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
임태운 지음 / 시공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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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나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한 마을에서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이웃, 친구, 배우자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라면? 임태운 작가는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그 안에 스며들어와 있는 또 다른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다른 존재와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들여다보게 한다.

 

<가울반점>은 작은 마을 수만리에 또 하나의 중국집이 생기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람들이 새로 생긴 ‘가울반점’으로 몰리고, 시황과 아버지는 가울반점 자장면의 비밀을 캐기 위해 종만의 뒤를 캔다. 군대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 종만은 밤마다 동네 대갈바위로 올라가고 새벽녘이면 자루를 하나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종만의 뒤를 미행한 아버지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뒤따라간 시황은 외계인의 의식이 들어간 종만의 정체를 알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알았던 친구의 몸속에 들어간 외계인이 지구와 외계별의 식재료를 연구하는 미식연구가라는 설정도 흥미로웠다. 시황을 죽이려던 순간 남아 있던 종만의 의식이 이를 막는다. 외계인은 두 부자에게 살려주는 조건으로 마을을 떠나라고 말한다.

 

<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는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평행우주를 여행하는 여행자와 살고 있는 아내의 이야기다. 남편은 천년 이 넘는 시간 동안 4,000번 이상의 종말을 맞이했고, 그 중 1,500번은 종말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편의 외도를 의심해 카페에 가입한 아내는 거짓말 탐지기를 받아 남편의 몸에 부착하고, 거짓말 탐지기 덕분에 남편의 말을 믿게 된다. 다른 평행우주 속 자신과 4,000번이 넘는 삶을 살았던 남편이 안쓰러우면서도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또 다른 자신들과 살았다는 말에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 부부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 낚시꾼들이 남편을 공격하고 남편은 그들을 해치운 후 종말을 막기 위해 떠난다.

‘얼른 가서 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요.(115페이지)

낚시꾼들이 남편의 위치를 알았던 것이 거짓말 탐지기 때문이라 생각한 아내는 종말을 막고 자신에게 ‘햇살이고, 바람이며, 공기’인 남편을 구하겠다고 마음먹는다.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자신에게 남편을 빼앗기기 싫기 때문이다. 다른 평행 우주 속 다른 직업과 환경에도 같은 모습의 배우자를 다시 만나 사랑하고 결혼한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한 사람을 몇 천 번이나 다시 만나 사랑하고 결혼한다는 것이 축복일까에 대해서는 대답이 망설여진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답이다.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궁극의 몸>은 바이러스 전쟁 이후 신체 등급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세상이다. 바이러스 노출 정도와 신체장애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 직장을 선택하는 것도 제한되는 사회다. 도담은 1차 감염에 그친 부적격 신체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살았다. 도담은 자신에게 존재하는 미니 웜홀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스스로를 최고 등급으로 정하고, 자신이 궁극의 몸을 지닌 초월적인 존재라는 생각에 빠져든다. <궁극의 몸>의 주인공 도담은 신체 일부가 이동하는 이상증상이 나타난 와중에도 회사에 출근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각을 걱정했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리가 생각났다.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후 출근을 걱정했던 그레고리와 도담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도담은 <변신>의 그레고리처럼 처음엔 출근을 걱정하지만, 물리학자에게 메일을 보내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자신의 능력을 깨달은 후 도담은 사람을 공격하고, 물건을 훔치는 등의 옳지 않은 곳에 능력을 사용했지만, 그레고리와 다르게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삶으로 나아갔다. 도담이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실어본다. 도담은 궁극의 몸으로 어떤 궁극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빨에 끼인 돌개바람>의 주인공 자무이는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 초원에서 태어난 전사로 본명은 레미톨뽀냐위, 지구어로 ‘이빨에 끼인 돌개바람’이다. 제8종 은하계의 R17번 행성에 거주하는 잠입 전투 종족 크레냐위 전사다. 지구에서 치러지는 크레냐위인의 성인식은 원주민 숙주의 육체만을 사용해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그들이 서로를 찾는 방법은 ‘샤다모이’라는 유전자에 심어진 발광신호가 유일한 단서다. 자무이는 성인식을 위해 동족들을 찾아 길을 떠나고 모두를 해치운 후 최후의 상대를 찾아 대한민국 인천으로 온다. 샤다모이가 모여 있는 가게를 발견한 후 그곳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취직해 아프라냐위를 찾는다. 드디어 만난 아프라냐위는 주경야돈의 며느리, 유일하게 여성체로 태어났고, 지구에서 결혼해 아들을 낳아 어머니가 되었다. 그녀는 크레냐위인이 아닌 지구인으로의 삶을 선택했다. <이빨에 끼인 돌개바람> 속 외계인은 지구인에서 태어나 지구인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동네 정육점을 운영하는 아줌마가 크레냐위인 최고의 전사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약한 존재라 생각했던 여성이 어머니가 되고, 최강자의 전사들을 모두 이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나는 강해지기 위해 어머니가 된 건지, 어머니가 되는 바람에 강해져 버린 건지.”(179페이지)

강해지기 위해 어머니가 된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가 되어 강해진 것인가라는 아프라냐위의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계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와 같이 사람들마다 대답은 다르게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나또한 무엇이 먼저인지 헷갈린다. 최강자를 가리는 외계인의 성인식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여성으로 산다는 것’과 ‘어머니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레어템의 보존법칙>은 PC 방 아르바이트 신입에게 선배가 들려주는 전설적인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날 천 시간 정액제 요금 50만 원을 현금으로 지불한 손님이 찾아온다. 게임의 룰도 몰랐던 쪼꼬야미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게임 머니가 필요하다는 피시방 아르바이트생의 말을 듣고 게임 속 블랙엔트를 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죽지 않는 블랙엔트 한 마리만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 보듯이 하던 사람들이 며칠 동안 한 마리의 블랙엔트만을 공격하는 남자에게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다. 청년은 자신을 버린 전 애인과 자신의 시나리오를 훔친 콧수염이 달린 영화사 피디에 대한 분노를 콧수염이 달린 블랙엔트를 공격하는 것으로 표출한다. 우연히도 그 블랙엔트는 CIA 차장 토미 파커가 비밀 정보를 저장해 놓은 몬스터였다. 한국의 평범한 피시방을 찾은 평범한 시나리오작가 지망생과 CIA 차장이 게임 캐릭터로 연결되었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현실에서 있을 것 같지 않은 설정이지만 또 충분히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기도 해서 더 몰입해서 읽었다. 거대한 힘을 가진 CIA 차장 토미 파커가 블랙엔트를 지키려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만 결국 블랙엔트는 쓰러지고 쪼꼬야미(황척호)는 천 시간의 정액제를 다 쓴 후 피시방을 떠난다. 그때부터 게임 속 블랙엔트는 황척호가 전 애인에게 빼앗겼던 시나리오 대사를 말하고, 영화사는 저작권 위반으로 제소하지만 결국 패소한다. 황척호는 자신을 배신한 전 애인과 영화사에게 통쾌한 복수를 할 수 있었다. CIA 차장이 자신의 비밀금고를 지키려고 평범한 청년을 견제하는 장면에서는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황척호가 블랙엔트를 쓰러트리고, 그의 전 애인과 영화사가 패소하는 장면에서는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어 후련했다.

그건 보잘 것 없는 ‘을’이었던 한 남자가

거대한 ‘갑’에게 도전해 이룩해 낸 위대한 업적이라고.

그와 함께 했던 천 개의 시간 동안 우리는,

잠시나마 ‘잉여’에서 ‘영웅’이 될 수 있었다고 말이야.(253페이지)

거대한 갑인 CIA와 게임회사 그리고 또다른 갑인 영화사를 상대로 ‘을’이었던 황척호는 수많은 을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냈다. ‘거대한 갑에게 도전해 이룩해 낸 위대한 업적’은 ‘잉여’라고 생각했던 이들을 잠시나마 ‘영웅’이 되게 해주었다. 작은 돌멩이로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처럼 황척호는 작은 게임 캐릭터로 자신을 괴롭혔던 갑들을 물리쳤다. 천 시간의 정액제를 쓰고 피시방을 떠난 황척호의 삶은 블랙엔트를 쓰러트리기 전보다는 나은 삶으로 나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

 

<로봇이라서 다행이다>는 왕따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왕따 로봇과 과거에 왕따를 당했었던 초등학생의 우정이야기다. 아빠가 로봇 제조사 ‘실버 인터스트리’의 사장님인 김은찬은 해마다 두세 명을 똘마니를 데리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괴롭힌다. 은찬 일당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최동필은 몸에서 머리를 뽑아 물에 젖은 머리를 털기 시작한다. 최동필의 정체는 ‘왕따 로봇’, 정부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비밀 프로젝트다. 심각해지는 왕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첨단 인공지능 로봇이다. 왕따를 자기한테 집중되도록 유도해서 일진 아이들의 구타와 폭언을 대신 받고 다른 아이들을 왕따로부터 지켜주는 것이 로봇의 역할이라고 한다. 자신의 정체를 본 준서의 기억을 지워주는 장치가 고장나 기억을 지울 수 없게 됐지만 준서는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한다. 친구가 된 준서와 동필은 아이들에게 함께 있던 것을 들키게 되고 아이들 앞에서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준서는 동필의 뺨을 때린다.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은찬 패거리가 무서워 준서는 동필을 피한다. 수련회를 가는 중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동필은 반 아이들 모두를 구한 후 버스와 함께 사라진다. 동필의 비밀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된 준서는 로봇 공학자가 되어 인공지능 로봇을 위한 로봇권 옹호 운동을 진행한다. 달을 방문하기 위해 떠난 준서는 크레이터 공사장을 방문해 친구를 만난다. 인공지능 로봇은 사람처럼 감정과 고통을 느끼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로봇을 하나의 도구와 소모품 취급해 사람만을 위해 로봇을 이용한다.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진 로봇의 로봇권을 어디까지 보장해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작품 속 ‘갑’(더 강한 존재)과 ‘을’(더 약한 존재)의 관계는 경계가 뒤섞이고 어느 순간 모호해진다. <가울반점>에서는 갑이었던 시황과 태수가 자신들이 괴롭혔던 을이었던 종만을 공격했다가 제압당한다. <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에서는 지구의 종말을 반복하는 외계인들을 남편이 해치우고,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간다. <궁극의 몸>에서는 을이었던 도담이 갑이었던 회사 주임을 공격하고, 최상위 등급인 물리학자보다 자신이 더 높은 등급의 궁극의 몸을 가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을이었던 도담은 더 이상 자신을 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빨에 끼인 돌개바람>은 강한 전사의 전형으로 생각했던 남성 전사들을 모두 이기고 약한 존재라 생각했던 여성 전사가 가장 강한 전사로 등장한다. <레어템의 보존법칙>도 거대한 힘을 갖고 있는 CIA 차장의 공격을 막아내고 자신의 목표를 이룬 평범한 한국 청년의 이야기다. CIA와 게임회사, 영화제작사와 맞서 승리한 을의 최종 승리는 전설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로봇이라서 다행이야>는 왕따 당하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을로 살았던 로봇 최동필이 등장한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고 인간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존재인 로봇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타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녔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어떤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을까? 임태운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강함과 약함’, ‘갑과 을’의 경계란 어느 순간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또 다른 존재들, 사람과 로봇이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가 될 때 차별 없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소모되는 ‘잉여’가 아닌 나와 모두를 위해 살아가는 ‘영웅’이다.

 

『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을 읽고 난 후 임태운 작가의 메시지를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나의 느낌대로 책을 읽고 깨달은 대로 적어봤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흥미롭게 몰입해서 읽었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SF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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