계 구조, 그리고 그로부터 만들어진 동시대 노동시장의 불평등 구조를 떠올리게 된다면, 이 책의 목적은 달성되는 셈이다.

나는 한국인의 영원한 단짝인 김치를 한 조각 찢어 숟가락 위에 올리며 생각했다. 쌀에 대해, 재난에 대해, 국가에 대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의 의도가 내게는 확실히 적용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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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글은 문학과지성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단행본을 제공받은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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