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Quest Study Bible-NIV
Zondervan Bibles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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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oreign.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31092804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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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시난테 > <오 하느님>, 제자리에 놓기.
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 하느님>의 작가 조정래. 태백산맥에서부터 시작된 '민족의 회한'의 문학이 여전히 계속됐다. <오 하느님>이라는 탄념은 그 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이어지게 만든다. <이것이  인간이란 말입니까>.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가 쓴 <이것이 인간인가>가 뒤이어 떠오른 이유다. 안타깝게도 <오 하느님>의 비극은 '배타적 쇼비니즘'으로, <이것이 인간인가>의 비극은 '시오니즘의 폐쇄성'으로 돌변했다.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그러나 노란 얼굴의 독일군 포로는 그의 인적사항을 기재하던 미군 병사의 사무적이고도 신경질적인 질문에 단 한마디도 답할 수 없었다. 그는 히틀러의 독일어는 물론, 그가 속해 있던 동방대대 795부대의 웬만한 다른 병사들처럼 러시아어도 할 줄 몰랐다. 영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일본군이었지만 일본어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누구도 모르는 언어, 일찌감치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어 모국어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동북아시아 변방의 조그만 반도 출신의 소작농 아들이었다.”(p.219*<오 하느님>에 실린 문학평론가 복도훈의 평론<노르망디의 실종자> 중에서)

 To. 신길만 선생께.

 생전 한 순간도 편안한 적 없었던 당신, 저승에선 안녕하신지요. 당신은 참으로 기구한 삶을 살았고, ‘개 같은’ 죽음을 당하셨더군요. 당신의 실제 모델이던 양경종 씨는 92년까지 미국에서 살다가 생을 마쳤다는 설이 있다는데, 조정래 씨가 그린 당신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개 같았어요.’ 저속하기 그지없는 표현이라 화내지 마세요. <오 하느님>의 마지막 장, 그러니까 당신의 죽음을 그린 지면을 덮고, 전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개 같은 죽음이구나…’ ‘비참한’, ‘얄궂은’, ‘비루한’ 등등의 형용사는 당신의 죽음 앞에서 너무 미약한 단어라고 전 생각했던 거예요. 
 
 당신은 피식민 국가 조선에서 살았던 미천한 존재였어요. 당신이 일본군에 “강압적인 ‘지명’”(p.27)당했을 때가 스무 살이었다지요. 장가를 갈 수 있는 나이였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일찍 장가가 입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또 아버지와 똑같이 평생 가난 속에서 허덕일 것”이 분명해 “논 한마지기라도 장만할 때까지 장가를 미루고, 뼈 휘도록 일하기로 했”었다지요. 그런데 “덜컥 지원병 지명을 당하고 말”(p.13)았던 거고요.

 당신은 몽골에서 있었던 노몬한 전투에서 소련군에게 잡히고 말았어요. 소련군의 포로로 있던 도중 당신은 소련군으로 복무할 것을 제안 받았지요. 말이 제안이지, 사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요. “길은 외길이었다. 소련군이 되지 않으면, 다시 일본군으로 돌아가야 했다.”(p.83) 이후 당신은 소련인 신 미하일이 돼, 독일군을 상대했어요. “독일군이 일제히 소련을 공격하기 시작”(p.94)함에 따라 혹독한 시베리아를 횡단하였고요. 그리고 모스크바를 사십 킬러미터 뒤에 둔 소련의 한 지역에서 있었던 전투에서 당신은 독일군에게 잡혔어요.

 독일군 포로가 된 이후의 생활은 예전 소련군 포로였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지요. 조금 더 고역스러운 잡일에 시달렸고 쓰레기보다 못한 음식을 집어삼켜야 했지만, 그 신세의 얄궂음이란 똑같은 것이었다고요. 게다가 소련군과 마찬가지로 독일군도 당신에게 명령을 했다지요. “좋아. 그럼 우리 독일군으로 근무하도록 하라!”(p.165) 당신은 별다른 주저 없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p.166)라고 대답했어요. “여기서 살아나가야” 했으니까.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야” 했으니까 말이죠. “대답을 하는 순간” 당신은 “이 생각만을 꽉 붙들고 있었”(p.166)다지요.

 당신은 노르망디에 갔어요. “덴마크라는 나라에서부터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해안까지 몇천리에 걸쳐 ‘대서양 방벽’이라는 것을 설치하고 있”(p.179)던 독일군에 합류한 것이예요. 쇠기둥을 박고, 벙커를 만들던 도중 노르망디전투에 투입된 미군에 의해 또 다시 포로가 됐어요. 미군 포로 때의 생활은 예전과는 달랐다지요. “아무런 통제나 간섭없이 자유로웠다”(p.187)고 해요. 그래서 당신은 “언젠부턴가, 다른 나라에 비해 포로를 월등하게 사람 대접 해주는 미국에 강한 기대를 품”(p.187)게 됐고요. “이런 나라라면,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바로 우리나라로 보내줄 것 같았”(p.188)다고 여겼다지요. 당신과 동료들은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썼습니다. “우리는 쏘련인이 아니다!”, “우리는 조선인이다!”, “우리의 국적을 고쳐달라!” 그렇지만 당신의 요구는 쇠고랑은 묵살됐어요. “유감스럽지만 국적을 고칠 수 없다. 그건 쏘련의 권한이지 우리 미국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간결한 말 한마디에 의해 말이죠.

 "독일의 패색이 짙은 가운데 얄타 회담이 열렸”고 “스탈린은 미국에 수용되어 있는 독일군 포로들 중에서 국적이 소련인 자들을 전부 소련으로 송환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해요. “미국 대통령은 그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고요. “독일군에게 잡힌 미군 포로들이 동유럽의 여러 수용소에 칠만오천 명쯤 갇혀 있었는데, 이제 그 지역이 소련의 점령하에 있었던” 까닭이지요. “미국은 자국민 포로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급선무였”(p.207)던 거예요. 당신은 배를 다시 소련으로 갔어요.

 “(중략)“여기서 삼십 분 쉬어 간다. 모두 내려 트럭선(線) 안에서 소변도 보고 자유롭게 쉬어라”
   장교들이 트럭에서 내리는 포로들에게 일렀다. 사병들은 트럭 사이사이에 서서 포로들을 분지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나무들 많은 야산으로 에워싸인 그 분지는 수많은 포로들이 용변을 보면서 휴식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마지막 트럭에서 포로들이 다 내리고 몇 분이나 지났을까.
  타당탕탕탕탕……
  타당타타타타……
  드득드드드드……
  야산 숲 속 여기저기서 기관총 난사가 시작되었다. 한가롭게 쉬고 있던 수많은 포로들은 아우성과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지고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나뒹굴고 뒤엉키고 있었다."(p.213)

 작가 조정래는 당신의 마지막을 이렇게 묘사하며 끝냈어요. 당신의 운명처럼 기구하게, 허망하게 말이죠. 


 "이 남자는 일본군으로 징집되었다. 1939년 만주 국경 분쟁 당시 소련군에 붙잡혀 붉은 군대에 편입되었다. 그는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대서양 방어선을 건설하는 데 강제 투입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로 붙잡혔을 당시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신길만 선생님. 작가 조정래를 통해 당신의 이야기를 접한 후 전 '민족주의'에 대해 생각했어요. 당신의 행로 중간 중간 강력히 자리매김하고 있던 '민족의 끈'을 봤어요.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들 말이죠. "그런데 그들이 놀랄 일이 벌어졌다. 조선말을 듣고 온 것은 강명수만이 아니었다. 셋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신길만과 천일호가 따로 찾으러 나서고 어쩌고 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이 모두 열한명이었다. 그들은 서로서로 손을 마주 잡는 순간에 십년지기가 되고, 한 덩어리가 되었다."(p.70) "신길만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해 인사를 했다. 그 사람이,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이 그렇게 반갑고도 고마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같은 조선 사람이라는 것이 이렇게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것처럼 마음 환해지고, 가슴이 뜨겁게 울렁거리도록 반가운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리고 무엇이 고마운지 모르면서도 그저 고맙고, 고마웠다. 그 사람이 틀림없이 이 곤궁에서 구해줄 것만 같은, 그가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주리라는 믿음이 고마운 마음을 일으키고 있었다."(p.56)

 그렇습니다. 당신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들에게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조선'이라는 '민족의 끈' 때문에 말이죠. 실제로 비슷한 습관을 공유하고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은 그야말로 강력한 '상상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주의에 대한 자신의 책 <상상의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8세기 말경에 이 민족주의라는 문화적 조형물들이 서로 관련이 없는 역사적 동력들이 복잡하게 '교차해서' 나온 우발적인 증류물로 창조되었지만 일단 창조되자 그것은 아주 다른 사회적 환경에 다양하게 의식적으로 이식될 수 있는 '조립물'이 되었으며, 여러 종류의 정치적*이념적 유형들을 통합하고 이 유형들에 흡수될 수 있었다."(p.23)

 앤더슨의 말처럼 민족, 민족성, 혹은 민족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위력이 있는 반면 철학적으로는 그 내용이 빈곤하고 일관성마저 결여하고 있"(p.24)는 게 사실입니다. 즉 민족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어떠한 '정치적, 이념적 유형'들과 통합됐을 때 매우 강력한 행위 동인으로 작용합니다. 당신의 행동은 피식민지배 상황의 특수한 정치적 유형이 '민족의 끈'을 공고히 한 셈이지요. 실제로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와 결합하여 '쇼비니즘'의 광기로, 피식민국가의 해방의식과 결합해서는 민족자결주의로 탈바꿈합니다. 반론의 여지가 없진 않으나 우리나라의 해방에 '민족주의'가 준 함의는 대단히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이제 '민족주의는 반역'이 됐다는 사실을 말씀드려야 할 듯 합니다. 혹자는 '좋은' 민족주의와 '나쁜' 민족주의를 지혜롭게 구분하자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만, 공허한 외침으로 들립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민족주의'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배타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군 아래 일치단결을 강요하는 한민족 이데올로기는 국가에 의해 '밑으로부터의 희생'을 강요하는 기제로, 다른 한편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를 폄훼하는 기제로 쓰이고 있습니다. 또 다른 혹자는 북한의 존재 때문에, 통일의 당위성 때문에 '민족의 가치'를 옹호하기도 합니다. 일견 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기엔 민족이라는 관념만한 게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민족', 혹은 '민족주의'는 통일담론에 있어 왕따가 됐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조직인 '민족좌파'는 북한의 핵실험을 묵인하고, 민족주의의 긍정성을 보수해 나가야 할 우파는 북한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둘 모두에게서 공히 '민족주의'가 걸림돌이 된 셈이지요.

박지성의 손을 꼭 부여잡은 이영표의 손. 이 때의 상황은 이렇다. 박지성이 '토트넘'의 진영에서 이영표가 가지고 있던 공을 가로챈다. 박지성이 소속팀의 동료인 웨인 루니에게 그 공을 연결하고, 웨인 루니가 득점에 성공한다. 웨인 루니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사이 박지성이 이영표에게 다가가 미안한 듯 엉덩이를 두들긴다. 이영표는 괜찮다며 박지성의 손을 맞잡는다.

 가슴 찡한 장면이다, 라고 한다. 글쎄. 난 그리 이들의 행동이 그리 가슴 '찡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박지성이 미안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 서로에게 '미안하거나 괜찮다며 두드리거나' 할 행동을 하지 않았다. 박지성이 미안했다면 '개인적인 친분관계'에 의한 감정이어야 맞다. 그렇다면 이 감정을 풀 장소는 그라운드가 아니라 각자의 방에 있는 '전화기'여야 맞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 장면을 보고 '울컥' 하는 국민들에 있다. 한민족의 이름으로 세계 최고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두 사람의 '우정'에 감격하는 우리 국민들. 이들과 우리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끈은 '한민족'이라는 사실 하나다. 자랑스런 한국인의 자랑스런 우정에 '한민족의 긍지'를 자위하는 것이다. 아무런 '우정'에나 감격하는 건 아니다. 이들의 '프리미어'함이 가미돼야 한다.  이게 무슨 대수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저 '우리끼리 만족하며 살면 되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다음을 보자.

 



 "태극전사를 응원하는 마음, 배타적 민족주의를 선동한 것인가?? 아니다. 우리 한민족은 9천년 역사동안 한 핏줄 속에 흐르는 홍익인간, 선민사상으로 나라가 어려우면 하나로 똘똘뭉쳐 외환을 극복해낸 민족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역사를 통해 보면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 민족도 보살필 줄 아는 이미 세계화 마인드를 가진 민족이다." - 'SUNDANCE D.SIGN, 웰빙코스님 블로그 중에서.

'선민사상'이 대처 뭔가? '배타적 민족주의'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다른 민족보다 깨어있다는 '선민의식'이 배타성을 불러오는 것 아니냔 말이다. 게다가 '나라가 어려우면 하나로 똘똘뭉쳐'야 한다는 민족의식이 어디로부터 비롯됐느냐도 생각해 볼 문제다. 어디서 많이 봐온 홍보문구 아닌가? '힘들수록 뭉쳐야 한다'는 밑의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다. 붉은 악마의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건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신남'은 '놀이'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국가'와 결합해 '국가주의적 도구'로 변모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 국가주의는 종종 우리에게 국가 아래 단결할 것을 강요한다. 국가를 정점으로 한 '종적 단결'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흐리게 만들어 이건희와 전태일을 같은 층위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종적 단결' 아니라 '횡적 연대'다. 

민족주의에 관한 가장 큰 문제점은 앤더슨이 지적한 다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각 민족에 보편화되어 있을지 모르는 실질적인 불평등과 수탈에도 불구하고 민족은 언제나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으로 상상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지난 2세기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제한된 상상체들을 위해 남을 죽이기보다 스스로 기꺼이 죽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형제애이다." 앤더슨이 이 지적은 민족의 이름으로 전쟁에 동원된 경우를 상정한 듯 보이지만 현재는 전쟁의 자리를 '국가경제'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IMF를 불러오게 한 원인의 분석 없이 국민의 희생을 강요한 것을 보세요. 민족의 힘을 믿겠다는 상투적인 선전구를 동원해서 말이지요.

최근엔 한-미 FTA가 타결됐습니다. 또 '민족의 힘을 믿겠다'는 얘기를 합니다. 국민을 무한경쟁의 사지로 몰아넣고, '민족의 힘'을 믿겠다니요.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은 스스로의 힘이 부족한 것이며, 이는 자기 책임으로 귀결된다지요. 임지현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는 아포리즘은 그래서, 맞는 말이 됐습니다.

물론, 선생님. 당신이 살았던 시대의 민족주의를 간과해선 안될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이제 그 시기 민족주의는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아야지, 현재의 발목을 잡아선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피식민지를 견뎌내게 해 주었던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제 자리'에 돌려놓을 때가 됐다는 말입니다. '위안부 문제' 등 여전히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굳이 여기에 민족주의가 투입될 필요가 없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위안부 조사 위원회'는 민족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도 그 시기의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해 근엄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민족주의는 이제 기록으로 남아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  

 이 점에 당신의 비루함을 기록한 조정래의 <오 하느님>은 가치가 있습니다. 역사는 강자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경향이 짙어, 삶의 밑바닥에 있었던 당신의 삶은 '한 줄' 따위로 정리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조정래의 다음과 같은 말이 큰 울림을 주는 이유입니다. "언제 어느 때나 문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다. 역사는 그 안에 포함된다. 인간을 응시할 수록 거듭하여 인간에 대한 질문과 마주 서게 된다." 조정래의 민족문학이 여전히 유효한 건 '역사 속에서 희생당했던 인간에 대한' 탐구 정신을 놓치고 있지 때문인 듯 보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를 묘사하던 대목에서 코끝이 매워질 정도로 찡했습니다. "니 이름을 왜 길만이라고 지었는지 아냐? 길할 길(吉)자, 일만 만(萬)자, 니 평생 좋은 일만 있으라고 그런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이름 덕도 보는 것잉게, 이름 믿고 무슨 일이고 열성으로 해야 혀." 억울하게도 당신의 이름은 이승에서 단 한번도 당신의 삶이 돼주지 못했다지요. 지금 계신 그 곳에선 이름 덕 보며 사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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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시난테 > <오 하느님>, 제자리에 놓기.
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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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 하느님>의 작가 조정래. 태백산맥에서부터 시작된 '민족의 회한'의 문학이 여전히 계속됐다. <오 하느님>이라는 탄념은 그 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이어지게 만든다. <이것이  인간이란 말입니까>.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가 쓴 <이것이 인간인가>가 뒤이어 떠오른 이유다. 안타깝게도 <오 하느님>의 비극은 '배타적 쇼비니즘'으로, <이것이 인간인가>의 비극은 '시오니즘의 폐쇄성'으로 돌변했다.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그러나 노란 얼굴의 독일군 포로는 그의 인적사항을 기재하던 미군 병사의 사무적이고도 신경질적인 질문에 단 한마디도 답할 수 없었다. 그는 히틀러의 독일어는 물론, 그가 속해 있던 동방대대 795부대의 웬만한 다른 병사들처럼 러시아어도 할 줄 몰랐다. 영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일본군이었지만 일본어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누구도 모르는 언어, 일찌감치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어 모국어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동북아시아 변방의 조그만 반도 출신의 소작농 아들이었다.”(p.219*<오 하느님>에 실린 문학평론가 복도훈의 평론<노르망디의 실종자> 중에서)

 To. 신길만 선생께.

 생전 한 순간도 편안한 적 없었던 당신, 저승에선 안녕하신지요. 당신은 참으로 기구한 삶을 살았고, ‘개 같은’ 죽음을 당하셨더군요. 당신의 실제 모델이던 양경종 씨는 92년까지 미국에서 살다가 생을 마쳤다는 설이 있다는데, 조정래 씨가 그린 당신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개 같았어요.’ 저속하기 그지없는 표현이라 화내지 마세요. <오 하느님>의 마지막 장, 그러니까 당신의 죽음을 그린 지면을 덮고, 전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개 같은 죽음이구나…’ ‘비참한’, ‘얄궂은’, ‘비루한’ 등등의 형용사는 당신의 죽음 앞에서 너무 미약한 단어라고 전 생각했던 거예요. 
 
 당신은 피식민 국가 조선에서 살았던 미천한 존재였어요. 당신이 일본군에 “강압적인 ‘지명’”(p.27)당했을 때가 스무 살이었다지요. 장가를 갈 수 있는 나이였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일찍 장가가 입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또 아버지와 똑같이 평생 가난 속에서 허덕일 것”이 분명해 “논 한마지기라도 장만할 때까지 장가를 미루고, 뼈 휘도록 일하기로 했”었다지요. 그런데 “덜컥 지원병 지명을 당하고 말”(p.13)았던 거고요.

 당신은 몽골에서 있었던 노몬한 전투에서 소련군에게 잡히고 말았어요. 소련군의 포로로 있던 도중 당신은 소련군으로 복무할 것을 제안 받았지요. 말이 제안이지, 사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요. “길은 외길이었다. 소련군이 되지 않으면, 다시 일본군으로 돌아가야 했다.”(p.83) 이후 당신은 소련인 신 미하일이 돼, 독일군을 상대했어요. “독일군이 일제히 소련을 공격하기 시작”(p.94)함에 따라 혹독한 시베리아를 횡단하였고요. 그리고 모스크바를 사십 킬러미터 뒤에 둔 소련의 한 지역에서 있었던 전투에서 당신은 독일군에게 잡혔어요.

 독일군 포로가 된 이후의 생활은 예전 소련군 포로였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지요. 조금 더 고역스러운 잡일에 시달렸고 쓰레기보다 못한 음식을 집어삼켜야 했지만, 그 신세의 얄궂음이란 똑같은 것이었다고요. 게다가 소련군과 마찬가지로 독일군도 당신에게 명령을 했다지요. “좋아. 그럼 우리 독일군으로 근무하도록 하라!”(p.165) 당신은 별다른 주저 없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p.166)라고 대답했어요. “여기서 살아나가야” 했으니까.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야” 했으니까 말이죠. “대답을 하는 순간” 당신은 “이 생각만을 꽉 붙들고 있었”(p.166)다지요.

 당신은 노르망디에 갔어요. “덴마크라는 나라에서부터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해안까지 몇천리에 걸쳐 ‘대서양 방벽’이라는 것을 설치하고 있”(p.179)던 독일군에 합류한 것이예요. 쇠기둥을 박고, 벙커를 만들던 도중 노르망디전투에 투입된 미군에 의해 또 다시 포로가 됐어요. 미군 포로 때의 생활은 예전과는 달랐다지요. “아무런 통제나 간섭없이 자유로웠다”(p.187)고 해요. 그래서 당신은 “언젠부턴가, 다른 나라에 비해 포로를 월등하게 사람 대접 해주는 미국에 강한 기대를 품”(p.187)게 됐고요. “이런 나라라면,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바로 우리나라로 보내줄 것 같았”(p.188)다고 여겼다지요. 당신과 동료들은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썼습니다. “우리는 쏘련인이 아니다!”, “우리는 조선인이다!”, “우리의 국적을 고쳐달라!” 그렇지만 당신의 요구는 쇠고랑은 묵살됐어요. “유감스럽지만 국적을 고칠 수 없다. 그건 쏘련의 권한이지 우리 미국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간결한 말 한마디에 의해 말이죠.

 "독일의 패색이 짙은 가운데 얄타 회담이 열렸”고 “스탈린은 미국에 수용되어 있는 독일군 포로들 중에서 국적이 소련인 자들을 전부 소련으로 송환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해요. “미국 대통령은 그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고요. “독일군에게 잡힌 미군 포로들이 동유럽의 여러 수용소에 칠만오천 명쯤 갇혀 있었는데, 이제 그 지역이 소련의 점령하에 있었던” 까닭이지요. “미국은 자국민 포로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급선무였”(p.207)던 거예요. 당신은 배를 다시 소련으로 갔어요.

 “(중략)“여기서 삼십 분 쉬어 간다. 모두 내려 트럭선(線) 안에서 소변도 보고 자유롭게 쉬어라”
   장교들이 트럭에서 내리는 포로들에게 일렀다. 사병들은 트럭 사이사이에 서서 포로들을 분지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나무들 많은 야산으로 에워싸인 그 분지는 수많은 포로들이 용변을 보면서 휴식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마지막 트럭에서 포로들이 다 내리고 몇 분이나 지났을까.
  타당탕탕탕탕……
  타당타타타타……
  드득드드드드……
  야산 숲 속 여기저기서 기관총 난사가 시작되었다. 한가롭게 쉬고 있던 수많은 포로들은 아우성과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지고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나뒹굴고 뒤엉키고 있었다."(p.213)

 작가 조정래는 당신의 마지막을 이렇게 묘사하며 끝냈어요. 당신의 운명처럼 기구하게, 허망하게 말이죠. 


 "이 남자는 일본군으로 징집되었다. 1939년 만주 국경 분쟁 당시 소련군에 붙잡혀 붉은 군대에 편입되었다. 그는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대서양 방어선을 건설하는 데 강제 투입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로 붙잡혔을 당시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신길만 선생님. 작가 조정래를 통해 당신의 이야기를 접한 후 전 '민족주의'에 대해 생각했어요. 당신의 행로 중간 중간 강력히 자리매김하고 있던 '민족의 끈'을 봤어요.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들 말이죠. "그런데 그들이 놀랄 일이 벌어졌다. 조선말을 듣고 온 것은 강명수만이 아니었다. 셋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신길만과 천일호가 따로 찾으러 나서고 어쩌고 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이 모두 열한명이었다. 그들은 서로서로 손을 마주 잡는 순간에 십년지기가 되고, 한 덩어리가 되었다."(p.70) "신길만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해 인사를 했다. 그 사람이,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이 그렇게 반갑고도 고마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같은 조선 사람이라는 것이 이렇게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것처럼 마음 환해지고, 가슴이 뜨겁게 울렁거리도록 반가운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리고 무엇이 고마운지 모르면서도 그저 고맙고, 고마웠다. 그 사람이 틀림없이 이 곤궁에서 구해줄 것만 같은, 그가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주리라는 믿음이 고마운 마음을 일으키고 있었다."(p.56)

 그렇습니다. 당신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들에게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조선'이라는 '민족의 끈' 때문에 말이죠. 실제로 비슷한 습관을 공유하고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은 그야말로 강력한 '상상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주의에 대한 자신의 책 <상상의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8세기 말경에 이 민족주의라는 문화적 조형물들이 서로 관련이 없는 역사적 동력들이 복잡하게 '교차해서' 나온 우발적인 증류물로 창조되었지만 일단 창조되자 그것은 아주 다른 사회적 환경에 다양하게 의식적으로 이식될 수 있는 '조립물'이 되었으며, 여러 종류의 정치적*이념적 유형들을 통합하고 이 유형들에 흡수될 수 있었다."(p.23)

 앤더슨의 말처럼 민족, 민족성, 혹은 민족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위력이 있는 반면 철학적으로는 그 내용이 빈곤하고 일관성마저 결여하고 있"(p.24)는 게 사실입니다. 즉 민족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어떠한 '정치적, 이념적 유형'들과 통합됐을 때 매우 강력한 행위 동인으로 작용합니다. 당신의 행동은 피식민지배 상황의 특수한 정치적 유형이 '민족의 끈'을 공고히 한 셈이지요. 실제로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와 결합하여 '쇼비니즘'의 광기로, 피식민국가의 해방의식과 결합해서는 민족자결주의로 탈바꿈합니다. 반론의 여지가 없진 않으나 우리나라의 해방에 '민족주의'가 준 함의는 대단히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이제 '민족주의는 반역'이 됐다는 사실을 말씀드려야 할 듯 합니다. 혹자는 '좋은' 민족주의와 '나쁜' 민족주의를 지혜롭게 구분하자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만, 공허한 외침으로 들립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민족주의'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배타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군 아래 일치단결을 강요하는 한민족 이데올로기는 국가에 의해 '밑으로부터의 희생'을 강요하는 기제로, 다른 한편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를 폄훼하는 기제로 쓰이고 있습니다. 또 다른 혹자는 북한의 존재 때문에, 통일의 당위성 때문에 '민족의 가치'를 옹호하기도 합니다. 일견 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기엔 민족이라는 관념만한 게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민족', 혹은 '민족주의'는 통일담론에 있어 왕따가 됐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조직인 '민족좌파'는 북한의 핵실험을 묵인하고, 민족주의의 긍정성을 보수해 나가야 할 우파는 북한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둘 모두에게서 공히 '민족주의'가 걸림돌이 된 셈이지요.

박지성의 손을 꼭 부여잡은 이영표의 손. 이 때의 상황은 이렇다. 박지성이 '토트넘'의 진영에서 이영표가 가지고 있던 공을 가로챈다. 박지성이 소속팀의 동료인 웨인 루니에게 그 공을 연결하고, 웨인 루니가 득점에 성공한다. 웨인 루니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사이 박지성이 이영표에게 다가가 미안한 듯 엉덩이를 두들긴다. 이영표는 괜찮다며 박지성의 손을 맞잡는다.

 가슴 찡한 장면이다, 라고 한다. 글쎄. 난 그리 이들의 행동이 그리 가슴 '찡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박지성이 미안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 서로에게 '미안하거나 괜찮다며 두드리거나' 할 행동을 하지 않았다. 박지성이 미안했다면 '개인적인 친분관계'에 의한 감정이어야 맞다. 그렇다면 이 감정을 풀 장소는 그라운드가 아니라 각자의 방에 있는 '전화기'여야 맞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 장면을 보고 '울컥' 하는 국민들에 있다. 한민족의 이름으로 세계 최고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두 사람의 '우정'에 감격하는 우리 국민들. 이들과 우리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끈은 '한민족'이라는 사실 하나다. 자랑스런 한국인의 자랑스런 우정에 '한민족의 긍지'를 자위하는 것이다. 아무런 '우정'에나 감격하는 건 아니다. 이들의 '프리미어'함이 가미돼야 한다.  이게 무슨 대수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저 '우리끼리 만족하며 살면 되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다음을 보자.

 



 "태극전사를 응원하는 마음, 배타적 민족주의를 선동한 것인가?? 아니다. 우리 한민족은 9천년 역사동안 한 핏줄 속에 흐르는 홍익인간, 선민사상으로 나라가 어려우면 하나로 똘똘뭉쳐 외환을 극복해낸 민족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역사를 통해 보면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 민족도 보살필 줄 아는 이미 세계화 마인드를 가진 민족이다." - 'SUNDANCE D.SIGN, 웰빙코스님 블로그 중에서.

'선민사상'이 대처 뭔가? '배타적 민족주의'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다른 민족보다 깨어있다는 '선민의식'이 배타성을 불러오는 것 아니냔 말이다. 게다가 '나라가 어려우면 하나로 똘똘뭉쳐'야 한다는 민족의식이 어디로부터 비롯됐느냐도 생각해 볼 문제다. 어디서 많이 봐온 홍보문구 아닌가? '힘들수록 뭉쳐야 한다'는 밑의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다. 붉은 악마의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건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신남'은 '놀이'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국가'와 결합해 '국가주의적 도구'로 변모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 국가주의는 종종 우리에게 국가 아래 단결할 것을 강요한다. 국가를 정점으로 한 '종적 단결'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흐리게 만들어 이건희와 전태일을 같은 층위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종적 단결' 아니라 '횡적 연대'다. 

민족주의에 관한 가장 큰 문제점은 앤더슨이 지적한 다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각 민족에 보편화되어 있을지 모르는 실질적인 불평등과 수탈에도 불구하고 민족은 언제나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으로 상상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지난 2세기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제한된 상상체들을 위해 남을 죽이기보다 스스로 기꺼이 죽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형제애이다." 앤더슨이 이 지적은 민족의 이름으로 전쟁에 동원된 경우를 상정한 듯 보이지만 현재는 전쟁의 자리를 '국가경제'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IMF를 불러오게 한 원인의 분석 없이 국민의 희생을 강요한 것을 보세요. 민족의 힘을 믿겠다는 상투적인 선전구를 동원해서 말이지요.

최근엔 한-미 FTA가 타결됐습니다. 또 '민족의 힘을 믿겠다'는 얘기를 합니다. 국민을 무한경쟁의 사지로 몰아넣고, '민족의 힘'을 믿겠다니요.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은 스스로의 힘이 부족한 것이며, 이는 자기 책임으로 귀결된다지요. 임지현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는 아포리즘은 그래서, 맞는 말이 됐습니다.

물론, 선생님. 당신이 살았던 시대의 민족주의를 간과해선 안될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이제 그 시기 민족주의는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아야지, 현재의 발목을 잡아선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피식민지를 견뎌내게 해 주었던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제 자리'에 돌려놓을 때가 됐다는 말입니다. '위안부 문제' 등 여전히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굳이 여기에 민족주의가 투입될 필요가 없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위안부 조사 위원회'는 민족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도 그 시기의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해 근엄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민족주의는 이제 기록으로 남아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  

 이 점에 당신의 비루함을 기록한 조정래의 <오 하느님>은 가치가 있습니다. 역사는 강자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경향이 짙어, 삶의 밑바닥에 있었던 당신의 삶은 '한 줄' 따위로 정리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조정래의 다음과 같은 말이 큰 울림을 주는 이유입니다. "언제 어느 때나 문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다. 역사는 그 안에 포함된다. 인간을 응시할 수록 거듭하여 인간에 대한 질문과 마주 서게 된다." 조정래의 민족문학이 여전히 유효한 건 '역사 속에서 희생당했던 인간에 대한' 탐구 정신을 놓치고 있지 때문인 듯 보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를 묘사하던 대목에서 코끝이 매워질 정도로 찡했습니다. "니 이름을 왜 길만이라고 지었는지 아냐? 길할 길(吉)자, 일만 만(萬)자, 니 평생 좋은 일만 있으라고 그런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이름 덕도 보는 것잉게, 이름 믿고 무슨 일이고 열성으로 해야 혀." 억울하게도 당신의 이름은 이승에서 단 한번도 당신의 삶이 돼주지 못했다지요. 지금 계신 그 곳에선 이름 덕 보며 사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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