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세계화 - 지구민주주의 선언
죠지 몬비오 지음, 황정아 옮김 / 창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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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논쟁이 한창이다. 세계화의 문제점이 붉어질 때마다 득과 실을 따지며 지역화를 대안삼아 세계화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자는 세계화 반대론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가 하면 현실을 생각하자는 세계화 찬성론자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처럼 세계화에 대한 논쟁에 임하는 이들의 의견은 ‘찬성/반대’로 나뉜다. 이분법적인 태도가 드러나고 있다. 그렇기에 세계화 문제는, 또한 논쟁의 양상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죠지 몬비오는 <도둑맞은 세계화>에서 틈을 노리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찬성론자들의 말처럼 세계화의 체제는 유지하되, 반대론자들의 입장처럼 개념자체를 바꾸자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저자는 현재 우리의 ‘동의’만 빼고 모든 것이 세계화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민주주의’만이 국민국가에 갇혀있다고 덧붙이며 현재 세계화의 문제는 이것에서 기인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주장한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체제를 바꿀 필요는 없다, 대신에 민주주의를 적용하면 된다, 라고. 저자의 말은 민주주의를 국민국가에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적용해 ‘강압의 시대’를 ‘동의의 시대’로 바꾸자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 국민국가의 임원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확실히 놀랍다. 아니, 놀라움을 넘어 황당무계하게 여겨진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투표를 해서 국가간의 분쟁을 결정하자니 황당하지 않은가. ‘이상’도 아닌 ‘몽상’적인 의견처럼 보일 따름이다. 저자도 이러한 반응을 일 것을 충분히 예상했을 테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논박을 펼치는데 그 의견들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다. 몽상이 이상으로 바뀌고, 이상이 내일의 모습으로 바뀔 정도로 타당성 있기 때문이다.


그 타당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저자는 먼저 민주주의가 세계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문제임을 밝히고 있다. 사회주의의 문제점은 역사가 증명했고, 무정부주의 또한 뚜껑을 열어보면 심각한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요즘 주목받는 ‘지역화’를 통해 세계화를 극복하자는 의견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지역화를 규제할 수 있는 세계 기구들이 또 다시 등장해야 하거니와 현재 세계화를 비판의 대상으로 만든 인간의 이기심을 지나치게 간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화는 또 다른 세계화의 모습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말인 셈이다. 저자는 여러 가지 대안들을 분석, 비판한 뒤에 현재의 체제를 민주주의로 개선해 세계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라고 말한다. ‘가장 덜 나쁜 체제’라고 밖에 말할 수 없지만 가장 유력하게 희망적인 내일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희망적인 내일을 위해 국민국가의 개념을 벗어나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하나의 투표권을 갖고 투표를 해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세계의회’의 창설을 주장한다. 이 주장은 첫 번째로 비용 문제를 우려케 만든다. 하지만 저자는 투표를 준비하는데 드는 돈이 어머 어마하다고 하지만 문제 있는 세계화 때문에 발생하는 낭비에 비하면 크지 않다며 이러한 생각을 일축한다.


두 번째 우려는 실효성이다. 설사 이것을 실현한다고 해도 WTO나 IMF 같은 초국가적인 세계기구들이나 초강대국들이 이것을 통해 나온 의견들을 수렴할지 미지수다. 아무리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 의견이 나왔다한들 상대가 듣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이미 유엔을 무시 한 채 전쟁을 한 국가가 등장했으며 그 결과로 국제 사회에서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목격했기에 이런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를 저자는 역사를 언급하며 안심시키고 있다. 저자는 기원전 5세기에 로마에서 등장한 호민관을 예로 든다. 귀족출신의 집정관이 통치하던 그때 로마의 평민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성산 사건’ 일어난다. 사라진 그들은 도시 바깥의 산에 모여 평민회를 만들고 두 명의 호민관을 선출한다. 호민관은 무엇인가? 호민관은 본래 입권 권한이 없고 그저 당국이 유권자의 요구를 인정하도록 촉구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역사가 알다시피 그들의 권한은 막강해진다. 다수의 지지자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고 이런 일은 그 후에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물론 저자는 오늘날에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어서 세계를 평준화 시키는 방안 등도 말하고 있는데 그것들 또한 세계 의회의 창설만큼이나 낯설고 황당하게 여겨지지만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실현 가능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세계화의 본래 의미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충분히 반겨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력의 차이 때문에 빈부격차가 발생하고 문제가 생기는 것인 만큼 세계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준화가 필요하고 그래서 저자의 말마따나 ‘결단’이 필요하다. 다 같이 잘 살기 위해 내일을 만드는 결단 말이다.


<도둑맞은 세계화>가 이상을 넘어 몽상적으로 여겨지는가? 저자의 주장이 반감을 일으킬 정도로 황당무계하게 여겨지는가? 첫 인상은 그렇다. 하지만 이런 꿈같은 생각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했던 것도 그런 것이 있기에 그랬득 이 문제 많다고 생각되는 세계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꿈같은 생각이 필요하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은 그저 변화할 기회,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생각하고 고민했다고 하는데 <도둑맞은 세계화>는 그런 역할로서 제격이다. 세계화를 찬성하는가? 아니면 반대하는가? 양쪽만 보지 말고 위아래를 보자. <도둑맞은 세계화>에서 누누이 강조하듯, 그곳에서 꿈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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