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속 클래식 콘서트 - 나의 하루를 덮어주는 클래식 이야기
나웅준 지음 / 페이스메이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위로와 희망이다.’(263페이지)

대중가요와 팝송은 자주 들었지만 클래식은 어쩌다 한 번 가뭄에 콩 나듯 듣게 된다. 이렇게 나에게 클래식은 어렵고 먼 존재였다. 이불 속 클래식 콘서트를 읽으면서 이런 나의 선입견이 깨지기 시작했다. 알람 소리, 광고 음악, 영화나 드라마 음악 등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많은 음악 속에 클래식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이 클래식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이불 속 클래식 콘서트는 총 3장으로 나누어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클래식을 소개한다. 1<클래식이 일상이 되는 순간>, 2<자연을 노래하는 클래식>, 3<클래식이 전하는 행복>은 클래식의 세계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등을 살짝 밀어준다.

 

1<클래식이 일상이 되는 순간>은 아침에 잠이 깨어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이 드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일상의 순간에 감상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을 소개한다.

 

첫 번째 음악은 바흐의 칸타타 <<눈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 <합창>이다. 필자는 음악의 아버지 바흐음악인 아버지 바흐라 설명한다. 바흐는 가족을 책임져야 할 가장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음악을 치열하게 작곡했다. 생계를 위해 음악을 작곡했지만 음악적 철학과 품위를 유지했기 때문에 바흐를 위대한 작곡가라고 평한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1>>은 듣고 있으면 다시 잠을 잘 것 같은 곡이다. 시몬스 침대 CF 에디슨 관련 편에서 사용된 음악이라고 한다. 나에게 <<짐노페디 1>>은 기상곡이 아닌 자장가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지만 책에서는 기상곡으로 소개한다. ‘짐노페디의 뜻이 발가벗은 소년이고, 고대 스파르타에서 젊은 남성들이 나체로 춤을 추고 의식을 치르는 것’(23페이지)을 짐노페디라고 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점심시간, 클래식을 반찬으로에서는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의 <<식탁음악>> 3집 중 <서곡>을 소개한다. 이 곡은 귀족들이 식사할 때 라이브로 연주한 소규모 실내악이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음악의 대부분을 들을 수 있는데 이 음악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연주자가 있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왕족과 귀족들만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인 바흐보다 동시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누렸던 텔레만의 클래식을 나는 지금 스마트폰으로 들을 수 있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 <서곡>1749년 영국의 왕 조지 2세가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불꽃놀이를 위해 의뢰한 곡이다. 헨델은 불꽃놀이가 열리기 전 백여 명이 넘는 연주자를 동원해 리허설을 가진다. 이때 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몇 시간 동안 교통체증이 발생했다고 한다. 교통체증을 유발한 음악을 교통체증이 심한 퇴근길에서듣는 음악으로 소개한 것이 재미있다. 헨델의 리허설 때보다는 덜 막히잖아라 말하고 싶어서일까? 음향 장치가 없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린 곳에서 음악이 제대로 들리기나 했을지 의문이 든다. 헨델을 가장 고민하게 만든 것도 음향 문제였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2<자연을 노래하는 클래식>은 계절마다 들으면 좋은 클래식을 소개한다. 영화 제목처럼 ,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음악이 소개된다. 비발디의 <<사계>> <>으로 시작되고, 멘델스존의 <<무언가>> <봄의 노래>로 마무리된다.

 

사계절을 표현한 곡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곡가가 비발디다. 비발디의 <<사계>>는 가장 널리 알려진 사계절 클래식이다. 비발디의 <<사계>>는 작자 미상의 이탈리아 소네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펠릭스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소개하면서 <<한여름 밤의 꿈>> <결혼행진곡>이 우리나라에 어떻게 소개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을 이야기한다.(이에 대한 정확한 출처는 찾지 못했기 때문에 필자는 추측한 내용을 적고 있다.) 1901년 최초로 창설된 대한제국 양악대를 교육하기 위해 독일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가 악기를 가지고 한국을 방문한다. 이 당시에 탑골공원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행진곡과 독일 음악가의 음악이 연주되었다. 이렇게 프란츠 에케르트를 통해 전해진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과 바그너의 <혼례의 합창>이 소개되었을 것이라 말한다. <결혼행진곡>이 어떻게 우리나라에 전해져 결혼식에서 연주되었는지에 대한 필자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당연하게 들었던 음악 이야기를 새롭게 알게 되어 즐겁다.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은 멘델스존이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읽고 만든 음악이다. 그리그의 <<페르 귄트 모음곡 1>>은 입센의 희극 소설 <<페르 귄트>>에 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이했다. 이렇게 시나 소설 등의 문학작품을 음악으로 만든 클래식들이 많다. 이러한 음악을 작품과 함께 감상한다면 더 깊이 있는 클래식 감상이 될 것이다.

 

3<클래식이 전하는 행복>은 직접 갈 수는 없지만 음악을 통해 여행지의 감성을 느껴볼 수 있는 곡과 음악가들이 전하는 선물이라는 주제로 곡들을 소개한다.

 

클래식과 떠나는 여행에서는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관광열차 폴카>>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그라나다, 오스트리아 빈,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스코틀랜드 헤브리디스 제도, 핀란드 이발로, 체코 프라하, 미국 그랜드캐니언, 멕시코 멕시코시티를 표현한 음악을 소개한다. 마지막 여행지는 지구가 아닌 장소로 우주 목성을 표현한 곡이다. 에밀 발트토이펠의 <<고속열차>>를 소개하면서 클래식과 함께 떠났던 여행을 마무리하고 있다. 여행지를 여행할 때 그곳을 표현한 음악을 함께 듣는다면 여행의 감동이 더 커질 것이라 생각된다.

 

음악가들로부터의 선물은 클래식 작곡가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삶의 지혜를 전해주는 곡들을 작곡가가 우리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소개한다. 작곡가의 편지를 받아 읽는 느낌이 들어 더 친밀하게 클래식과 작곡가들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작곡가가 직접 본인의 곡을 설명해주는 느낌이 들어 더 생동감 있는 감상이 될 것 같다.

 

1~3장까지 마지막 부분에 <지루한 클래식>을 첨부해 좋은 음악 VS 나쁜 음악’, ‘그리스 신화로 알아보는 오페라 변천사’, ‘작품번호의 비밀을 설명하고 있다.

 

거의 모든 예술의 공통점은 그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점이다. 다만 전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184페이지)

작곡가는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악기를 사용해 음악 속에 담긴 메시지를 청중에게 전달한다. 알고 들으면 더 자세히 더 깊이 있게 듣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불 속 클래식 콘서트는 음악 사조와 악기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함께 알 수 있게 설명한다. 각 곡이 만들어진 배경과 곡의 특징을 설명하고, 작곡가와 곡이 만들어진 시대 배경도 함께 알 수 있어 더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바쁘게 일상을 보내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풀고 싶을 때 이불 속 클래식 콘서트는 선곡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줄 것이다. 이불 속 클래식 콘서트는 멜론의 탑100처럼 클래식 탑100을 소개하는 책으로, 클래식 플레이 리스트이자 해설서이다. 책을 읽으면서 클래식을 즐길 수 있도록 들으면서 읽는 클래식 콘서트로 클래식을 감상할 수 있게 QR코드를 삽입해 놓았다. ‘매일 클래식 오디오와 함께하기에서는 클래식에 대한 이야기와 멜로디가 실린 오디오클립 콘텐츠를 준비했다. 더 많은 클래식에 대해 알고 싶을 때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불 속 클래식 콘서트는 클래식에 대한 지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책이다.

 

머리로 이해하거나 지식으로 이해하는 클래식이 아닌 감각으로 또는 마음으로

그리고 기분으로 이해할 수 있는 클래식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261페이지)

음악은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듣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책을 읽으면서 배경을 알고 들었을 때 음악에 대한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음악은 그냥 들어도, 배경을 알고 들어도 모두 좋다. 음악은 듣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연주자가 그들의 해석으로 연주한 음악을 듣는 청중은 자신의 기준에 맞게 느끼고 즐기면 된다는 말에 공감한다. 음악의 이론적인 부분을 모른다고 해도 듣고 느끼고 즐기면 그것이 진정한 음악 감상이라 생각한다. 클래식 작곡가와 곡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안다면 곡을 더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겠지만, 그 무게에 짓눌려 클래식은 어렵다는 틀에 갇혀 감상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그냥 감각으로, 마음으로, 기분으로 이해하고 감상하라 말하는 필자의 말에 공감한다.

 

#서평이벤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 - 굽은 소나무, 기근에 허덕이는 백성을 구하다,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최우수상 수상 케이팩션 3
천영미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굽은 소나무, 기근에 허덕이는 백성을 구하다’(책 표지)

허욱의 아들이 죽은 다음 해에 손자 허은수가 태어난다. 손이 귀한 집안에 곱추로 태어난 은수는 집안 어른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바르게 성장한다. 장애와 어머니의 죽음에 힘들어하던 은수는 외할아버지가 역모죄인이라는 이유로 혼사길이 막힌 아영과 혼례를 올리고, 이후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아영의 권유로 과거를 치른 은수는 장원급제를 하게 되고, 대신들의 반대에도 왕은 은수를 관리로 등용한다. 왕을 도와 제례를 지내던 중 넘어진 은수를 대신들이 탄핵할 것을 요구하고, 왕은 대신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 하면서 은수를 궐내 정원을 관리하는 상림원 제조로 삼을 것이라 발표한다. 왕이 은수에게 내린 밀명인 겨울에도 채소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에 상림원은 최적의 장소였다. 은수는 왕이 자신을 쓰임 있는 사람으로 여겨주는 것에 또 한 번 감동한다.

 

은수의 부인 아영은 역모죄로 모든 가족을 잃은 후 말을 잃은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친정 식구를 잃은 왕비를 안타까워하던 왕은 아영의 어머니가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딸의 그림으로 위안을 받고 있다는 말에 왕은 아영을 궁의 다과연에 부른다. 아영의 그림을 본 왕비는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 아영의 매화 그림을 본 후 왕은 왕비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함과 미안함을 느껴 왕비의 식솔들의 근황을 조사하라 명한다.

 

약식동원, 의식동원

-중략-

매일 우리가 먹는 음식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될 수 있다는 뜻

(101페이지)

궁의 약초를 관리하는 전의감 소속 의관 전순의에게 약초에 대한 지식을 알려준 스승은 음식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스승은 약초를 캐고 말리는 일뿐만 아니라 고추, , 호박, 씀바귀, 도라지, 깨 등의 음식재료를 말리는 일을 함께 한다. 그는 약초를 구하기 힘든 백성들에게는 음식이 약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먹거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의관이 아녀자들이나 하는 먹거리에 대해 연구한다는 이유로 의관들의 비웃음을 샀던 전순의는 우연히 임금과 마주치고 임금에게 약식동원, 의식동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의관 전순의가 적은 기록을 본 왕과 박내관은 재배법과 조리법이 자세하게 적힌 내용을 보고 놀란다.

 

네 안의 아름다운 자질을 백성을 위해 사용하라.’(129페이지)

늦은 밤 왕은 허은수, 최아영, 전순의를 궁으로 부른다. ‘꼽추 대감, 아녀자, 천출의관’, 세 사람은 세상의 중심이 아닌 테두리에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존재들이다. 왕은 이들에게 백성을 위해 추운 겨울에도 식물을 길러낼 수 있는 온실을 만들고, 온실에서 식물과 약초를 키우고, 그 효능을 기록하라 말한다. 아영에게는 식물과 약초의 생김을 그려서 백성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기록하라고 명한다. 왕은 온실을 만들 수 있는 설계를 거의 완성했을 때 은수와 전의관을 탐라로 보낸다. 귤나무와 제주의 흙을 도성으로 옮겨오는 일을 맡겼지만 이면에는 탐라 백성들의 생활을 암행할 임무를 숨기고 파견한다. 탐라를 가고자 하는 안평대군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 왕은 안평대군을 은수와 전의관과 함께 탐라로 보낸다. 남자들이 배를 몰고 나가 목숨을 잃으면서 탐라에는 여인들의 수가 더 많다고 한다. 남자의 수가 줄어도 부역은 줄지 않았기 때문에 여인들은 잠녀가 되어 전복, 해삼, 미역, 옥돔 등을 잡아야 했다. 안평대군은 잠녀들을 보면서 삶을 짓누르는 무게에도 가라앉지 않고 떠오르는 생명력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은수와 전의관은 귤을 진상하기 위해 탐라 백성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거짓으로 기재된 귤의 수량을 채워야 하는 탐라 백성들에게 귤나무는 저주받은 나무가 되어버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수와 전의관, 안평대군은 귤나무를 가지고 한양으로 돌아온다.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귤나무의 원인을 찾던 중 은수는 지렁이를 보고 해결방법을 찾아내고 귤나무는 상림원에 뿌리를 내린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왕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오랜 기근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백성들의 고통이다. 백성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왕은 대신들의 반대에도 백성을 위한 정책을 고민한다. 임금은 대신들에게 기근에 대한 대책을 내놓으라 말하지만, 대신들은 현실성 없는 대안만을 내놓는다. 이조판서가 된 허은수가 백성들이 소나무 껍질을 벗겨 삶아 먹게 하는 방법을 이야기하지만, 대신들은 소나무는 사대부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이기 때문에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백성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왕이 노력하는 동안 대신들은 자신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궁의 약재를 빼돌리고, 5년째 이어가던 기근으로 백성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좌의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연회를 연다. 대신들은 백성들보다 소나무가 죽어나가는 것을 걱정한다. 사대부를 상징하는 소나무의 죽음을 걱정할 뿐 백성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대부들은 소나무를 자신들의 나무라 생각하지만, 왕은 소나무를 백성의 나무라 생각해 백성들에게 돌려줄 방법을 찾는다. 백성들에게 소나무를 돌려주기 위해 왕은 뒤틀린 소나무를 재배할 것을 밀명으로 내리고, 은수와 전의관은 안평대군의 비해당에서 몰래 실험 재배를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비밀은 상림원 별감에 의해 좌의정에게 알려진다. 대신들은 명나라가 천자의 나무인 소나무를 모독한다고 생각할 것을 걱정해 왕의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 상림원을 불태우기로 결정한다. 왕이 강무를 떠났을 때 대신들은 민가에 불을 지르고 화재로 인해 백성들이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 상림원의 온실과 식물, 자료들 대부분이 불에 타 사라진다. 다행히 화재가 있기 전 아영이 왕비에게 맡겼던 식물 자료는 지킬 수 있었다. 상림원 화재로 좌절하던 은수는 비해당에 심은 소나무 중 굽은 소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는다. 굽은 소나무를 산에 몰래 심으러 다닌 전의관의 노력은 꽃을 피워 굽은 소나무들이 건강하게 자리 잡기 시작한다.

 

좋은 것을 백성과 함께 나누며 즐거워하는 것이

진정한 왕도 실현의 근간임을 잊지 말도록 하라.”(323페이지)

왕은 좋은 것을 백성과 함께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왕도 실현이라 말한다. 이를 위해 백성을 위한 나무를 키우게 했고, 백성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인재를 키우고 정책을 시행했다. 명나라를 떠받들고 공맹을 주장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대부들의 반대를 누르고 여러 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던 힘은 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이어지던 흉년이 끝나고 풍년 소식이 전해지자 왕은 경회루 옆 초가를 떠나 강녕전으로 돌아온다. 왕은 상림원을 크게 증축하고 그곳을 기근에 대비해 조선 팔도의 모든 씨앗을 보관하고 재배하는 보물창고로 삼을 것’(338페이지)이라 말한다. 은수는 왕에게 조선 땅 곳곳의 수원을 찾아 천방을 개발하고 이용한다면 백성들을 위한 농지 개발이 가능함을 이야기한다. 이를 엿들은 신별감은 이조판서에게 전한다. 모든 것이 왕의 뜻대로 흘러가던 순간, 포쇄 작업을 마친 태조대왕실록에 좀이 슬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그 일을 이유로 대신들은 허은수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함정임을 알면서도 왕은 이들을 지킬 방법을 찾지 못해 괴로워한다. 은수와 전의관의 말을 전한 안평대군은 이들이 자신들이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유배를 보내줄 것을 청했다는 말을 전한다. 왕은 두 사람의 관직을 삭탈하고 온양 땅으로 유배를 보낸다. 왕은 온양 행차를 결정하고 왕과 왕비, 안평대군은 온양으로 향한다. 왕비의 가마 뒤 작은 가마에는 은수의 처 아영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운 이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사람들은 알까?

그들이 손쉽게 베어가는 나무들이

실상은 주어진 생을 살아내기 위해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울창한 숲의 시작은

생을 포기하지 않는

작고 여린 씨앗이라는 것일.’(359페이지)

나무는 주어진 생을 살아내기 위해 격렬하게 몸부림친다. 나라의 백성 또한 생을 살아가기 위해 힘겨운 삶을 몸부림치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숲의 시작이 생을 포기하지 않는 작고 여린 씨앗이듯 한 나라의 시작은 작고 힘없는 백성들이다. 백성들이 생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주기 때문에 왕은 나라를 세우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세종)은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힘없고 불쌍한 백성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고통 받지 않고 살아가길 원했던 왕은 백성을 위해 함께 일할 인재를 찾아 곁에 두었다. 공맹사상만을 이야기하면서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위선적인 사대부들의 반대에도 왕은 위민정책을 시행한다. 백성을 사랑하고 뛰어난 인재를 선입견 없이 곁에 둘 줄 알았던 왕의 시대를 살았던 백성들에게 왕은 가장 큰 선물 같은 존재였다. 허은수와 전의관은 왕의 믿음과 지지가 있었기에 자유롭게 자신들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는 백성들이 고통 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꿈꿨던 왕과 신하들의 이야기다.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세종실록>> 18년의 기록에서 기근에 죽어가던 백성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처벌하지 않은 사건에서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얻어 소설로 적었다고 한다. 주인공 중 전순의는 세종, 문종, 세조를 모신 어의로 실존 인물이고, 그의 저서 <<산가요록>>도 실존하는 기록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농서이자 요리책인 <<산가요록>>은 조리서 부분은 보존되어 있지만, 농서를 기록한 앞부분이 사라졌다고 한다. 천영미 작가는 사라진 농서 부분의 내용을 상상해 굽은 소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설정했다고 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 <용어 해설>에서는 작품 속에 언급된 역사적 사건궁중 행사’, ‘사료에 대한 간단한 설명(366~371페이지)이 실려 있다. <참고 문헌>(372페이지)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참고한 자료의 출처를 적어놓았다. 책에서 언급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을 때 참고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서평이벤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체와 폐허의 땅
조너선 메이버리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을과 시체들의 땅이 있어. 사람들은 둘 중 한쪽 세상만 인정해”(60페이지)

뒤집힌 세상, 평범한 일상이 뒤집히고 사랑하는 가족이 나를 공격하는 비극의 밤이 지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울타리 안에 마을을 만들어 살아간다. 울타리 밖 시체들의 땅은 첫 번째 밤 이후 좀비들의 땅이 되었다. 사람들은 마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시체의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외면한다. 첫 번째 밤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하고 마을을 세운 영웅 찰리는 좀비 사냥꾼이다. 찰리의 도움으로 동생 베니와 함께 살아남은 톰도 좀비를 사냥한다. 좀비가 된 아빠의 공격에서 엄마를 구하지 않고 자신만을 데리고 도망친 형을 겁쟁이라 생각했지만 15살 이후 일자리를 구해야 했기 때문에 형을 따라 좀비 사냥꾼이 된다. 형을 따라 들어간 시체의 땅에서 사냥꾼들의 추악한 모습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래, 진실은 바뀌지 않아.

하지만 진실을 보는 시선은 달라질 수 있고,

어느 쪽에서 본 진실을 믿을지 선택할 수 있어.”(72페이지)

진실을 보게 된 후 진실을 믿을지 아닐지는 결국 자신의 선택이다. 베니는 진실 앞에서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혼란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좀비 카드 속 사라진 소녀의 초상화를 본 후 베니의 삶은 완전히 뒤바뀐다. 자신들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라진 소녀를 잡기 위해 찰리 일당은 초상화가와 닉스의 엄마를 죽이고, 닉스를 납치한다. 톰과 베니는 닉스를 찾아 찰리 일당을 뒤쫓는다. 함정에 빠져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형이 죽었다 생각한 베니는 닉스를 구해 도망친다. 위기에 빠진 베니와 닉스를 사라진 소녀 라일라가 도와주고, 셋은 함께 찰리 일당에게 붙잡힌 아이들을 구할 계획을 세운다. 작전을 수행하다가 아이들을 구한 후 찰리에게 붙잡힌 순간 죽었다 생각했던 톰이 나타난다. 톰과 좀비떼를 유인한 라일라 덕분에 찰리의 캠프를 벗어났지만 아이들을 붙잡고 있는 찰리와 마주친다. 찰리에 대한 분노의 힘으로 베니는 찰리를 절벽으로 떨어트리고 아이들을 구한다. 마을로 무사히 돌아온 후 게임랜드의 존재를 알리지만 마을이 위험해질 것을 걱정한 사람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지.

진실을 알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옳은 질문을 하지 않아.”

-중략-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당연히 궁금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는 뜻이야.”(150페이지)

베니는 진실을 외면하고 진실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추악하디 추악한 진실이라 말한다. 톰은 베니를 데리고 자신들이 살았던 마을로 들어가 좀비가 된 부모님의 영결식을 함께 한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께 한 형제는 비행기가 향했던 시체의 땅 너머로 떠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들을 기다라고 있는 닉스를 만나러 간다. 톰과 베니는 저 너머의 세상을 찾아 길을 떠날 것이다. 형제의 앞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걱정도 되면서 한편으로는 기대도 된다. 저 너머의 땅에서 그들이 보게 될 것은 절망일까, 희망일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희망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광활한 침묵이 내린 시체들의 땅을 형제는 나란히 걸어갔다.(509페이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순간이 있다.

이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다.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성공과 실패가 위태롭게 갈리며

우연이나 운도 힘을 미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이 순간의 결정에 따라 삶을 누릴 권리를 얻을 수도,

빼앗길 수도 있다.’(321페이지)

시체와 폐허의 땅을 읽으면서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사는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베니가 형을 따라 좀비 사냥꾼이 된 것도, 형제가 닉스를 구하기 위해 시체의 땅으로 떠난 것도, 자신과 관계없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찰리의 캠프로 들어간 것들 모두가 베니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선택의 결과로 살아왔던 삶이 완전히 뒤바뀌게 됐지만, 베니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한다. 첫 번째 밤 이후 라일라와 갓난아기를 혼자 키워야 했었던 조지는 두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키운다. 좀비들을 피해 몇 년을 살았던 조지는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 아무 의심 없이 따라갔다 아이들을 납치당한다. 그는 아이들을 찾던 중 죽임을 당했다. 조지는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완전한 타인인 라일라와 애니를 지키고 키우는 것을 선택해 영웅이 되었다. 찰리는 첫 번째 밤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하고 안전한 마을을 만들어 사람들을 지켜낸 영웅이었다. 하지만 법이 존재하지 않는 시체들의 땅에서 그가 한 선택은 게임랜드를 만들어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 좀비와 싸우게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는 사라진 소녀 라일라를 찾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공격한다.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않고 좀비들을 모욕하고, 자신들의 이익과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 조지와 찰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조지의 선택은 사람을 살리는 선택이었고, 찰리의 선택은 사람을 죽이는 선택이었다. 톰과 베니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조지와 같이 사람을 살리는 선택을 한다. 조지와 찰리는 왜 다른 선택을 하게 됐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옳다고 생각했던 신념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신념이 타인을 공격해서 해를 입힌다면 그 신념은 옳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찰리가 옳다고 생각한 선택은 옳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자기 자신과 타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약 내가 베니와 함께 좀비가 살고 있는 땅 울타리 너머에 살고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게임랜드의 존재를 알고도 외면하는 마을 사람들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을까? 나에게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나또한 어떤 선택을 할지 확실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지금 나는 어떤 선택의 순간에 놓여 있을까? 선택의 순간 내가 옳다고 생각한 신념은 과연 진실로 옳은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서평이벤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 -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이병철 지음 / 천년의상상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국어를 생각합니다’(책 뒷표지)

모국어란 무엇일까? 우리는 모국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모두 모국어일까?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새로운 언어가 탄생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변화하는 언어의 속성에 따라 모국어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에 대해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는 이병철 작가의 경험과 언어학문적 지식을 연결해 이야기 한다. 필자 이병철은 모국어에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도록 일상에서 겪는 어휘 문제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를 썼다고 한다. ‘성장기·청년기에 겪은 언어환경’, ‘직업인으로서 겪은 언어환경’, ‘개선해야 할 언어환경’,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모국어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적고 있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 듣고 썼던 언어의 대부분은 일본어다. 6.25 전쟁이 한참이던 1951년에 태어나 전쟁을 겪은 필자는 어린 시절 일본어의 홍수 속에서 살았다. 일본의 식민지로 지내는 동안 우리 말 속에는 일본어가 뿌리내렸고, 그 언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우리말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본어를 우리말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지만, 반대로 우리말이 일본어로 바뀌어 사용되기도 했다. 전쟁 이후 먹고 사는 것이 중요했던 시절, ‘식구밥벌이는 밥을 나누어 먹고 식구를 먹여 살리는 것을 의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구보다는 가족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식구라는 단어는 조금씩 사라져간다. ‘가족결혼과 혈연으로 이루어져 한 집에 사는 집단’(34페이지)을 의미하는 말로 일본의 가조쿠의 개념에서 온 말이다. 시집간다는 의미의 혼인결혼으로 바뀐다. 지금 우리는 식구와 혼인보다는 가족과 결혼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일본말 밴또와 같은 언어는 우리말 도시락으로 바뀌어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반대로 가족결혼’, ‘야채처럼 우리말이 일본어로 바뀌기도 했다. 자주 사용했던 익숙한 단어들 중 낭만, 연애, 연인, 애인, 고백, 밀어, 실연, 비련, 애수, 추억, 고뇌, 고독, 허무, 축제···’(95페이지)등의 말이 일본인들의 인식체계에 따라 만들어진 말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주 사용했던 단어들이 한자어가 아닌 일본어와 연결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국 전쟁의 영향으로 한국과 미국의 정서가 혼합되면서 필자의 성장기 언어는 앙꼬빵, 곰보빵, 빠다빵이 공존한 일본어와 영어와 우리말, 한자어 등 여러 언어들이 뒤죽박죽 뒤섞인다.

 

1954한글 간소화 파동 소동이 일어난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글을 쉽게 쓰게 한다는 명분으로 현행 맞춤법을 폐지하고 구한말에 사용했던 이어 적기로 돌아가라는 담화를 발표한다. 이어 적기란 소리 나는 대로 적기와 비슷한 것으로 도둑을도두글, ‘잡았다자밨다로 쓰자는 것이다. 한글 관련 단체와 국민들이 강하게 반발했음에도 대통령이 이 정책을 고집하다 1955년에서야 국민이 원하는 대로 맞춤법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한다. 국립국어원과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해 맞춤법 표기법이 변경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읍니다‘~습니다, ‘짜장면자장면으로 바꾸는 정책은 한국학회의 반대를 무시하면서까지 변경되었다. 필자는 한글을 연구하는 단체나 개인이 주장하는 학설과 여러 가지 사전들의 내용은 반영되지 않고, 국립국어원과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이 한글과 우리말에 관해 모든 것을 결정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나 또한 국립국어원과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을 맹신했던 일반 국민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필자의 글을 읽은 후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의문을 갖게 됐다. 필자는 맞춤법 표기법이 독단으로 변경될 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언어에 대한 오류는 하나의 단체나 하나의 사전이 아닌 여러 연구기관과 학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고쳐나가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맞춤법만큼이나 필자가 힘을 쏟은 부분은 글다듬기, 즉 윤문이다. 필자는 기자로 재직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써야만 했었다. 연재 원고를 받아 글을 다듬는 과정을 하는 동안 필자는 맞춤법과 글다듬기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기자가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언론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글을 쓰고 글을 다듬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신입기자에게 글쓰기 방법을 알려줄 때 원고 양보다 더 쓰게 한 후 다시 줄이는 방법으로 신입 기자들의 글쓰기를 지도한다. 필자는 글다듬기를 하면서 글맛과 말맛을 알게 된 계기가 된 단어가 부둥켜안다라고 한다. ‘감싸 안다, 그러안다. 껴안다. 끌어안다. 당겨 안다. 부둥켜안다. 부여안다, 얼싸안다, 품어 안다’(137페이지) 등과 같이 다른 단어이지만 비슷한 의미를 지닌 말들이 있다. 이러한 말을 찾아 가는 과정이 필자에게 글과 말의 맛을 알게 해주었다고 한다. <‘900 어휘사회>에서는 어휘선택이 글쓰기에서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한정된 어휘만을 사용해 쓰인 글들에 대해 비판한다. 어휘가 어떤 주제에 포함될 수 있는 낱말을 묶은 것 또는 그 수효’(156페이지)라고 할 때, 우리말은 이 수효가 풍부하기 때문에 꼭 맞는 말을 골라 쓸 수 있다고 한다. 예시로 붉다는 말과 한 주제로 묶인 어휘를 157~158페이지(45가지)에 실어놓았다.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우리말 형용사와 부사는 4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 중 가리고 가려 책에서는 70(169~170페이지)를 실어 놓았다. 한 주제로 묶인 어휘가 이렇게 많다는 것도 놀랍고, 이렇게 많음에도 내가 그동안 몇 개만을 사용했다는 것도 또 놀랍다. 시대에 따라 사전에 실리는 어휘에 비해 사용하는 어휘가 줄어들고 있음에 대한 안타까움도 적고 있다. ‘20만 어휘를 가지고 있는 우리 역사가 무의미해지고 어느 순간 ‘900 어휘 사회가 될 수 있음을 걱정한다.

 

맞춤법 표기법이 너무 자주 바뀌다 보니 맞춤법을 바로 검색해 보기 위해 필자는 거금 75000원을 주고 이희승 편저 <국어대사전>을 샀다고 한다. 하지만 사전을 사고 5년 후 1988년 새로운 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이 발표되었고, 다시 1991년에 거금을 주고 바뀐 규정을 수용한 금성판 <국어대사전>을 사야만 했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사전에 모든 것을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국어사전을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는 도반이라 말하면서도, 국어사전의 문제점 중 가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일곱 가지를 적고 있다. ‘표제어가 틀렸다’, ‘틀린 풀이와 내용이 많다’, ‘어설픈 풀이가 많다’, ‘·탈자와 부적절한 어휘가 많다’, ‘사전에 없는 말이 많다’, ‘풀이말이나 예문에 나온 어휘가 표제어에는 없다’, ‘자료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몇 개의 국어사전을 예로 들면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이야기한다. <표준국어대사전> 어휘 늘리기가 50만을 넘어선지 20년이 더 지났다고 한다. 스마트 폰으로 검색해서 찾아낼 수 있는 낱말과 어휘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검색되는 모든 것들이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필자는 소중한 인력을 어원과 유래를 밝히는 데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잡학 사전이 아닌 진짜 국어사전과 방언사전을 가볍고 싸게 만들어 보급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적고 있다.

 

이어서 한국어의 뜻글자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주장과 관형격 조사 ‘~의 오·남용 사례를 적고 있다. 한국어는 표음문자와 표의문자, 두 가지를 모두 쓰는 언어다. 소리글자와 뜻글자가 합해져 한국어가 만들어졌다. 한자와 많이 달라져 한자가 되어버린 뜻글자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과 소리글자와 뜻글자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대립한다. ‘관형격 조사 ~의 오·남용에 대해 289~329페이지까지 많은 분량의 사례를 적고 있다. 관형격 조사 ‘~주격, 목적격, 보격, 부사격 조사와 보조사등등에서 문법적인 오류를 무시하고, 잘못 쓰이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는 책이나 영화 제목 등에 많이 사용되고 있어 이 말이 틀린 말인지도 알지 못했다. 이 조사가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렇게 계속 사용되다 어느 순간 ‘~가 모든 곳에 사용되는 것이 옳다는 내용이 사전에 등재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예언하듯 필자는 ‘~의 오·남용에 대한 자신의 글이 공허한 메아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 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일이라는 게 다 아주 작은 외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331페이지)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헛심 쓴 것은 아닐 것이라 적고 있다. 어떤 주장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의 목소리가 있겠지만 언어는 계속해서 변하고 또 변화한다. 지금은 틀린 언어라 말했지만 시간이 흘러 사전에 등재되면서 맞는 언어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언어에 대한 정답은 고정불변이라 말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고정불변이기도 하고, 또한 고정불변이 아닌 유동적이기도 하다고 생각하지만, 문법이 어렵고 헷갈리듯 나는 언어가 고정불변인지, 유동적인지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하지는 못하겠다. 말장난 같지만 이것이 나의 솔직한 답이다.

 

갈수록 태산. 알수록 어려운 우리말’(135페이지)

이 말이 딱 이다. 학교 다닐 때도 문법은 알면 알수록 더 어렵고 헷갈렸는데, 역시 우리말은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우리말은 알면 알수록 더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우리말 알기다.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는 에세이 형식으로 언어에 대한 필자 이병철의 경험과 생각을 적고 있지만, 그 안에 언어의 변천사를 함께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잘못된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지금도 새롭게 언어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있다. 요즘 만들어지는 신조어 중 대부분은 통역이 필요할 정도로 나에게는 어려운 언어들이다. 신조어들은 유행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사전에 새롭게 수록되기도 한다. 언어는 무한한 생명력으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거대한 생명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언어를 사용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언어를 사용한다.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언어를 사용했다면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를 읽고 난 후 나는 지금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그 언어를 통해 어떤 사유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사유한다. 생각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서평이벤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맬로리 - 새장 밖으로 나간 사람들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멜로리는 광기에 사로잡혀 살육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두 아이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살아남은 사람들 앞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