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안 푸른도서관 86
이근정 지음 / 푸른책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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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중고생의 국어를 가르치면서 어느 부분 하나 쉬운 것이 없지만 특히 글쓰기, 그 중에서도 시나 소설의 창작을 가르칠 때는 난감하기만 하다. 요즘 아이들이 활자 세대가 아닌 영상 세대이다 보니 시를 교과서에서만 배웠고, 작품을 이해하기 보다는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중요 내용을 외우는 공부를 하다보니 작품에 공감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그러다 청소년시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근정 시인의 <내 안의 안>이라는 시집은 청소년이 어떤 시를 썼을까 하는 호기심에 읽게 된 시집이었다.

얇은 시집이지만 양장본으로 제본되어 고급스러운 이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되었다. 목차를 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시는 두 걸음 밖의 세상이란 부제가 붙은 2부의 첫 번째 작품인 <허락된 시간은 15>였다.

 

고양이에 대한 짧은 영상을 본다면

털을 세우고 하악 위협하며

펀치를 날리는 게 좋겠어.

15초 만에 모든 것이 완벽해질 순 없으니까.

- 허락된 시간은 15

 

이 짧은 시가 무엇을 뜻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틱톡이나 숏츠같은 짧은 영상을 의미함을 알 수 있었다. 불과 15초라는 짧은 시간에 시청자의 눈길을 끌려면 자극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고양이가 털을 세우고 하악 위협하며/ 펀치를 날리는영상같은 게 나오지 않을까? ‘모든 것이 완벽해질 순 없으니까말이다.

 

뷔페에서는 성인 요금을 받는 나이

숙소에서는 침대 하나를 따로 쓰라는 나이

하지만 인스타에서는 받아 주지 않는 나이

앱을 까는데 허락을 받아도

쪽팔릴지언정 이상할 건 없는 나이

지하철을 타고 서울 이쪽에서 저쪽까지

혼자 다닐 수 있지만

조용히 위치 추적을 당하는 나이

안 된다. 안 된다 잔소리 끝에

씨발 어쩌라고, 나더러 어쩌라고 욕을 붙이면

이해와 비난을 동시에 받는 나이

- 13

 

이 시를 읽으며 머지 않아 13살이 될 딸아이가 연상되었다. 그리고 그 또래들이 겪을 만한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 과연 청소년 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집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작가 소개에서 이 시집을 지은 이근정 시인이 40대 중반의 아줌마(?)라는 사실에 놀랍고도 속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청소년의 심정을 그리도 잘 이해하고, 시로 형상화했을까 라고 감탄했다.




중고등학생이 귀여워 보이는 시기를 살고 있다는 시인은 그만큼 청소년들을 많이 관찰하고, 그들에 동화되었기 때문에 이런 시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비록 청소년이 지은 시는 아니지만 청소년들의 고민과 정서가 오롯이 담긴 <내 안의 안>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이다. 곱씹어 볼수록 새로운 맛이 나는 약초와도 같은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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