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한정림 옮김 / 정은문고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교( 工巧)롭다'는 생각지 않았거나 뜻하지 않았던 사실이나 사건을 우연히 겪을 때 쓰는 말이다. 

살면서 공교롭다고 느낄만한 경험은 많지만, 특히 어제 2024년 12월 3일은 무척이나 공교로운 일이 발생했다. 

그것도 한 권의 책 때문이다.

1979년 격동의 시기에 우리나라에 일본어 강사로 부임한 일본인 요모타 이누히코가 자신이 경험한 10.26 사태로 인한 계엄령과 다음해 초에 일본으로 귀국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논픽션 형식의 소설로 쓴 <계엄>이 사무실에 도착한 것이 바로 어제였다. 

어린 시절 서울의 유명 대학교 바로 앞에 살아서 10.26으로 계엄령이 선포되었을 때, 집 앞 대학교 정문에 짚차와 완전 무장한 군인이 눈을 번뜩이며 사주경계를 하던 모습을 본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그 시기를 일본인은 어떤 시각에서 봤는지 궁금해 이 책을 선택했는데, 채 30페이지를 보기도 전에 TV에서 뉴스속보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령 발동이 보도되었다. 

처음에는 2024년에 계엄령 발동이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아 가짜뉴스라 여겼는데, 채널을 여기저기 돌려보니 사실이었다.

서슬퍼런 계엄사 포고령 1호가 발동되고, 국회의원들은 담장을 넘어 국회로 들어가고, 헬리콥터를 타고 온 계엄군은 완전 무장한 상태로 국회로 난입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소설 <계엄>속에 묘사된 45년 전의 일이 2024년에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역사는 반복적으로 순환된다고 하는데, 이런 비극적인 역사는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계엄>의 에필로그에서 주인공은 계엄령을 겪은 후 일본으로 귀국하며 "나는 수많은 질문을 가방에 넣은 채 서울을 떠났다. 1년 전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질문이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군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이다.

국제적인 망신과 국민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채 비상 계엄령은 158분만에 끝났지만, 피가 솟는 듯한 울분을 <계엄>을 탐독하며 달래려 한다.

이 책은 공교롭게도 요즘 읽기 딱! 좋은 소설이니 말이다.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