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 -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이병철 지음 / 천년의상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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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를 생각합니다’(책 뒷표지)

모국어란 무엇일까? 우리는 모국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모두 모국어일까?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새로운 언어가 탄생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변화하는 언어의 속성에 따라 모국어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에 대해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는 이병철 작가의 경험과 언어학문적 지식을 연결해 이야기 한다. 필자 이병철은 모국어에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도록 일상에서 겪는 어휘 문제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를 썼다고 한다. ‘성장기·청년기에 겪은 언어환경’, ‘직업인으로서 겪은 언어환경’, ‘개선해야 할 언어환경’,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모국어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적고 있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 듣고 썼던 언어의 대부분은 일본어다. 6.25 전쟁이 한참이던 1951년에 태어나 전쟁을 겪은 필자는 어린 시절 일본어의 홍수 속에서 살았다. 일본의 식민지로 지내는 동안 우리 말 속에는 일본어가 뿌리내렸고, 그 언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우리말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본어를 우리말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지만, 반대로 우리말이 일본어로 바뀌어 사용되기도 했다. 전쟁 이후 먹고 사는 것이 중요했던 시절, ‘식구밥벌이는 밥을 나누어 먹고 식구를 먹여 살리는 것을 의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구보다는 가족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식구라는 단어는 조금씩 사라져간다. ‘가족결혼과 혈연으로 이루어져 한 집에 사는 집단’(34페이지)을 의미하는 말로 일본의 가조쿠의 개념에서 온 말이다. 시집간다는 의미의 혼인결혼으로 바뀐다. 지금 우리는 식구와 혼인보다는 가족과 결혼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일본말 밴또와 같은 언어는 우리말 도시락으로 바뀌어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반대로 가족결혼’, ‘야채처럼 우리말이 일본어로 바뀌기도 했다. 자주 사용했던 익숙한 단어들 중 낭만, 연애, 연인, 애인, 고백, 밀어, 실연, 비련, 애수, 추억, 고뇌, 고독, 허무, 축제···’(95페이지)등의 말이 일본인들의 인식체계에 따라 만들어진 말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주 사용했던 단어들이 한자어가 아닌 일본어와 연결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국 전쟁의 영향으로 한국과 미국의 정서가 혼합되면서 필자의 성장기 언어는 앙꼬빵, 곰보빵, 빠다빵이 공존한 일본어와 영어와 우리말, 한자어 등 여러 언어들이 뒤죽박죽 뒤섞인다.

 

1954한글 간소화 파동 소동이 일어난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글을 쉽게 쓰게 한다는 명분으로 현행 맞춤법을 폐지하고 구한말에 사용했던 이어 적기로 돌아가라는 담화를 발표한다. 이어 적기란 소리 나는 대로 적기와 비슷한 것으로 도둑을도두글, ‘잡았다자밨다로 쓰자는 것이다. 한글 관련 단체와 국민들이 강하게 반발했음에도 대통령이 이 정책을 고집하다 1955년에서야 국민이 원하는 대로 맞춤법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한다. 국립국어원과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해 맞춤법 표기법이 변경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읍니다‘~습니다, ‘짜장면자장면으로 바꾸는 정책은 한국학회의 반대를 무시하면서까지 변경되었다. 필자는 한글을 연구하는 단체나 개인이 주장하는 학설과 여러 가지 사전들의 내용은 반영되지 않고, 국립국어원과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이 한글과 우리말에 관해 모든 것을 결정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나 또한 국립국어원과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을 맹신했던 일반 국민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필자의 글을 읽은 후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의문을 갖게 됐다. 필자는 맞춤법 표기법이 독단으로 변경될 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언어에 대한 오류는 하나의 단체나 하나의 사전이 아닌 여러 연구기관과 학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고쳐나가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맞춤법만큼이나 필자가 힘을 쏟은 부분은 글다듬기, 즉 윤문이다. 필자는 기자로 재직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써야만 했었다. 연재 원고를 받아 글을 다듬는 과정을 하는 동안 필자는 맞춤법과 글다듬기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기자가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언론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글을 쓰고 글을 다듬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신입기자에게 글쓰기 방법을 알려줄 때 원고 양보다 더 쓰게 한 후 다시 줄이는 방법으로 신입 기자들의 글쓰기를 지도한다. 필자는 글다듬기를 하면서 글맛과 말맛을 알게 된 계기가 된 단어가 부둥켜안다라고 한다. ‘감싸 안다, 그러안다. 껴안다. 끌어안다. 당겨 안다. 부둥켜안다. 부여안다, 얼싸안다, 품어 안다’(137페이지) 등과 같이 다른 단어이지만 비슷한 의미를 지닌 말들이 있다. 이러한 말을 찾아 가는 과정이 필자에게 글과 말의 맛을 알게 해주었다고 한다. <‘900 어휘사회>에서는 어휘선택이 글쓰기에서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한정된 어휘만을 사용해 쓰인 글들에 대해 비판한다. 어휘가 어떤 주제에 포함될 수 있는 낱말을 묶은 것 또는 그 수효’(156페이지)라고 할 때, 우리말은 이 수효가 풍부하기 때문에 꼭 맞는 말을 골라 쓸 수 있다고 한다. 예시로 붉다는 말과 한 주제로 묶인 어휘를 157~158페이지(45가지)에 실어놓았다.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우리말 형용사와 부사는 4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 중 가리고 가려 책에서는 70(169~170페이지)를 실어 놓았다. 한 주제로 묶인 어휘가 이렇게 많다는 것도 놀랍고, 이렇게 많음에도 내가 그동안 몇 개만을 사용했다는 것도 또 놀랍다. 시대에 따라 사전에 실리는 어휘에 비해 사용하는 어휘가 줄어들고 있음에 대한 안타까움도 적고 있다. ‘20만 어휘를 가지고 있는 우리 역사가 무의미해지고 어느 순간 ‘900 어휘 사회가 될 수 있음을 걱정한다.

 

맞춤법 표기법이 너무 자주 바뀌다 보니 맞춤법을 바로 검색해 보기 위해 필자는 거금 75000원을 주고 이희승 편저 <국어대사전>을 샀다고 한다. 하지만 사전을 사고 5년 후 1988년 새로운 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이 발표되었고, 다시 1991년에 거금을 주고 바뀐 규정을 수용한 금성판 <국어대사전>을 사야만 했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사전에 모든 것을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국어사전을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는 도반이라 말하면서도, 국어사전의 문제점 중 가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일곱 가지를 적고 있다. ‘표제어가 틀렸다’, ‘틀린 풀이와 내용이 많다’, ‘어설픈 풀이가 많다’, ‘·탈자와 부적절한 어휘가 많다’, ‘사전에 없는 말이 많다’, ‘풀이말이나 예문에 나온 어휘가 표제어에는 없다’, ‘자료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몇 개의 국어사전을 예로 들면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이야기한다. <표준국어대사전> 어휘 늘리기가 50만을 넘어선지 20년이 더 지났다고 한다. 스마트 폰으로 검색해서 찾아낼 수 있는 낱말과 어휘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검색되는 모든 것들이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필자는 소중한 인력을 어원과 유래를 밝히는 데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잡학 사전이 아닌 진짜 국어사전과 방언사전을 가볍고 싸게 만들어 보급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적고 있다.

 

이어서 한국어의 뜻글자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주장과 관형격 조사 ‘~의 오·남용 사례를 적고 있다. 한국어는 표음문자와 표의문자, 두 가지를 모두 쓰는 언어다. 소리글자와 뜻글자가 합해져 한국어가 만들어졌다. 한자와 많이 달라져 한자가 되어버린 뜻글자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과 소리글자와 뜻글자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대립한다. ‘관형격 조사 ~의 오·남용에 대해 289~329페이지까지 많은 분량의 사례를 적고 있다. 관형격 조사 ‘~주격, 목적격, 보격, 부사격 조사와 보조사등등에서 문법적인 오류를 무시하고, 잘못 쓰이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는 책이나 영화 제목 등에 많이 사용되고 있어 이 말이 틀린 말인지도 알지 못했다. 이 조사가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렇게 계속 사용되다 어느 순간 ‘~가 모든 곳에 사용되는 것이 옳다는 내용이 사전에 등재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예언하듯 필자는 ‘~의 오·남용에 대한 자신의 글이 공허한 메아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 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일이라는 게 다 아주 작은 외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331페이지)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헛심 쓴 것은 아닐 것이라 적고 있다. 어떤 주장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의 목소리가 있겠지만 언어는 계속해서 변하고 또 변화한다. 지금은 틀린 언어라 말했지만 시간이 흘러 사전에 등재되면서 맞는 언어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언어에 대한 정답은 고정불변이라 말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고정불변이기도 하고, 또한 고정불변이 아닌 유동적이기도 하다고 생각하지만, 문법이 어렵고 헷갈리듯 나는 언어가 고정불변인지, 유동적인지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하지는 못하겠다. 말장난 같지만 이것이 나의 솔직한 답이다.

 

갈수록 태산. 알수록 어려운 우리말’(135페이지)

이 말이 딱 이다. 학교 다닐 때도 문법은 알면 알수록 더 어렵고 헷갈렸는데, 역시 우리말은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우리말은 알면 알수록 더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우리말 알기다.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는 에세이 형식으로 언어에 대한 필자 이병철의 경험과 생각을 적고 있지만, 그 안에 언어의 변천사를 함께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잘못된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지금도 새롭게 언어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있다. 요즘 만들어지는 신조어 중 대부분은 통역이 필요할 정도로 나에게는 어려운 언어들이다. 신조어들은 유행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사전에 새롭게 수록되기도 한다. 언어는 무한한 생명력으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거대한 생명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언어를 사용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언어를 사용한다.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언어를 사용했다면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를 읽고 난 후 나는 지금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그 언어를 통해 어떤 사유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사유한다. 생각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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