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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여 대소왕은 억울하다고 할까? - 대소왕 vs 추모왕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
김용만 지음, 이동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8월
평점 :
왜
부여 대소왕은 억울하다고 할까?
김용만
글 / 이동철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부여는 고조선과 함께
한국사의 중요한 뿌리임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조상
나라로 기원전 3세기경에는 건국되어 기원후 494년까지 7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
였습니다. 기원후 42년에
가야가 등장한 이후부터 494년까지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시대가 아닌
부여와 가야를 포함한 5국 시대로 불렀다고 합니다.
부여가 이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기록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건국신화가
사실은 부여의 건국신화를 빼앗아서 고구려 건국 시조인 주몽에게
덧씌운 것임을
아셨나요? 고구려의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부여의 역사가 가려졌던 거랍니다.
부여가 없었다면
고구려도 없었을것입니다. 고구려의 뿌리인 부여의 역사를 모른다면 우리는 역사를
바로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부여의 역사는
후손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부여의 전성기를 누렸던 대소왕은
얼마나 속상할까요?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던 부여를 후손들이 몰라주고 자신은 주몽을 괴롭힌
못된 왕으로 알려줬으니
말입니다.
한국사 법정에 대소왕이
호소하네요..고구려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고 가려진 부여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바르게 알려
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임금인지, 부여가 얼마나
훌륭한 나라였고 우리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나라였는지 바로 밝혀 달라고 합니다.
재판에서
부여의 역사가 덜 알려지고
대소왕이 나쁜 임금으로 남게 된 것은 부여가 기록을 남기지 못한
잘못이라며 단지
고구려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고구려가 부여의 건국
이야기를 베껴 자기 것으로 바꾸려고 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혔습니다.
증인으로 나온 고구려
장수왕은 정치 선전을 위해 부여 역사를 왜곡한 바 있다며, 반성하겠다고 하면서
발언을 해서 재판정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부여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라고 주장하며 패자들의 마을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였으나
이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제사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소왕이 죽고 부여가 약해졌으며 부여의 영웅이라고
할수는 없다고
합니다.
고구려와 부여의 역사
갈등에 대한 해법으로 서로의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기를 권했습니다.
대소와 주몽이 서로
화해하고 함께 역사를
빛내는 방향을 찾으라는 판결문을 받았답니다.
한국사 법정 읽을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역사의 바른
모습을 아이들이 잘 찾아가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