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와 폐허의 땅
조너선 메이버리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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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시체들의 땅이 있어. 사람들은 둘 중 한쪽 세상만 인정해”(60페이지)

뒤집힌 세상, 평범한 일상이 뒤집히고 사랑하는 가족이 나를 공격하는 비극의 밤이 지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울타리 안에 마을을 만들어 살아간다. 울타리 밖 시체들의 땅은 첫 번째 밤 이후 좀비들의 땅이 되었다. 사람들은 마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시체의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외면한다. 첫 번째 밤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하고 마을을 세운 영웅 찰리는 좀비 사냥꾼이다. 찰리의 도움으로 동생 베니와 함께 살아남은 톰도 좀비를 사냥한다. 좀비가 된 아빠의 공격에서 엄마를 구하지 않고 자신만을 데리고 도망친 형을 겁쟁이라 생각했지만 15살 이후 일자리를 구해야 했기 때문에 형을 따라 좀비 사냥꾼이 된다. 형을 따라 들어간 시체의 땅에서 사냥꾼들의 추악한 모습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래, 진실은 바뀌지 않아.

하지만 진실을 보는 시선은 달라질 수 있고,

어느 쪽에서 본 진실을 믿을지 선택할 수 있어.”(72페이지)

진실을 보게 된 후 진실을 믿을지 아닐지는 결국 자신의 선택이다. 베니는 진실 앞에서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혼란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좀비 카드 속 사라진 소녀의 초상화를 본 후 베니의 삶은 완전히 뒤바뀐다. 자신들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라진 소녀를 잡기 위해 찰리 일당은 초상화가와 닉스의 엄마를 죽이고, 닉스를 납치한다. 톰과 베니는 닉스를 찾아 찰리 일당을 뒤쫓는다. 함정에 빠져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형이 죽었다 생각한 베니는 닉스를 구해 도망친다. 위기에 빠진 베니와 닉스를 사라진 소녀 라일라가 도와주고, 셋은 함께 찰리 일당에게 붙잡힌 아이들을 구할 계획을 세운다. 작전을 수행하다가 아이들을 구한 후 찰리에게 붙잡힌 순간 죽었다 생각했던 톰이 나타난다. 톰과 좀비떼를 유인한 라일라 덕분에 찰리의 캠프를 벗어났지만 아이들을 붙잡고 있는 찰리와 마주친다. 찰리에 대한 분노의 힘으로 베니는 찰리를 절벽으로 떨어트리고 아이들을 구한다. 마을로 무사히 돌아온 후 게임랜드의 존재를 알리지만 마을이 위험해질 것을 걱정한 사람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지.

진실을 알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옳은 질문을 하지 않아.”

-중략-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당연히 궁금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는 뜻이야.”(150페이지)

베니는 진실을 외면하고 진실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추악하디 추악한 진실’이라 말한다. 톰은 베니를 데리고 자신들이 살았던 마을로 들어가 좀비가 된 부모님의 영결식을 함께 한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께 한 형제는 비행기가 향했던 시체의 땅 너머로 떠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들을 기다라고 있는 닉스를 만나러 간다. 톰과 베니는 저 너머의 세상을 찾아 길을 떠날 것이다. 형제의 앞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걱정도 되면서 한편으로는 기대도 된다. 저 너머의 땅에서 그들이 보게 될 것은 절망일까, 희망일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희망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광활한 침묵이 내린 시체들의 땅을 형제는 나란히 걸어갔다.(509페이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순간이 있다.

이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다.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성공과 실패가 위태롭게 갈리며

우연이나 운도 힘을 미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이 순간의 결정에 따라 삶을 누릴 권리를 얻을 수도,

빼앗길 수도 있다.’(321페이지)

『시체와 폐허의 땅』을 읽으면서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사는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베니가 형을 따라 좀비 사냥꾼이 된 것도, 형제가 닉스를 구하기 위해 시체의 땅으로 떠난 것도, 자신과 관계없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찰리의 캠프로 들어간 것들 모두가 베니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선택의 결과로 살아왔던 삶이 완전히 뒤바뀌게 됐지만, 베니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한다. 첫 번째 밤 이후 라일라와 갓난아기를 혼자 키워야 했었던 조지는 두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키운다. 좀비들을 피해 몇 년을 살았던 조지는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 아무 의심 없이 따라갔다 아이들을 납치당한다. 그는 아이들을 찾던 중 죽임을 당했다. 조지는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완전한 타인인 라일라와 애니를 지키고 키우는 것을 선택해 영웅이 되었다. 찰리는 첫 번째 밤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하고 안전한 마을을 만들어 사람들을 지켜낸 영웅이었다. 하지만 법이 존재하지 않는 시체들의 땅에서 그가 한 선택은 게임랜드를 만들어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 좀비와 싸우게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는 사라진 소녀 라일라를 찾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공격한다.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않고 좀비들을 모욕하고, 자신들의 이익과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 조지와 찰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조지의 선택은 사람을 살리는 선택이었고, 찰리의 선택은 사람을 죽이는 선택이었다. 톰과 베니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조지와 같이 사람을 살리는 선택을 한다. 조지와 찰리는 왜 다른 선택을 하게 됐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옳다고 생각했던 신념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신념이 타인을 공격해서 해를 입힌다면 그 신념은 옳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찰리가 옳다고 생각한 선택은 옳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자기 자신과 타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약 내가 베니와 함께 좀비가 살고 있는 땅 울타리 너머에 살고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게임랜드의 존재를 알고도 외면하는 마을 사람들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을까? 나에게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나또한 어떤 선택을 할지 확실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지금 나는 어떤 선택의 순간에 놓여 있을까? 선택의 순간 내가 옳다고 생각한 신념은 과연 진실로 옳은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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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 -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이병철 지음 / 천년의상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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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를 생각합니다’(책 뒷표지)

모국어란 무엇일까? 우리는 모국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모두 모국어일까?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새로운 언어가 탄생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변화하는 언어의 속성에 따라 모국어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에 대해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는 이병철 작가의 경험과 언어학문적 지식을 연결해 이야기 한다. 필자 이병철은 모국어에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도록 일상에서 겪는 어휘 문제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를 썼다고 한다. ‘성장기·청년기에 겪은 언어환경’, ‘직업인으로서 겪은 언어환경’, ‘개선해야 할 언어환경’,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모국어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적고 있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 듣고 썼던 언어의 대부분은 일본어다. 6.25 전쟁이 한참이던 1951년에 태어나 전쟁을 겪은 필자는 어린 시절 일본어의 홍수 속에서 살았다. 일본의 식민지로 지내는 동안 우리 말 속에는 일본어가 뿌리내렸고, 그 언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우리말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본어를 우리말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지만, 반대로 우리말이 일본어로 바뀌어 사용되기도 했다. 전쟁 이후 먹고 사는 것이 중요했던 시절, ‘식구’와 ‘밥벌이’는 밥을 나누어 먹고 식구를 먹여 살리는 것을 의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구’ 보다는 ‘가족’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식구’라는 단어는 조금씩 사라져간다. ‘가족’은 ‘결혼과 혈연으로 이루어져 한 집에 사는 집단’(34페이지)을 의미하는 말로 일본의 ‘가조쿠’의 개념에서 온 말이다. 시집간다는 의미의 ‘혼인’도 ‘결혼’으로 바뀐다. 지금 우리는 ‘식구와 혼인’보다는 ‘가족과 결혼’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일본말 ‘밴또’와 같은 언어는 우리말 ‘도시락’으로 바뀌어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반대로 ‘가족’과 ‘결혼’, ‘야채’처럼 우리말이 일본어로 바뀌기도 했다. 자주 사용했던 익숙한 단어들 중 ‘낭만, 연애, 연인, 애인, 고백, 밀어, 실연, 비련, 애수, 추억, 고뇌, 고독, 허무, 축제···’(95페이지)등의 말이 일본인들의 인식체계에 따라 만들어진 말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주 사용했던 단어들이 한자어가 아닌 일본어와 연결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국 전쟁의 영향으로 한국과 미국의 정서가 혼합되면서 필자의 성장기 언어는 ‘앙꼬빵, 곰보빵, 빠다빵’이 공존한 일본어와 영어와 우리말, 한자어 등 여러 언어들이 뒤죽박죽 뒤섞인다.

 

1954년 ‘한글 간소화 파동 소동’이 일어난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글을 쉽게 쓰게 한다는 명분으로 현행 맞춤법을 폐지하고 구한말에 사용했던 ‘이어 적기’로 돌아가라는 담화를 발표한다. 이어 적기란 소리 나는 대로 적기와 비슷한 것으로 ‘도둑을’을 ‘도두글’로, ‘잡았다’를 ‘자밨다’로 쓰자는 것이다. 한글 관련 단체와 국민들이 강하게 반발했음에도 대통령이 이 정책을 고집하다 1955년에서야 ‘국민이 원하는 대로 맞춤법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한다. 국립국어원과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해 맞춤법 표기법이 변경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읍니다’를 ‘~습니다’로,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바꾸는 정책은 한국학회의 반대를 무시하면서까지 변경되었다. 필자는 한글을 연구하는 단체나 개인이 주장하는 학설과 여러 가지 사전들의 내용은 반영되지 않고, 국립국어원과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이 한글과 우리말에 관해 모든 것을 결정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나 또한 국립국어원과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을 맹신했던 일반 국민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필자의 글을 읽은 후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의문을 갖게 됐다. 필자는 맞춤법 표기법이 독단으로 변경될 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언어에 대한 오류는 하나의 단체나 하나의 사전이 아닌 여러 연구기관과 학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고쳐나가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맞춤법만큼이나 필자가 힘을 쏟은 부분은 글다듬기, 즉 윤문이다. 필자는 기자로 재직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써야만 했었다. 연재 원고를 받아 글을 다듬는 과정을 하는 동안 필자는 맞춤법과 글다듬기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기자가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언론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글을 쓰고 글을 다듬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신입기자에게 글쓰기 방법을 알려줄 때 원고 양보다 더 쓰게 한 후 다시 줄이는 방법으로 신입 기자들의 글쓰기를 지도한다. 필자는 글다듬기를 하면서 글맛과 말맛을 알게 된 계기가 된 단어가 ‘부둥켜안다’라고 한다. ‘감싸 안다, 그러안다. 껴안다. 끌어안다. 당겨 안다. 부둥켜안다. 부여안다, 얼싸안다, 품어 안다’(137페이지) 등과 같이 다른 단어이지만 비슷한 의미를 지닌 말들이 있다. 이러한 말을 찾아 가는 과정이 필자에게 글과 말의 맛을 알게 해주었다고 한다. <‘900 어휘’ 사회>에서는 ‘어휘선택’이 글쓰기에서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한정된 어휘만을 사용해 쓰인 글들에 대해 비판한다. 어휘가 ‘어떤 주제에 포함될 수 있는 낱말을 묶은 것 또는 그 수효’(156페이지)라고 할 때, 우리말은 이 수효가 풍부하기 때문에 꼭 맞는 말을 골라 쓸 수 있다고 한다. 예시로 ‘붉다’는 말과 한 주제로 묶인 어휘를 157~158페이지(45가지)에 실어놓았다.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우리말 형용사와 부사는 4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 중 가리고 가려 책에서는 70개(169~170페이지)를 실어 놓았다. 한 주제로 묶인 어휘가 이렇게 많다는 것도 놀랍고, 이렇게 많음에도 내가 그동안 몇 개만을 사용했다는 것도 또 놀랍다. 시대에 따라 사전에 실리는 어휘에 비해 사용하는 어휘가 줄어들고 있음에 대한 안타까움도 적고 있다. ‘20만 어휘’를 가지고 있는 우리 역사가 무의미해지고 어느 순간 ‘900 어휘 사회’가 될 수 있음을 걱정한다.

 

맞춤법 표기법이 너무 자주 바뀌다 보니 맞춤법을 바로 검색해 보기 위해 필자는 거금 7만 5000원을 주고 이희승 편저 <국어대사전>을 샀다고 한다. 하지만 사전을 사고 5년 후 1988년 새로운 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이 발표되었고, 다시 1991년에 거금을 주고 바뀐 규정을 수용한 금성판 <국어대사전>을 사야만 했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사전에 모든 것을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국어사전을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는 ‘도반’이라 말하면서도, 국어사전의 문제점 중 가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일곱 가지를 적고 있다. ‘표제어가 틀렸다’, ‘틀린 풀이와 내용이 많다’, ‘어설픈 풀이가 많다’, ‘오·탈자와 부적절한 어휘가 많다’, ‘사전에 없는 말이 많다’, ‘풀이말이나 예문에 나온 어휘가 표제어에는 없다’, ‘자료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몇 개의 국어사전을 예로 들면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이야기한다. <표준국어대사전> 어휘 늘리기가 50만을 넘어선지 20년이 더 지났다고 한다. 스마트 폰으로 검색해서 찾아낼 수 있는 낱말과 어휘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검색되는 모든 것들이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필자는 소중한 인력을 어원과 유래를 밝히는 데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잡학 사전이 아닌 진짜 국어사전과 방언사전을 가볍고 싸게 만들어 보급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적고 있다.

 

이어서 한국어의 ‘뜻글자’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주장과 관형격 조사 ‘~의’의 오·남용 사례를 적고 있다. 한국어는 표음문자와 표의문자, 두 가지를 모두 쓰는 언어다. 소리글자와 뜻글자가 합해져 한국어가 만들어졌다. 한자와 많이 달라져 한자가 되어버린 뜻글자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과 소리글자와 뜻글자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대립한다. ‘관형격 조사 ~의’의 오·남용에 대해 289~329페이지까지 많은 분량의 사례를 적고 있다. 관형격 조사 ‘~의’가 ‘주격, 목적격, 보격, 부사격 조사와 보조사’등등에서 문법적인 오류를 무시하고, 잘못 쓰이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의’는 책이나 영화 제목 등에 많이 사용되고 있어 이 말이 틀린 말인지도 알지 못했다. 이 조사가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렇게 계속 사용되다 어느 순간 ‘~의’가 모든 곳에 사용되는 것이 옳다는 내용이 사전에 등재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예언하듯 필자는 ‘~의’의 오·남용에 대한 자신의 글이 공허한 메아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 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일이라는 게 다 아주 작은 외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331페이지)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헛심 쓴 것은 아닐 것이라 적고 있다. 어떤 주장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의 목소리가 있겠지만 언어는 계속해서 변하고 또 변화한다. 지금은 틀린 언어라 말했지만 시간이 흘러 사전에 등재되면서 맞는 언어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언어에 대한 정답은 고정불변이라 말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고정불변이기도 하고, 또한 고정불변이 아닌 유동적이기도 하다고 생각하지만, 문법이 어렵고 헷갈리듯 나는 언어가 ‘고정불변인지, 유동적인지’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하지는 못하겠다. 말장난 같지만 이것이 나의 솔직한 답이다.

 

‘갈수록 태산. 알수록 어려운 우리말’(135페이지)

이 말이 딱 이다. 학교 다닐 때도 문법은 알면 알수록 더 어렵고 헷갈렸는데, 역시 우리말은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우리말은 알면 알수록 더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우리말 알기다.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는 에세이 형식으로 언어에 대한 필자 이병철의 경험과 생각을 적고 있지만, 그 안에 언어의 변천사를 함께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잘못된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지금도 새롭게 언어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있다. 요즘 만들어지는 신조어 중 대부분은 통역이 필요할 정도로 나에게는 어려운 언어들이다. 신조어들은 유행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사전에 새롭게 수록되기도 한다. 언어는 무한한 생명력으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거대한 생명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언어를 사용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언어를 사용한다.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언어를 사용했다면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를 읽고 난 후 나는 지금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그 언어를 통해 어떤 사유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사유한다. 생각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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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로리 - 새장 밖으로 나간 사람들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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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리는 광기에 사로잡혀 살육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두 아이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살아남은 사람들 앞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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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
임태운 지음 / 시공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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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나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한 마을에서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이웃, 친구, 배우자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라면? 임태운 작가는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그 안에 스며들어와 있는 또 다른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다른 존재와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들여다보게 한다.

 

<가울반점>은 작은 마을 수만리에 또 하나의 중국집이 생기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람들이 새로 생긴 ‘가울반점’으로 몰리고, 시황과 아버지는 가울반점 자장면의 비밀을 캐기 위해 종만의 뒤를 캔다. 군대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 종만은 밤마다 동네 대갈바위로 올라가고 새벽녘이면 자루를 하나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종만의 뒤를 미행한 아버지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뒤따라간 시황은 외계인의 의식이 들어간 종만의 정체를 알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알았던 친구의 몸속에 들어간 외계인이 지구와 외계별의 식재료를 연구하는 미식연구가라는 설정도 흥미로웠다. 시황을 죽이려던 순간 남아 있던 종만의 의식이 이를 막는다. 외계인은 두 부자에게 살려주는 조건으로 마을을 떠나라고 말한다.

 

<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는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평행우주를 여행하는 여행자와 살고 있는 아내의 이야기다. 남편은 천년 이 넘는 시간 동안 4,000번 이상의 종말을 맞이했고, 그 중 1,500번은 종말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편의 외도를 의심해 카페에 가입한 아내는 거짓말 탐지기를 받아 남편의 몸에 부착하고, 거짓말 탐지기 덕분에 남편의 말을 믿게 된다. 다른 평행우주 속 자신과 4,000번이 넘는 삶을 살았던 남편이 안쓰러우면서도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또 다른 자신들과 살았다는 말에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 부부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 낚시꾼들이 남편을 공격하고 남편은 그들을 해치운 후 종말을 막기 위해 떠난다.

‘얼른 가서 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요.(115페이지)

낚시꾼들이 남편의 위치를 알았던 것이 거짓말 탐지기 때문이라 생각한 아내는 종말을 막고 자신에게 ‘햇살이고, 바람이며, 공기’인 남편을 구하겠다고 마음먹는다.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자신에게 남편을 빼앗기기 싫기 때문이다. 다른 평행 우주 속 다른 직업과 환경에도 같은 모습의 배우자를 다시 만나 사랑하고 결혼한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한 사람을 몇 천 번이나 다시 만나 사랑하고 결혼한다는 것이 축복일까에 대해서는 대답이 망설여진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답이다.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궁극의 몸>은 바이러스 전쟁 이후 신체 등급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세상이다. 바이러스 노출 정도와 신체장애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 직장을 선택하는 것도 제한되는 사회다. 도담은 1차 감염에 그친 부적격 신체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살았다. 도담은 자신에게 존재하는 미니 웜홀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스스로를 최고 등급으로 정하고, 자신이 궁극의 몸을 지닌 초월적인 존재라는 생각에 빠져든다. <궁극의 몸>의 주인공 도담은 신체 일부가 이동하는 이상증상이 나타난 와중에도 회사에 출근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각을 걱정했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리가 생각났다.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후 출근을 걱정했던 그레고리와 도담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도담은 <변신>의 그레고리처럼 처음엔 출근을 걱정하지만, 물리학자에게 메일을 보내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자신의 능력을 깨달은 후 도담은 사람을 공격하고, 물건을 훔치는 등의 옳지 않은 곳에 능력을 사용했지만, 그레고리와 다르게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삶으로 나아갔다. 도담이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실어본다. 도담은 궁극의 몸으로 어떤 궁극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빨에 끼인 돌개바람>의 주인공 자무이는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 초원에서 태어난 전사로 본명은 레미톨뽀냐위, 지구어로 ‘이빨에 끼인 돌개바람’이다. 제8종 은하계의 R17번 행성에 거주하는 잠입 전투 종족 크레냐위 전사다. 지구에서 치러지는 크레냐위인의 성인식은 원주민 숙주의 육체만을 사용해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그들이 서로를 찾는 방법은 ‘샤다모이’라는 유전자에 심어진 발광신호가 유일한 단서다. 자무이는 성인식을 위해 동족들을 찾아 길을 떠나고 모두를 해치운 후 최후의 상대를 찾아 대한민국 인천으로 온다. 샤다모이가 모여 있는 가게를 발견한 후 그곳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취직해 아프라냐위를 찾는다. 드디어 만난 아프라냐위는 주경야돈의 며느리, 유일하게 여성체로 태어났고, 지구에서 결혼해 아들을 낳아 어머니가 되었다. 그녀는 크레냐위인이 아닌 지구인으로의 삶을 선택했다. <이빨에 끼인 돌개바람> 속 외계인은 지구인에서 태어나 지구인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동네 정육점을 운영하는 아줌마가 크레냐위인 최고의 전사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약한 존재라 생각했던 여성이 어머니가 되고, 최강자의 전사들을 모두 이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나는 강해지기 위해 어머니가 된 건지, 어머니가 되는 바람에 강해져 버린 건지.”(179페이지)

강해지기 위해 어머니가 된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가 되어 강해진 것인가라는 아프라냐위의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계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와 같이 사람들마다 대답은 다르게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나또한 무엇이 먼저인지 헷갈린다. 최강자를 가리는 외계인의 성인식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여성으로 산다는 것’과 ‘어머니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레어템의 보존법칙>은 PC 방 아르바이트 신입에게 선배가 들려주는 전설적인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날 천 시간 정액제 요금 50만 원을 현금으로 지불한 손님이 찾아온다. 게임의 룰도 몰랐던 쪼꼬야미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게임 머니가 필요하다는 피시방 아르바이트생의 말을 듣고 게임 속 블랙엔트를 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죽지 않는 블랙엔트 한 마리만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 보듯이 하던 사람들이 며칠 동안 한 마리의 블랙엔트만을 공격하는 남자에게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다. 청년은 자신을 버린 전 애인과 자신의 시나리오를 훔친 콧수염이 달린 영화사 피디에 대한 분노를 콧수염이 달린 블랙엔트를 공격하는 것으로 표출한다. 우연히도 그 블랙엔트는 CIA 차장 토미 파커가 비밀 정보를 저장해 놓은 몬스터였다. 한국의 평범한 피시방을 찾은 평범한 시나리오작가 지망생과 CIA 차장이 게임 캐릭터로 연결되었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현실에서 있을 것 같지 않은 설정이지만 또 충분히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기도 해서 더 몰입해서 읽었다. 거대한 힘을 가진 CIA 차장 토미 파커가 블랙엔트를 지키려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만 결국 블랙엔트는 쓰러지고 쪼꼬야미(황척호)는 천 시간의 정액제를 다 쓴 후 피시방을 떠난다. 그때부터 게임 속 블랙엔트는 황척호가 전 애인에게 빼앗겼던 시나리오 대사를 말하고, 영화사는 저작권 위반으로 제소하지만 결국 패소한다. 황척호는 자신을 배신한 전 애인과 영화사에게 통쾌한 복수를 할 수 있었다. CIA 차장이 자신의 비밀금고를 지키려고 평범한 청년을 견제하는 장면에서는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황척호가 블랙엔트를 쓰러트리고, 그의 전 애인과 영화사가 패소하는 장면에서는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어 후련했다.

그건 보잘 것 없는 ‘을’이었던 한 남자가

거대한 ‘갑’에게 도전해 이룩해 낸 위대한 업적이라고.

그와 함께 했던 천 개의 시간 동안 우리는,

잠시나마 ‘잉여’에서 ‘영웅’이 될 수 있었다고 말이야.(253페이지)

거대한 갑인 CIA와 게임회사 그리고 또다른 갑인 영화사를 상대로 ‘을’이었던 황척호는 수많은 을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냈다. ‘거대한 갑에게 도전해 이룩해 낸 위대한 업적’은 ‘잉여’라고 생각했던 이들을 잠시나마 ‘영웅’이 되게 해주었다. 작은 돌멩이로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처럼 황척호는 작은 게임 캐릭터로 자신을 괴롭혔던 갑들을 물리쳤다. 천 시간의 정액제를 쓰고 피시방을 떠난 황척호의 삶은 블랙엔트를 쓰러트리기 전보다는 나은 삶으로 나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

 

<로봇이라서 다행이다>는 왕따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왕따 로봇과 과거에 왕따를 당했었던 초등학생의 우정이야기다. 아빠가 로봇 제조사 ‘실버 인터스트리’의 사장님인 김은찬은 해마다 두세 명을 똘마니를 데리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괴롭힌다. 은찬 일당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최동필은 몸에서 머리를 뽑아 물에 젖은 머리를 털기 시작한다. 최동필의 정체는 ‘왕따 로봇’, 정부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비밀 프로젝트다. 심각해지는 왕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첨단 인공지능 로봇이다. 왕따를 자기한테 집중되도록 유도해서 일진 아이들의 구타와 폭언을 대신 받고 다른 아이들을 왕따로부터 지켜주는 것이 로봇의 역할이라고 한다. 자신의 정체를 본 준서의 기억을 지워주는 장치가 고장나 기억을 지울 수 없게 됐지만 준서는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한다. 친구가 된 준서와 동필은 아이들에게 함께 있던 것을 들키게 되고 아이들 앞에서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준서는 동필의 뺨을 때린다.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은찬 패거리가 무서워 준서는 동필을 피한다. 수련회를 가는 중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동필은 반 아이들 모두를 구한 후 버스와 함께 사라진다. 동필의 비밀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된 준서는 로봇 공학자가 되어 인공지능 로봇을 위한 로봇권 옹호 운동을 진행한다. 달을 방문하기 위해 떠난 준서는 크레이터 공사장을 방문해 친구를 만난다. 인공지능 로봇은 사람처럼 감정과 고통을 느끼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로봇을 하나의 도구와 소모품 취급해 사람만을 위해 로봇을 이용한다.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진 로봇의 로봇권을 어디까지 보장해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작품 속 ‘갑’(더 강한 존재)과 ‘을’(더 약한 존재)의 관계는 경계가 뒤섞이고 어느 순간 모호해진다. <가울반점>에서는 갑이었던 시황과 태수가 자신들이 괴롭혔던 을이었던 종만을 공격했다가 제압당한다. <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에서는 지구의 종말을 반복하는 외계인들을 남편이 해치우고,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간다. <궁극의 몸>에서는 을이었던 도담이 갑이었던 회사 주임을 공격하고, 최상위 등급인 물리학자보다 자신이 더 높은 등급의 궁극의 몸을 가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을이었던 도담은 더 이상 자신을 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빨에 끼인 돌개바람>은 강한 전사의 전형으로 생각했던 남성 전사들을 모두 이기고 약한 존재라 생각했던 여성 전사가 가장 강한 전사로 등장한다. <레어템의 보존법칙>도 거대한 힘을 갖고 있는 CIA 차장의 공격을 막아내고 자신의 목표를 이룬 평범한 한국 청년의 이야기다. CIA와 게임회사, 영화제작사와 맞서 승리한 을의 최종 승리는 전설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로봇이라서 다행이야>는 왕따 당하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을로 살았던 로봇 최동필이 등장한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고 인간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존재인 로봇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타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녔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어떤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을까? 임태운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강함과 약함’, ‘갑과 을’의 경계란 어느 순간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또 다른 존재들, 사람과 로봇이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가 될 때 차별 없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소모되는 ‘잉여’가 아닌 나와 모두를 위해 살아가는 ‘영웅’이다.

 

『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을 읽고 난 후 임태운 작가의 메시지를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나의 느낌대로 책을 읽고 깨달은 대로 적어봤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흥미롭게 몰입해서 읽었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SF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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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의 시간 -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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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야구다.’(198페이지)

이야기는 ‘누구처럼 닮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 순간 준삼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돌멩이’였다.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 준삼의 눈에 TV 속 야구 선수가 들어온다. 중학교 야구부에서 함께 활동했던 권혁오, 프로에 입단한 후 특별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선수다. 잘나가는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준삼의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입을 다물고도 환하게 웃던 아버지의 얼굴’(20페이지)

인생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인상적인 하루였던 그 날의 기억 속 아버지의 웃는 얼굴. 준삼은 아버지와 야구장을 다녀온 후 아버지의 꿈이 야구선수였을 것이라 생각해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뤄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야구단에 입단한다. 중학교 3년 동안 야구부에서 활동한 준삼은 투수가 되어 혁오와 함께 번갈아가면서 공을 던졌다.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던 중 전국대회 영상을 본 준삼은 혁오의 아름다운 투구 폼과 비교되는 자신의 투구 폼에 충격을 받는다. 그 뒤 야구를 그만두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해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증권회사에 공채로 입사한다.

‘흙탕물을 일으키는 첫 번째 미꾸라지’(75페이지)

아름다운 혁오의 투구를 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거슬리지 않았던 것들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보이기 시작한 것과 거슬리는 것을 바꾸려고 움직이지는 않는다. 회사는 사내 보유금이 창립 이래 최고임에도 구조조정을 계획한다. 준삼은 부조리함을 보면서 거슬리는 마음 때문에 목에 지푸라기가 걸린 것처럼 껄끄럽지만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실적 경쟁에 대한 압박과 사내 정치 때문에 마음은 지치고 피투성이가 되지만 그래도 회사는 계속 다녀야 한다. 다른 팀과 시합을 하면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시합해야 하는 야구처럼 회사원도 끊임없이 다른 동료들과 경쟁하면서 실적을 올려야 한다. 준삼은 이런 시합을 끝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절대 끝내고 싶지 않는 마음이 더 강하다. 준삼은 공채채용으로 뽑힌 마지막 정규직이다. 준삼의 기수 이후 회사는 더 이상 공채를 뽑지 않았다. 이들은 관행과 각종 비리를 건드릴까봐 모두가 몸을 웅크리고 숨을 죽인 채 어떤 변화도 만들지 않고 살아간다. 악취와 모욕을 견디면서도 준삼은 끝까지 회사 생활을 버틴다. ‘예측이 가능한 것’이 평범함이라 생각한 준삼은 예측할 수 없는 기쁨보다는 눈물을 흘리더라도 예측 가능한 예정된 모욕을 견디는 쪽을 선택한다. 그것이 준삼이 생각하는 평범함이다. 희망퇴직자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 닥치고 희망자가 나오지 않자 직원들끼리 성과 관리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동료의 평가서를 작성해 오게 한다. 준삼은 심리적인 압박과 자기 안에 쌓인 비겁함을 발견한 후 중심을 향한 열망을 내려놓는다. 자신은 무엇을 견뎌야 하는 걸까에 대한 질문을 던진 후 동료 평가서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제출한다. 동료 평가서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데다 자기 이름을 적은 준삼이 희망퇴직자로 정해진다. 준삼은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히고, 퇴직을 권고를 받기 전에 회사를 그만둔다. 무너진 마음은 세상이 무너질 것이라는 공포로 이어져 준삼을 괴롭힌다.

 

‘물기 없이 황폐한 사막. 그 한가운데에 혁오가 서 있다.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모래뿐이다.’(95페이지)

혁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프로팀 입단이 결정된다. 고등학교 마지막 시합을 승리로 거둔 혁오는 자신을 괴롭히는 진호의 눈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힘없이 돌아섰던 진호는 사고로 사망한다. 진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그로 인한 공포감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혁오를 슬럼프에 빠지게 만든다. 모두의 기대를 안고 프로 데뷔 시합에 오르지만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모두를 실망시킨다. 두 번째 시합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자 혁오는 자신의 내면이 크게 틀어졌음을 깨닫는다. 위력적인 스트라이크를 던졌던 혁오가 시합에만 올라가면 볼넷을 던지는 이유는 죽은 진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버석거리는 모래뿐인 황폐한 사막에 혼자 떨어진 느낌을 받은 혁오는 진호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도 혁오를 돕지 못한다. 혁오 자신조차도. 계속되는 슬럼프로 혁오는 이제 진호가 보이지 않을 때도 볼을 제대로 던지지 못한다. 하지만 혁오는 야구를 그만둘 수 없다.

“경주마처럼 평생 야구만 보고 달렸는데 내가 사회에 나가서 뭘 할 수 있겠어?”(100페이지)

투수를 하다 팔꿈치 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둔 후 팀 매니저가 된 진형의 말처럼 야구선수에게 평생 해오던 야구를 그만둔다는 것은 가장 두려운 일이다. 진형의 타구 연습을 보고 난 후 타자로 전향하기 위해 연습을 했지만 진호의 환상이 다시 나타나면서 그마저도 실패한다. 프로팀에 입단할 때 혁오가 가졌던 모든 목표는 볼넷으로 인한 부진으로 단 하나도 이룰 수 없었다. ‘신인왕과 MVP, 야구 역사에 남을 기록’에 대한 꿈은 진호의 죽음 이후 혁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꿈이 되었다. 승부조작을 의심하는 기자를 만나 후배들을 지키기 위해 한 인터뷰는 혁오를 승부조작 선수로 만들어버린다. 모두와 연락을 끊은 후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떠나 바다로 간 혁오는 오토바이를 바다 속으로 보내준 후 돌아온다. 기현의 정정보도로 승부조작 오명이 벗겨진 후 독립리그에 들어가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후배들을 가르치고 아름다운 투구 폼으로 공을 던진다. 혁오는 ‘승패와 관련 없이 계속 야구하기’라는 꿈을 이뤘다.

 

“여자라서 그래.”(57페이지)

기현은 90퍼센트가 남자인 언론사의 스포츠 기자다. 다른 기자들은 기현에게 ‘남다른 시선을 지닌 것, 아픈 것, 친구가 많은 것, 친구가 없는 것 등등’의 모든 것이 여자라서 그렇다고 말한다. 기현이 취재와 기사 작성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야구를 했을 때도 기현은 실력보다는 여자라는 성별에만 초점이 맞춰져 주목을 받았다. 중학교 진학을 앞둔 기현은 당연히 야구부 진학을 꿈꿨지만 여자는 중학교 야구부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모두가 기현에게 야구는 취미로 하라고 말했다. 중학교에 들어가 주말 야구를 했지만 중학교 2학년이 되고 난 후 야구를 그만둔다. 대학 졸업 후 기현은 스포츠 신문사에 입사한다.

‘여기선 가장 높이 올라갈 거야. 성공한 야구인이 될 거야.(65페이지)

성공한 삶을 꿈꾸는 이들은 각자의 꿈을 가지고 성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성 최초의 스포츠신문 편집장’이 되는 것이 기현의 목표다. 기현은 오빠 기철의 가게에 온 야구 선수들이 하는 말을 듣고 승부조작 사건을 취재해 특종을 터트린다. 하지만 사건은 축소되어 한 명의 선수만이 책임을 지고 마무리된다. 기현은 계속해서 이 건을 조사하고, 혁오를 주목한다. 승부조작 사건을 취재하면서 편집장과도 갈등을 빚게 된다. 기현은 자신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해 특종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다. 혁오에게 승부를 조작한 후배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조건으로 승부조작을 인정하라 압박한다. 승부조작을 하지 않았지만 후배들이 걱정된 혁오는 갈등한다. 혁오는 기현에게 자신이 트라우마 때문에 가끔 볼넷을 일부러 던진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인터뷰하는 조건으로 후배들의 비리가 담긴 파일을 지워줄 것을 요구한다.

“이기는 게 중요할까요?”(191페이지)

혁오와 다시 만난 기현은 혁오의 볼넷이 야구와 스포츠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승패가 중요한 야구선수가 이기는 것이 중요한지에 대해 질문을 하고, 기현은 지금 하는 일과 목표가 과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혁오의 인터뷰를 기사화하겠다는 기현에게 편집장은 승부조작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는 이유로 허락을 해주지 않는다. 기현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승부조작에 관여되었느냐는 질문을 하자 흥분한 편집장은 기현의 뺨을 때린다. 잠시 놀란 듯 했던 편집장은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기사를 내보내는 조건으로 기사를 허락한다. 하지만 기사는 왜곡되어 보도되고, 혁오는 승부조작을 한 선수로 낙인찍힌다. 기현은 편집장이 마음대로 짜깁기한 기사라 말하면서 혁오의 정정 기사 요구는 바로 들어줄 수 없다고 사과만 계속한다. 구단의 결정으로 인해 선발투수가 된 혁오는 집중력을 발휘해 공을 던지지만 중간을 넘어서면서 집중력이 떨어져 교체되어 내려온다.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도 혁오는 승부조작이 아니라 말했지만 편집된 영상은 결국 혁오를 승부를 조작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정정기사를 실어주지 않자 기현은 신문사를 나와 SNS에 승부조작과 관련된 증거 자료와 함께 혁오의 정정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한다. 이때부터 치열하게 특종만을 향해 달렸던 기현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생존에 관심 있지, 여기서 끝까지 살아남는 게 목표랄까.’(142페이지)

기현의 말처럼 ‘준삼, 혁오, 기현과 직장인, 야구선수, 기자 등등’의 모두가 생존을 위해 끝까지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지금도 수많은 직장인들이 생존을 위해 삶을 버티고 있다.

‘제발 시합이 끝나길, 제발 시합이 끝나지 않길.’(92페이지)

회사원은 실적에, 야구선수는 승패에 큰 영향을 받는다. 회사원이 실적 압박과 스트레스에도, 야구선수가 승패에 대한 압박과 슬럼프에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을 그만 둘 수 없는 것은 할 수 있는 게 회사 업무와 야구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그곳에 쏟아 부었기 때문에 회사원은 회사를, 야구선수는 야구를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 자체가 전부이기 때문에. 모두는 시합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과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동시에 느끼고, 이 두 마음 중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모든 모욕과 부조리를 참고 견디고 있다. 그렇게 서서히 자신을 잃어간다.

‘혁오가 필사적으로 지킨 아름다움이 자신의 조각을 자극했음을.

누구나 아름다움의 조각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겐 서로의 조각을 자극할 힘이 있음을.’

-중략-

“나도 있다.”

(251페이지)

견디고 견디다 결국 준삼은 마음의 병이 들어 발버둥 치면서 버텼던, 끝내고 싶지 않았던, 시합을 끝내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 분투한다. 혁오의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준삼은 혁오의 투구 폼이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을 확인한다. 힘든 일을 겪었음에도 혁오가 지킨 아름다운 조각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깨닫고, 자신도 혁오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조각은 있다. 준삼과 혁오 그리고 기현과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조각을 가지고 있다. 마음의 병으로 힘들었던 준삼과 좌절했던 기현은 혁오의 아름다운 조각에 자극받아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우리 마음속에도 아름다운 조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 명의 주인공은 부당함과 부조리함으로 인해 리그 밖으로 나왔지만, 리그 안에 남은 사람들을 비열하고 비겁하다고 욕만 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었고, 그들이 욕망하는 목표가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어 뒤로 숨었다. 이들을 비겁한 인간이라 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만약 내가 그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더 무겁다. 새롬이 말한 것처럼 ‘작고 단단한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뒤따른다. ‘크고 견고한 것’ 앞에서 ‘작고 단단한 것’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작고 단단한 것을 위해 움직이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나의 비겁함을 인정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조각을 가지고 움직이는 많은 이들을 보면서 내 안의 아름다운 조각을 찾아본다. 모두가 자신이 사는 세상에서 최선이라 생각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 누구도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고 비난하고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야구를 잘 알지 못해 ‘야구’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어려울까봐 걱정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은 술술 읽혔다. 야구를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 대해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거리에서 사람들의 비명을 듣고,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명을 질러야 버틸 수 있는 사람이 한계에 다다르기 전에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숨 쉴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말을 하는 것이······.”

(241~242페이지)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 앞에 나는 목소리를 낼 용기가 있는가를 나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서평이벤트(한겨레문학상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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