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익숙한 실망감을 느꼈다. 이젠 인간이 어떤 문제에 대해 타인의 동의를 얻는 것이 불가능했다. 우리는 절반만 공유되는 믿을 수 없는 인식의 안개 속에서 살았고, 우리의 감각 정보는 욕망과 믿음의 프리즘에 의해 왜곡되었으며, 그 프리즘은 우리의 기억까지도 왜곡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이로운 것을 보고 이롭게 기억했고, 그러면서 우리 자신을 설득했다. 냉혹한 객관성은, 특히 우리 자신에 관한 냉혹한 객관성은 늘 불운한 사회적 전략이었다. 우리는 분개해 반쪽짜리 진실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후계자이고, 이 이야기꾼들은 남을 확신시키기 위해 동시에 자기 자신을 설득했다. 수세대에 걸쳐 성공이 우리를 걸러내왔고 성공과 함께 우리의 결점도 나타났는데, 결점은 우마차가 다니는 시골길에 난 바큇자국처럼 우리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 결점이 우리에게 맞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것에 동의하지 못한다. 믿는 대로 보인다. 그것이 바로 이혼과 국경분쟁과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이고, 성모상이 피눈물을 흘리는 이유이며, 가네샤 신이 우유를 마시는 이유이다. 글고 그것이 바로 형이상학과 과학이 그토록 용감한 사업이고, 바퀴나 농업보다도 위대한 놀라운 발명품이며, 인간 본성에 맞서는 인간의 인공적인 작품인 이유이다. 객관적인 진실, 그러나 그것인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없었다. 바큇자국이 너무 깊었다. 객관성에 사적인 구원은 있을 수 없었다. 271-272 - P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