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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95
허먼 멜빌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평점 :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기간 : 2025/09/15 ~ 2025/09/16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드디어 읽어보았다.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라" 만큼이나 유명한 문구가 있는 허먼 멜빌의 또 다른 대표작 '필경사 바틀비' ㅇ이다.
도서관에도 출판사별로 항상 비치가 되어 있는데 왜 안읽어봤을까?
아직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내가 너무 게을러서라고 일단 해두자.
문장이 매우 오묘하다.
보통은 '노(No)', '아니오' 등의 문장으로 대답하지,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라는 문장으로 대답하는 경우는 없는데 정확히 어떤 문장인지 원래 영어 문장을 찾아보니,
"I would prefer not to ~"
라는 문장이였다.
재밌는건 출판사마다 이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약간 다르다는 점인데,
"그렇게 안하고 싶습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등등, 여러 번역이 존재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거나 '그렇게 안하고 싶습니다' 라는 번역은 약간 어색한 느낌이 있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 자연스러워 보이기는 하나 prefer 라는 단어의 느낌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아 뭔가 아쉽다.
그래서, '하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나 아니면 이번 이 책에 실린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가 그나마 가장 느낌적으로 비슷한 번역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무튼 이 뭔가 묘한 수동적인 저항은 화자인 '나' 의 모습과 대비되어 보이는데 이 책에 실린 다른 소설들에서도 이러한 대비 기법은 계속 반복된다.
아마도 이 소설들이 쓰였던 1853년~1855년 (빌리 버드는 한참 뒤에 쓰여졌다.) 무렵에 허먼 멜빌은 부양해야할 아이들이 속속 태어나고는 있는데 소설들이 성공하지 못하여 여러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거라 짐작이 되며 그러한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감에 젖어 사회의 부조리함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한편 마지막 문구 '아, 바틀비! 아, 인간이여!' 라는 문장도 매우 재밌었는데, 책 마지막에 실린 번역가의 해설에는, 누구나가 결국 맞이해야할 죽음은 숙명이라는 현실을 뛰어넘기 위한 소망이라고 쓰여져 있던데, 동의하기 매우 어렵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작가의 자조섞인 조롱이라고 보는게 더 적당하지 않을까?
작중 화자인 '나' 는 바틀비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이런 저런 다양한 감정에 휘둘렸지만 결국엔 저 수동적인 사람을 포기하고 회피하는 쪽으로 결정하게 된다.
사무실까지 옮겼으면 그걸로 된거지, 구지 다시 찾아가서 또 바틀비를 설득하고 심지어 감옥까지 찾아가서 또 설득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어쩌면 그건 '나' 라는 사람의 체면을 위한 변명거리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였을까?
잘나가진 않지만 어쨌든 '나' 는 명색이 월가의 변호사인데 이런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행동 정도는 보여줘야 하지 않은가라는 얄팍한 속셈으로 마지막에 느닷없는 저 목소리를 낸건 아닐까 의심이 된다.
이 소설 하나만 따로 똑 떼어 놓고 읽었다면 번역가의 해설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할 수 있을것 같은데 하필이면 이어지는 단편 소설들이 다 조롱하는 듯한 늬앙스의 가득한 풍자 소설들이라 난 다른 쪽으로 해석해보았다.

런던에서 화려한 만찬을 즐기는 총각들의 모습이 우아하게 보이기도 하지만서도 어쩐지 약간 그들을 비웃고 조롱하고 비판하는 듯 하기도 하다.
이들의 모습은, 뒤이어 이어지는, 공장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처녀들의 지옥같은 모습과 더욱 대비된다.

세번째 소설인 '빈자의 푸딩, 부자들의 빵 부스러기' 에서는 급기야 영국과 미국을 비교하며 교묘히 둘 다 까는듯하다.
아니 원래 이 양반 문체가 이런 식이였나?
'모비 딕' 을 떠올려보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던것 같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기보다 풍자하는 방식이 오히려 반대로 더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글 잘 쓰는 사람이였다니!
아니, 이런 양반이 고래 이야기는 그렇게 재미없게 썼단 말인가?!
레데리2에서나 볼 법한, 플로리다 습지대에 널린 가난한 집의 풍경이 절묘하다.
머리속에 집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는듯하다.
이 책에서 네번째로 등장하는 '행복한 실패' 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되었다 하는데, 이것도 짧지만 꽤 강렬하다.
마지막에 실린 '빌리 버드' 는 내 개인적으로는 바틀비만큼 기대했던 소설이였는데 약간 그 기대에 못미쳐 다소 실망했다.
중간에 너무 난잡스럽게 들어간 부분들이 많아 중구난방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편,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세계문학을 '안나 카레니나'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읽어 보았는데, 퀼리티가 상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워낙 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들을 많이 봤다 보니 주로 그쪽으로만 연상이 되었는데 이번 기회에 세계문학쪽에도 이 출판사가 한몫한다는걸 확실히 각인하게 된것 같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종종 아직 읽어보지 않은 세계문학들을 이 출판사를 통해 읽어볼 생각이다.
근 300개 가까이 되던데 아직 안읽은거, 목록이나 일단 한번 추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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