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 정진영 소설집
정진영 지음 / 무블출판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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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허쉬>의 원작인 <침묵주의보>의 작가 정진영의 새로운 소설집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는 풍전등화에 처한 나라를 구하여 뭇 사람의 존경을 받는 영웅도 지나가다 보면 이내 눈길이 갈 정도로 멋진 주인공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할 정도로 힘겹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집은 지극히 사실적인 소설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전염병이 전 세계를 할퀴고 몇 년간 그로인해 일상이 멈춰버린 암울한 시기를 지나니, 경기침체와 국제 분쟁, 높은 물가와 실업률, 고령화 사회와 저출산, 세대 간의 갈등 등 우울함으로 가득한 2024년. 오늘의 현실을 이 소설집은 여러 각도에서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표제작인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의 주인공은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다. 어린 시절 동네 시끄럽게 리코오더를 부는 퇴직 교장 선생님에게 만파식적 이야기를 듣고, <삼국사기>를 읽었다가 헌책방 주인이 선물로 준 <삼국유사>를 읽고 역사에 매료된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사학과에 진학한다. 그리고 이름이 같은 동기에 커플이 되어 오래 사귀지만 기약없는 공시생인 그의 암담한 미래에 지쳐 그녀는 선을 본 안과의사에게 시집간다. 하지만 그녀는 삼 년 후 간암으로 죽고, 갑작스런 부고를 받은 주인공은 친구와 함께 장례식장으로 간다. 그 와중에 학창시절에 배운 <처용가>를 떠올리며 전염병에 괴로워하는 아내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처연하게 노래를 부른 '처용'에 감정이입한 그는 장례식장에서 술에 취해 '희망가'를 부르다 전 여친의 남편에게 맞는다. 친구의 부축을 받아 장례식장을 나온 그는 처용을 떠올린다.

그리고 재난지원금을 이용해 어머니와 오랜 만에 식사를 하려 하는 실업자의 이야기인 <선물>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감정이입이 많이 되는 작품은 당근마켓에서 함께 술 마실 사람을 찾아 술자리를 같이 하게 된 두 40대 가장의 이야기인 <징검다리>였다. 딸에게 선물하기 위해 당근마켓에서 파는 아이폰이 목업폰인지 몰라 엉뚱한 가격을 주고 산 주인공과 폐암에 걸린 사실을 딸에게 이야기하지 못해 애태워하는 또 다른 40대 가장의 이야기는 단막 드라마로 꾸며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외에도 학교 폭력과 졸업 후에도 이어진 집요한 괴롭힘으로 인해 히키코모리로 사는 동생을 20년 넘게 뒤바라지하다가 결국 홀로서기에 나서는 형의 이야기를 다룬 <네머엔딩스토리>와 저축보다 훨씬 더 뛰어버린 집값 때문에 코인으로 이를 만회하려다 더욱 내집 마련이 어려워진 주인공의 이야기인 <네버엔딩스토리>는 지극히 현실적인 작품이고,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된 뇌만 남은 사람의 미래 이야기 <시간을 되돌리면> 둘리의 오마주인 <눈먼 자들의 우주>는 작가가 이야기꾼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밖의 작품들도 한결같은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2024년을 대표하는 단편 소설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이 작가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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