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자유
이재구 지음 / 아마존북스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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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기간 : 2025/05/10 ~ 2025/05/12

흡입력이 매우 좋은 소설 한편을 읽었다.

400페이지 가량으로 꽤 분량은 많지만 워낙 흡입력이 좋아 페이지가 쑥쑥 넘어간다.

그러나, 표지의 소개대로 대서사시급 스케일이라 가계도가 초반에 다소 복잡하다.

예전에,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복잡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을 (주로 러시아 책들) 읽을때 헷갈리지 않기 위해 가계도를 작성하며 관계들을 정리 하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정말 오랜만에 슬쩍 가계도 (라고 거창하게 말하긴 좀 뭐하지만) 를 책을 읽으며 써봤다.

덕분에 수월하게 인물들의 관계를 머리속에 그리며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나같이 머리 나쁜 사람들에게 강추하는 방법이다.

이 책은, 일제시대 창씨개명을 거부한 선비 우민에서부터 내려와 우민의 아들 상준, 그리고 상준과 평산댁 사이의 9남매, 그리고 그 9남매들의 자식들까지, 총 4대(代)에 걸쳐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중에서도 책의 실질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3대(代)의 9남매중 다섯째이자 삼남인 형구이다.

그러면서도 책의 중간까지인 1부에서는 상준과 평산댁의 이야기도 매우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지역에서 대대로 떵떵거리며 양반으로 살던 이 집안의 유일한 흠은 큰아들인 상준이다.

젊은 시절 불타는 사랑에 빠져 영단을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까지 했으나 안타깝게도 영단이 병으로 죽게 되며 상준은 폐인이 되버린다.

그래도 워낙에나 잘나가는 집안이다보니 장남을 그렇게 가만 둘 수 없어 평산댁을 데려와 상준과 살게 하였지만 상준은 영 정신을 못차린다.

그러다 어느날, 이 집안의 정미소가 불에 타버리며 순식간에 집안이 쫄딱 망하게 되며 이야기는 급격히 전개된다.



고향 떠나 남편과 9남매를 먹여 살리느라 갖은 고생을 하던 평산댁은 결국 훌륭히 자식을 키워내고 자식들 덕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시아버지와 남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굿을 벌리는데, 이 굿하는 장면이 꽤나 볼 만 하다.

작년에 읽은 어느 문학상 책에 실린 '혼모노' 라는 책의 굿 판 만큼 정교하고 세밀하진 않지만, 울부짖는듯한 감정선만큼은 오히려 더 낫다.

평산댁은 이 굿을 통해 고향에서 쫓겨난 이후, 평생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한꺼번에 터트리는데 이 장면이 평산댁에 있어서는 카타르시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스케일이 큰 만큼 아직 가야할 이야기들은 한참 남아 있다.

이제 2부에는 후손들의 막장 스토리가 이어진다.



돈 앞에서는 부모형제가 다 필요 없다.

어떻게든 집안을 일으키고 형제간의 우애를 쌓으려는 형구의 바램과는 달리 형구의 형제들은 그저 돈에 미쳐있을뿐이다.

형구는 과연 본인이 진심으로 원하는 가족을 끝내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총 4대(代)에 걸쳐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괜실히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가 떠오르는 소설이였다.

이 책이 '토지' 와 같은 대작들과 비교할만한 수준은 당연히 아니지만, 뭐랄까?

형구의 가족사 이야기가 약간 최참판 일가의 가족사 이야기 같은 느낌이 살짝 든다고나 할까?

처음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 하던데 이야기의 밑바탕 베이스를 상당히 잘 깔았다.

특히나 능력없는 상준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정을 위해 영단과 춘희라는 인물을 추가로 역어내어 개연성을 살린 점이 꽤 괜찮았다.

영단과 춘희라는 두 여인이 갑툭튀하는게 처음엔 이해가 안되기도 했지만, 그 뒤에 쭉 이어질 상준의 모습들을 생각해본다면, 트리거가 될 만한 내용이 필요했고 그걸 영단과 춘희가 담당하는게 아주 인상적이였다.

당시 가부장적이면서 먹물에 빠져 사람 구실 못하던 못난 남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인 상준의 이러한 면은 몹시, 그리고 너무나도 상투적이라 지겨울수도 있지만 이 가문의 대서사시를 위해 꼭 필요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래, 누군가는 희생해야지. 그리고 그 희생양은 아버지가 해야지.

또한, 형구와 정 반대로 대비되는, 소위 빌런이라 불리우는 형남의 모습이 아주 다채로우면서도 입체적이라 인물 설정이 나쁘지 않았다.

거기에 빌런까지는 아니고, 빌런 때문에 영향을 받아 흑화되는 형경이라는 인물도 설정이 괜찮았고, 한때는 친정을 위해 희생을 하던 장녀 형숙이 나중에는 돈에 미친 악귀가 되는 설정도 좋았고, 약간 존재감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툭툭 건드리는 정도의 느낌으로 형구에 맞서는 형경 부부의 모습은 좀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4대(代)에 걸친 가문의 긴 이야기, 가문 구성원들의 캐릭터 설정, 처음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훌륭한 구성과 글솜씨가 대단했던 소설이였다.

근데 2부에서는 글이 약간 늘어지는 느낌이 있어 1부만큼 재밌진 않았다.

아무래도 느닷없이 등장하는 로스차일드라던가, 시온성전이라던가, 러시아 마피아라던가, 이런 부분때문에 어이없기 때문이였지 않나 싶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개연성을 위해 작가가 노력한 흔적이라 생각하면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80~90년대 드라마 보는 듯한 느낌도 들어 재밌기도 했고, 가족과 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소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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