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온조는 백제를 세웠을까? - 비류 vs 온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3
강재광 지음, 이남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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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온조는 백제를 세웠을까?

강재광 글 / 이남고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해양 강국이었던 백제는 중국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찬란한 고대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나아가 그 문화를 신라와 가야 그리고 일본에 전해 주었습니다.

백제는 앞선 문화를 이웃 나라에 전파하던 문화의 선도 국가였으며, 농업, 불교, 건축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백제의 기록이 왜곡되었다는 걸 알게되고 나서는 온조와 비류는 왜 고구려를 떠났고

왜 그들은 따로 도읍지를 정했으며 진정한 백제의 건국 시조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과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전해 옵니다.

이것은 주몽과 박혁거세가 하늘이 낸 위대한 인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백제 시조인 온조는 주몽의 아들로 역시 위대한 인물로 전해집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처음에는 작은 나라였지만 주변의 다른 작은 나라들을 정복하면서

큰 나라로 성장하게 됩니다.

 

백제의 건국과정은 시조인 온조 설화에 나타나 있습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아들 유리가 주몽을 찾아오자, 비류와 온조 형제는 그를 피해 남하합니다.

그리고 각각 미추홀과 위례성에 자리를 잡고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이후 비류 세력은 온조의 세력에 흡수하게 됩니다.

 

고구려 주몽의 아들로 알려진 온조가 남하해 하남 위례성에 정착하여 백제를 세웁니다.

마한의 소국 가운에 하나로 발전한 백제는 3세기 중엽 고이왕때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였습니다.

 

온조가 낙랑군의 용병 세력인 말갈을 6회나 물리쳤고 낙랑군 공격을 계획한 것만 보더라도

낙랑군에 대해서 자주적으로 대항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온조는 마한의 중심부를 공격해서 마한

연맹체의 우두머리 격인 목지국과 그 주변 소국들을 복속시켜 백제국의 위용을 높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온조는 한성 백제의 초석을 다진 건국 시조로 평가될수 있다고 합니다.

 

조금은 아이들에게 어려운 내용도 있었는데요 그 시절을 이해하고 역사의 흐름을 파악해보니

도움이 많이 되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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