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루나 +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 옛날 옛적 판교에서 + 책이 된 남자 + 신께서는 아이들 + 후루룩 쩝접 맛있는
서윤빈 외 지음 / 허블 / 2022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초엽의 등장, 그리고 김초엽 이후를 가져온 2회 수상작품집의 의미를 넘어설 수는 없겠지만 수록 작품 모두 고르게 빼어나서 놀랐다. 각각이 저마다의 이유로 대상을 받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맨 앞에 실린 대상작을 읽고 나면 우수작부터는 살짝 다른 기대를 갖고 읽곤 했는데 어라? 우수작의 무게에 놀랐다.
심사평을 읽으니 아니나 다를까, 두 작품을 두고 치열한 심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바다와 해녀와 물질과 임무와 관계를 우주에 옮겨다 놓은 '루나'의 상상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어느 때보다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우리 사회의 어느 한곳, 아니 지금 여기를 콜로니에 옮겨다 놓은 '블랙박스와의 인터뷰'에서 연달아 놀란 가슴은 나머지 네 작품을 읽는 내내 진정되지 않았다. (기기에 이식된 의식에게 '중력'에 대해 묻는다는, 얼핏 모순 같으면서도 곱씹을수록 의표를 찌르는 설정에 감탄했다.)
게임을 잘 알았더라면 '옛날 옛적 판교에서'를 읽으며 얼마나 자지러젔을까 생각하니 몹시 안타까웠다. 아아 그리고 '책이 된 남자'... 이 작가는 미쳤는가. 어떻게 이런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지? 대상에 이어 우수상을 두고도 치열한 심사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루나, 블랙박스와 더불어 공동 대상에 올리고 싶은 작품이었다.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짜깁기를 통해 창작하는 자신을 염려하셨는데, 네? 뭐라고요? 짜깁기라고 스스로를 낮추셨지만 이 방대한 집대성이자 재창조를 당신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기만자!
'신께서는 아이들을'은 읽는 내내 이 시대의 어린이로 살아가는 작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마음 아프고 미안했으며, '후루룩 쩝쩝 맛있는'의 통쾌하고도 씁쓸한 복수 또한 지금 여기를 돌아보게 하는 점에서, 그리고 수상작품집의 색채를 풍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이 작가의 등장을 반기게 했다.
심사위원의 임무란 수상작 전체, 그리고 특히 대상 선정으로써 그 해의 그 상의 의미를 전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이 고르게 빼어난 작품들 가운데 '루나'를 최종 낙점한 이유도 알 것 같다. 사진을 보니... 젊은 작가들의 대거 등장에 가슴이 뛰고 이분들이 오래오래 쓰실 것을 생각하니 행복하고 벅차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 심사위원들의 눈에 어찌 단점들이 보이지 않았겠는가만, 굳이 모 작품의 어떤 소소한 점에 대해 번호까지 붙여 가며 지적하고 마는 그 '자의식'은 좀 내려놓았더라면 좋았겠다 싶다. 심사 과정에서야 더한 지적도 가능했겠지만 선정이 다 끝나고 작품집을 세상에 내놓는 일종의 축제의 장에서 굳이 그래야 했나. '개연성을 까칠하게 따지는 독자라면'이라고 말문을 열었지만 실은 그런 것까지 예리하게 파악하는 자신을 과시한 데 지나지 않았다. 연금술이 가능한 세계인데, 작가가 창조한 능청스런 세계에 정신없이 몰입해 읽었구만, 읽는 과정에서 그 두 가지 점에 덜컥 걸려 책장이 넘어가지 않은 독자가 몇이나 있었을까. 그리고 곱씹어 읽을수록 동의도 안 된다. 특히 2번에서 말한 '차라리 디지털화'가 무엇인지? 그런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그 세계에서의 디지털화일 텐데 뭘 어떻게 했어야 한다는 건지. 창조된 세계 안에서의 핍진성도 아니고, 그 세계가 창조되는 과정을 문제 삼아서야...
추가: 표지 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