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도상학자들에게는 주로 종교. 문학적 기원, 제식과 종교 미술의 관계가 연구 대상이었지만, 바르부르크에게 그림의 연구란 곧 종교, 시, 신화, 학문, 그리고 사화적. 정치적 생활과 그림의 관계에 대한 연구였다. 미술이란 그에게 있어 역사적 삶의 다층적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었다.
재매개는 개혁이다. 재매개의 목적은 다른 미디어를 개조하거나 복구하는 것이다. 나아가 모든 매개가 실재적이면서 동시에 실재적인 것의 매개이기 때문에 재매개 또한 실재를 개혁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제 모든 매개는 재매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이 선험적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같이 확장된 역사적 관점에서 현재의 모든 미디어가 재매개체remediatiors로 기능한다고, 그리고 재매개는 기존 미디어에 대한 해석 수단도 아울러 제공해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타인과 공유하는 이 세상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를 인정하고, 그런 자각을 넓혀나가는 것도 아직까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일인 듯하다. 이 세상에 온갖 악행이 존재하고 있다는 데 매번 놀라는 사람, 인간이 얼마나 섬뜩한 방식으로 타인에게 잔인한 해코지를 손수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를 볼 때마다 끊임없이 환멸을 느끼는 사람은 도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인물이다. 나이가 얼마나 됐든지 간에, 무릇 사람이라면 이럴 정도로 무지할 뿐만 아니라 세상만사를 망각할 만큼 순수하고 천박해질 수 있을 권리가 전혀 없다.
개인은 틀림없이 무의식으로 남아 있을 자신의 희망을 직접 거론할 처지에 있지 않다. 그래서 개인은 자신의 희망을 표현하는 동시에 부정하는 `증상`을 드러낸다. 바로 그래서 노이로제, 상상력, 꿈은 같은 구조를 가진다. 부정하며 한사코 맞서야 하는 그것을 포함하는 게 본래 노이로제이자 상상력이며 꿈이다. 드러내지 않고 은밀히 숨긴 채 욕구에 몰두한다. 어떤 말도 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 말한다. 개인이 이런식으로 세계와 관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의식이 내용을 억누르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