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읽다
서현숙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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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고정관념과 편견에 둘러싸인 채 살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그게 고정관념이나 편견인줄도 모르고 말이다.

물론,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어주는 일종의 방어기제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컨대,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뾰족한 바늘에 찔려 다치고 나면, 그 후로는 바늘뿐만 아니라 다른 뾰족한 물건들 또한 조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양해야 할 고정관념이나 편견은 따로 있다. 그러한 종류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은 우리로 하여금 대상 안에 담겨 있는 진가를 알아볼 수 없도록 우리의 눈을 가리는 베일과도 같다.

이 책은 저자가 소년원에서 1년 동안 국어 수업을 하며 느낀 점을 하루하루 적어내려간 에세이집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개의 계절로 나뉘어진 목차를 따라 읽으면 저자가 1년 동안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변화를 느꼈는지 독자에게 온전히 전해진다. 소년원에서의 첫수업 전 얼마나 떨리고 걱정이 앞섰는지, 소년들과 수업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해서 책을 고르고 작가를 섭외했는지, 어떤 점이 힘들었고 그로부터 무엇을 느꼈는지 등. 일기처럼 편안히 써내려간 글은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손글씨의 다정함이 느껴지는 본문 서체 또한 글의 분위기를 돋우는데 일조한다. 그 공간과 그 시간을 겪어보지 않은 독자도 저자의 글 속으로 빠져들어가, 좁은 교실 안에 학생들과 저자와 함께 둘러앉아 국어 수업을 듣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책 속에 등장하는 소년들은 모두 갖가지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으로 들어온 아이들이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그들도 또래의 여느 평범한 학생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 또한 본문에서 자신이 지레 겁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자신이 겁먹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한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을 통해 나 또한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이 소년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국어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라는 소식을 듣고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선생님이 무척 고생스러웠겠다는 걱정 섞인 안쓰러움이었다. 물론 저자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고 마음 고생도 하지만, 그것은 내가 책을 읽기 전에 했던 종류와는 조금 다른 결이었다. 나 또한 소년원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고정관념에 따라 아이들을 바라보았던 게 아닐까? 그들을 오로지 범죄자로만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한 사람을 보지 않으려고 했던 게 아닐까?


'다음에는 이런 곳이 아닌 곳에서 만나요.' 한 소년이 저자에게 건넨 말이다. 그 말 속에 담긴 무게가 묵직하다. '이런 곳'이란 어떤 곳일까? 소년들 모두 각자에게 '이런 곳'은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시 만나자는 약속과 다짐이다. 범죄자라는 낙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자신들을 자신들로 바라봐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고 믿고 있기 때문에 건넨 약속.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노력해야지. 차가운 고정관념의 베일을 벗고 바라볼 수 있도록.


* 해당 글은 사계절 서평단에 선정되어 가제본을 제공받은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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