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렸을까? - 최영 vs 이성계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1
김갑동 지음, 조진옥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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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렸을까?

김갑동 글 / 조진옥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이성계가 살던 14세기는 고려가 국내외적으로 많이 힘든 시기였습니다.

국내에서는 권문세족의 수탈과 국가 경제의 붕괴로 인해 새로이 관직에 진출한 관료에게 지급할

토지가 부족했으며 국외에서는 홍건적의 침입과 왜구의 침탈이 아주 심했습니다.

이럴때 백성들의 생활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고려는 몽골과의 전쟁 이후 원나라의 간섭을 받게 되었고 원나라의 막대한 공물 요구와 경제적 수탈로

인해 고려의 경제 기반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원나라의 관계 속에서 권문세족이 새롭게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몽골어를 배워 역관으로 활동하거나 원나라에 바치던 응방이라는 기구에서

활동하면서 부를 축척했습니다.

권문세족의 자식들은 과거 시험을 보지 않고 음서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고 유학보다는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지냈습니다.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아 대토지를 소유했고, 일반 양민을 노비로 삼는등

권문세족의 힘이 점차 커졌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였습니다. 신진 사대부라는 새로운 세력은

유교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으며 과거 시험을 통해 관직에 진출한 지방의 중소 지주들이었습니다.

신진 사대부는 권문세족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불법적인 인사 행정의 온상이었던 정방과

권문세족이 소유한 농장을 혁파하라고 주장했습니다.또 홍건적은 원나라 말에 몽골족의 압제에

시달리던 한인이 중심이 되어 백련교와 미륵교라는 비밀 종교 결사 단체에서 세력을 확장하여

원나라에 대항했던 농민 반란 세력이었습니다.

 

홍건적은 공민왕때 두번의 침입을 했는데  안동까지 피란을 간적도 있습니다.

그때 고려의 남쪽에는 왜구가 침입을 해서 조세 저장 창고인 조창과 조곡 운반선인 조선을 약탈했고

차음 세력을 키워 고려의 내륙 지방은 물론 개경 근처까지 출몰하여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때 전쟁을 이겨 공을 세운 최영과 이성계가 등장했는데 딸이 우왕의 비가 되면서

권문세족을 대변하게 된 최영과 중앙 정치의 핵심에서 소외되고 개혁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대부를

대표하여 이성계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명나라가 고려에 대한 우위와 이권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했으나 고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할지 몰라 망설일때 최영과 우왕은 명나라가 고려를

공격하기 전에 요동을 공격하여 잃어버린 고구려 땅을 되찾자고 했지만 이성계는 외교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우왕과 최영은 이성계에게 전투 명령을 내렸고

이성계는 요동 정벌에 나섰지만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최영을 잡아 유배하고

우왕을 폐위하였습니다. 개인소유의 논밭을 없애고 기구를 개편하는 등 실권을 장악하고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상황이 생겼을까요?

아마 장단점이 모두 있을것 입니다.

 

그때 이렇게 밖에 할수 없었던 이성계와 반대였던 최영을 보면서 그 시절 역사를 되돌아 보게 되고

장단점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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