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보게 하소서
노을진 지음 / 좋은땅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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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보다 조금 어린 같은 또래의 유명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담담히 자신의 심정을 기자들에게 밝히던 그가 예쁜 아내와 사랑스러운 두 아들을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솔직히 그가 내가 가장 좋아하던 배우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가 출연한 작품 중 재미있게 본 작품도 많고, 어떤 배역을 맡던 찰떡같이 소화해내던 배우였기 때문에 대중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스타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그가 몇달 전부터 떠들썩했던 마약 사건에 연루되어 세 번이나 경찰에 소환되어 강도높은 조사를 받고, 그때마다 포토라인에 서서 참담한 심경을 밝혀야만 했다. 전과 6범의 화류계 여성의 진술에만 의존한 경찰의 수사는 범죄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고, 수사 관련 내용은 계속 유출되어 수많은 입구설에 오르내려야만 했다. 거기다 이른바 녹취록까지 공개되어 마약 혐의는 불륜으로 옮겨갔고 그는 아마 형언할 수 없는 모멸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자극적인 소재를 찾는 언론의 이슈몰이와 돈 벌이에 혈안이 된 유튜버, 그리고 무능한 경찰이 한 가정의 가장이자 유명 스타인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사회적 살인을 당한 것이다.


그의 처지에 울분을 느끼고, 그의 죽음을 애도할 때 읽게된 노을진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빛을 보게 하소서> 중 <날카로운 입술>이란 시가 유독 마음에 와닿았다. 마치 그의 죽음을 예상이라도 한 듯 화자가 겪는 마음의 상처가 유명을 달리한 배우에 오버랩되어 그가 겪었을 심적인 고통과 마음의 상처가 느껴진다.


날카로운 입술


눈에 거슬리는

그의 모든 언행들이 나를 향해 휘몰아친다

마치 집어삼킬 듯한 격한 언행이 

온갖 날카로운 소리로

나의 귓속을 끝없이 울린다


마음처럼 쉽지 않은

불길 같은 소리가 나의 심장을 뛰게 하고

나의 뼛속에 사무쳐 있다

선택의 기로에 서서

사납고 억눌린 입술로 말이다


일그러진 얼굴로

그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나의 입술은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이 되고

점점 이성을 잃어가는

나의 영혼은 꺼져만 간다

- p. 42



만약 그의 생전에 이 시집을 전달할 기회가 있었다면 <수렁에서 나와야>라는 시를 추천해주고 싶다. 어려운 상징이나 함축이 없이 직설적인 언어로 화자는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격려로 용기를 주고 있다.


수렁에서 나와야


수렁에 빠져 있는 당신

그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가

제발 힘을 잃지 말아라

다 내가 마음먹기 달려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라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아니하여도

내가 내 스스로 일어나라

조금씩 걷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라

있는 힘을 다해 앞으로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수렁에서

어쩌면 계속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곳을 나와야 한다

- p. 78


노을진의 시집 <빛을 보게 하소서>는 표지에서 밝힌 것처럼 독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길을 안내하기 위한 76편의 시를 모았다. 어려운 상징이나 함축처럼 난해한 내용이 없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상적인 언어로 쓰여 있어 문학성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시 모음임은 분명하다. 마음이 아파서 위로가 필요한 현대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집이다.

어제 유명을 달리한 배우 이선균씨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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