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도 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었을까? - 사도 세자 VS 영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38
이종호 지음, 이일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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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혔을까?

이종호 글 / 이일선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조선 역사를 뒤돌아보면 임금이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런 대표적 인물로 사도세자를 꼽을수 있다는건 다들 아시죠?

영조에 의해 쌀을 담는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

모든 사람들이 보는 공개적인 상황에서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

그가 죽은 이유는 당끼리의 싸움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일수 밖에 없는 현실....

 

정말 가슴아픈 역사의 한 장면입니다.

사도세자를 나쁘게 표현하는 책들을 보면서 저도 영조의 마음을 이해하곤 했는데요

이책을 보니 결코 그런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영조가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할때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자신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어쩔수 없이 아들을 죽인 영조..

그도 그 상황에서는 그럴수 밖에 없었을것입니다.

 

그러나 사도세자를 꼭 죽여야만 했을까요?

조선의 역사는 참으로 억울한 면이 많이 보입니다.

 

영조는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습니다.

탕평책은 봉당 사이의 심한 대립을 막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실시한 정책입니다.

 

영조는 탕평책을 발표하면서 어지러운 정국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자신이 노론과 소론을 번갈아 등용하여 오히려 정국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소론과 남인의 일부 강경파는 영조의 정통을 부정하고 노론 정권에 반대하여

이인좌의 난을 일으키기까지 하였습니다.

 

자세한 그 시절의 상황을 펼쳐보니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앞으로는 절대 그런일이 생기지 않아야 하기에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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