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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70년 이야기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4년 5월
평점 :
2년 전 작고하신 이어령 교수는 국문학자이자 소설가이며,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육자 등 직함을 일일히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우리 문단과 학계 그리고 사회에 수많은 업적을 남기신 우리 시대의 석학이셨다.
내가 이분을 알게 된 것은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수필을 읽고 나서부터 이다. 그 후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여 이어령 교수의 저작을 여러 번 접했었고, 전공과는 다른 분야였지만 교양서적으로 분류되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두고 두고 읽었던 명저였다.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만큼 대단한 석학이 아흔을 얼마 앞두고 돌아가시고, 2년 후에 그와 대학 시절까지 합해 64년을 함께 하신 부인인 강인숙 교수가 두 사람의 만남부터 이별까지의 긴 세월을 정리한 <만남>을 출간하였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강인숙 교수는 남편 이어령 선생을 미화하거나 영웅화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밝히고 있다. 어디까지나 장점과 결점을 모두 갖춘 보통 사람이었지만, 죽는 날까지 창조의 붓을 놓지 않으려 애쓴 사람이었음을, 그리고 자신은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만남>에 실린 글에서 남편 이어령 선생을 지칭하는 말들은 '그', '이어령 선생', '이어령 씨' 등 철저히 객관적 입장에서 인간 이어령을 보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함경남도에서 자란 강인숙 교수가 해방 이후 월남하여 충청남도 온양, 그것도 반촌과 민촌이 따로 있는 향반문화의 고장 출신의 이어령 선생을 인연으로 만나 가정을 이루고, 서로 다른 점을 이해와 인정으로 극복하며 살아온 과정과 그 속에서 바라본 인간 이어령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보다 윗세대 그러니까 큰아버지 세대가 살아온 모습을 인식할 수 있었다.
충청도 양반 출신이지만 한옥보다는 서양식 가옥을 더 좋아하고, 한복보다는 정장을 고수한 이어령 선생을 네오필리아라며 만족을 모르는 지식욕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라 지칭한 강인숙 교수의 평가는 어쩌면 이어령 선생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가 당연할 것이다.
<만남>은 유명인과 연관된 수필이 아니라 이 자체가 평전의 좋은 자료이자 지침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한 한 가족과 인물에 대한 기록이다. 아흔이 넘은 필자의 기억력과 노력에 감탄하며 앞으로 두고두고 곱씹으며 읽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