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까? - 홍봉주 vs 흥선대원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44
방상근 지음, 조환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까?

방상근 글 / 조환철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천주교는 처음에느 서양 학문의 한 부분으로 양반들에

의해 연구 되었습니다. 점차 서민층과 여성들도 천주교를 믿게 되면서 정부에서는 천주교를

금하게 합니다. 천주교의 인간 평등과 내세 사상이 당시 유교 사상과 맞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천주교를 금지한건 아닙니다.

흥선대원군은 외세와의 관계 속에서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거쳐 조선은 척화비를 세우고 서양과의 통상 수교를 반대하는 정책을

굳건히 하게 됩니다.

 

조선 후기는 근대로 넘어오기 바로 직전입니다. 그만큼 우물안 개구리 였던 우리가 다른 나라를

보게 되었고 그들과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낀것도 이때부터 입니다.

천주교가 마침 이때 등장한 것도 이런 사회적인 현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천주교의 특징은 서구적인거 외에 가장 중요한 평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까지는 신분이 나눠진 시대였습니다.

양반과 평민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 신분에 따라 차별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17세 이후 신분제가 흔들리면서 여기저기 움직임이 생깁니다.

개항 이후 서양의 근대 문화가 더해지면서 1894년에는 법적으로 폐지되는 상황이 됩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새로운 사회가 되는 전환점이 됩니다,

그러나 곧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그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우리 민족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당시에 흥선 대원군이 천주교를 박해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19세기 후반부터 서양의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정부의 개화 정책 추진과 함께

과학 기술을 비롯한 서양의 근대 문물이 도입되기 시작합니다.

근대 문화가 수용되면서 문학, 예술, 종교등에 새로운 움직임이 생깁니다.

그리고 박해를 받고 힘들었던 천주교도 자유로운 선교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흥선 대원군도 이해가 갑니다.

그 시절에 그럴수 밖에 없었던 현실...그러나 천주교 박해에서 많은 분들이 죽었다는건

정말 큰 슬픔입니다.

 

이런 아픈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우리는 미래를 어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