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은 커튼에 비치는 햇살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생각했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대관절 무슨 쓸모가 있는 것일까? 맹수들이 많았던 옛날에는 남성의 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몇 세기 전부터 남자들은 거의 아무것에도 쓸모가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이따금 테니스 경기를 하면서 따분함을 잊는다. 그건 별로 나쁠 게 없다. 하지만 때로 그들은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들이 역사를 발전시킨다고 생각하면서 벌이는 일은 주로 전쟁과 혁명이다. 전쟁과 혁명은 터무니없는 고통을 야기할  뿐 아니라. 매번 모든 것을 백지 상태로 만들고 다시 건설할 것을 강요함으로써 과거의 가장 좋은 것을 파괴하기 일쑤다. 그리하여 인류의 진화는 정연한 흐름 속에서 점진적으로 상승해 가는 양상을 보이기보다는 무질서하고 불규칙하고 폭력적인 양상을 보였다. 그 모든 것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전적으로 남자들에게 있다. 모험과 도박을 좋아하는 그들의 성향, 그들의 기괴한 허영심, 그들의 무책임, 그들의 폭력에 말이다. 그들의 기괴한 허영심, 그들의 무책임, 그들의 폭력에 말이다. 여자들이 주도하는 세계는 모든 점에서 남자들이 주도하는 세계보다 나을 것이다. 비록 진보는 더딜지언정, 그 세계는 모두가 행복한 상태를 향해 규칙적으로 나아갈 것이다. 되돌아가는 일도 없이, 그리고 모든 것을 한 번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도 없이 말이다. 22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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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사실상 낯선 이방인의 권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집과 배, 사업 그리고 어쩌면 뒤따르는 가족도 버리고, 전 세계에서 이상주의적이고, 전적으로 비현실적이며, 돈키호테 같은 몽상가로 간주될 한 인간의 으쯤 사도가 되었다. 그 인ㄴ간이 바로 예수였다. 예수는 어부 시몬이 맡을 새로운 사명을 표시하고자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으니, 고대에는 흔치 않던 반석이라는 의미의 ‘페트로스Petros‘, 즉 ‘베드로‘였다. 성서에는 이 이름이 다른 누구에게도 부여되지 않는다. 베드로의 믿음이 예수를 저버린 때도 종종 있었지만, 베드로는 예수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라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었다([마태오의 복음서] 16장 13절 참조). 대신 예수는 베드로에게 ‘왕국의 열쇠‘를 주었다.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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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일곱 편의 소설을 써서 출간했으니, 나 자신을 힘들게 하면서도 상상했던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었으니까요. 내가 써서 뒤로한 책들처럼, 내 뒤에 이 책들을 쓴 작가 유령들을 남겨 좋았다는 것도 이제는 압니다. 나와 비슷한 그 일곱 명의 각각 다른 ‘내포 작가‘들은, 30년 동안 세계와 삶이, 이스탄불에서, 내가 사는 곳과 비슷한 어떤 곳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아는 대로, 믿는 대로, 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진지함하고 책임감 있게 설명했습니다. 

앞으로 30년을 더 소설을 쓸 수 있기를, 이를 핑계로 다른 정체들로 분하여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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