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나치스에게 민족공동체 내의 출산 장려와 후원은 민족 부흥의 시급한 과제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었다. 우생학에 몰두한 나치 정권의 의사들은 의도적인 산아 제한을 기질적인 과오로 보았으며 심지어 윤리적 타락으로 설명하기까지 했다. 이런 점에서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관계는 베르크호프의 측근들 사이에서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개인적 욕구가 민족공동체라는 규범에 종속되고 개인적 행동을 유대적이고 자유주의적이라는 이유로 유죄 선고를 내린 정권에서 정작 히틀러는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더구나 히틀러 스스로 인간에게 가장 신성한 과제는 신이 부여한 혈통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선전한 정권에서 말이다. 23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