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장폴 뒤부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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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살면서 종종 삶이 갈피를 잃은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나쁜 일은 마치 등 뒤에서 때를 노리고 있던 것처럼 한꺼번에 닥쳐오곤 한다. 왜 자꾸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내 인생은 도대체 왜 이렇게 흘러가는가? 거대한 추가 내 발목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만 같다. 이런 쥐구멍 같은 내 삶에도 언젠가 볕 들 날이 올까?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는 지난 2019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프랑스 콩쿠르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작가 장폴 뒤부아는 주인공 폴 한센의 수감생활과 그의 지난 인생에 대한 회고를 통해 상실과 후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센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지난 수십 년 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아파트 '렉셀시오르'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교도소에 수감되며,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며 교도소 생활을 버틴다. 덴마크의 목회자 출신인 아버지와 프랑스에서 작은 독립영화관을 운영하던 어머니, 가족의 해체와 아버지의 몰락, '렉셀시오르'에서의 생활과 삶의 동반자인 위노나, 그리고 반려견 누크까지. 이 소설은 폴 한센이라는 인물이 지나온 삶의 면면과 그의 현재를 교차로 보여주며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이 책을 읽는 데에는 조금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주인공이 어째서 수감 생활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설명은 책의 마지막을 읽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 수 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수감되었는지 모를 주인공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도 이전에,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대뜸 꺼내놓는다. 독자로서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강제로 듣게 된 셈이다. 게다가 몹시도 평범한 그의 개인적인 과거에 익숙해질 때쯤이 되면 소설은 다시 현재의 수감생활로 돌아온다. 심지어 주인공과 같은 방을 사용하는 수감자 패트릭 호턴 또한 그다지 호감 가는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약간의 참을성과 함께 이 책을 끈질기게 읽는다면, 소설의 말미에는 약 300페이지에 걸쳐 켜켜이 쌓인 삶의 층이 하나의 점으로 모이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소박한 멋이 있는, 홈이 파이면 파이는 대로, 금이 가면 금이 가는 대로, 상처와 상실과 후회의 연속일지라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어떤 한 사람의 단단한 인생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각나 있던 삶의 퍼즐이 맞물리는 순간, 독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나는 결말을 위해 앞의 페이지들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감히 말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읽은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기를 권한다. 소설의 문장들이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책은 적어도 두 번은 읽어야 한다.


주인공 폴 한센은 어떤 역경이 있어도 인생이라는 길을 묵묵히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책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실패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반짝임은 어떤 강렬한 빛이 아닌, 저녁놀이 잔잔한 물결에 반사되어 조각나는 빛의 산란, 그런 반짝임이다. 삶의 곳곳에 산재해 있는 작고 사소한 순간들, 실패라는 모래 속 반짝이는 한 톨의 유리 조각 같은 것이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는 지양해야 하지만, 나는 이 책의 마지막 한 문단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치고 싶다. 내용상의 스포일러를 포함하지는 않으니 안심하시길.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이 마지막 한 문단이 갖는 울림을 느끼게 되기를 바란다.

잠시 후 이 기나긴 길의 끝에서, 나는 친척들에게 가서 인사를 하리라. 현관문을 두들기면 누군가가 나에게 문을 열어주리라. 그러면 나는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말하리라. "저는 요하네스 한센의 아들입니다"(Jeg er Johanes Hansens son). - (가제본 기준) p.294


* 해당 글은 창비 서평단에 선정되어 단행본을 제공받은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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