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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 -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며 평생을 보낸 그녀들의 내밀한 역사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왕의 여자
김종성 지음/역사의 아침(2011.6.27)
경복궁, 경희궁, 운현궁, 창경궁, 창덕궁, 덕수궁(경운궁)... 조선시대의 궁궐에 갈 때마다 느낀 거지만 참으로 검박하고 생각보다는 넓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 칸 방도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면서 이곳에서만 생활하던 여인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란 궁금증을 가지곤 했었다.
김종성의 <왕의 여자>는 이렇게 정해진 범위 내에서 생활해야만 했던 여인의 삶의 현장을 꼼꼼히 더듬고 있다. 그가 머리글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들의 삶을 장희빈의 시각과 궤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즉 궁녀-후궁-왕후 순으로 하나씩 소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장희빈은 누구보다도 이 모든 영역을 체득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격정적이고 역동적으로 궁궐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궁녀는 거의 공노비 출신으로 채워졌다는 사실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 숫자가 실제로는 많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만큼 왕과 주변의 인물들에 의한 역사의 휘말림 속에서 궁녀의 삶은 왜곡되고 잘못 전달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궁녀의 조직과 품계, 궁녀의 역할이 흥미로운 분야였다. 지밀, 침방, 수방, 세수간, 생과방, 소주방, 세답방, 감찰궁녀, 보모상궁, 승은상궁, 색장나인, 본방나인 등에 대해 일일이 자세한 얘기를 전해준다. 더욱 흥미로웠던 부분은, 궁녀와 왕의 만남에 대한 얘기였는데,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는 그 만남 자체가 상당히 어려웠다는 점이고, 궁녀의 적극적인 노력, 왕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한 만남 등을 다룸으로써 우리가 흔히 드라마에서 보아 왔던 인식들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궁녀는 동성애자가 많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119쪽에서 얻을 수 있다.
극소수의 궁녀들 사이에서만 동성애가 벌어진 것 같지는 않다. 조선 후기의 <영조실록>뿐 아니라 조선 전기의 <연산군일기>에서도 궁녀들의 동성애가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거론된 것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궁녀 중에서도 정치에 개입을 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도 있었다. 김개시는 광해군 때의 막후 실력자였다.
그가 막강한 권력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광해군이 세자였을 때부터 광해군의 신임을 얻어 오랫동안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또 광해군이 즉위한 후에는 왕후의 배려 하에 광해군과 잠자리를 함께 하는 승은상궁이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후궁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권력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막후에서 조종하는 데에 더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유사 궁녀에 대한 얘기도 흥미로웠다. 무수리, 비자, 방자, 의녀가 그들인데, 특히 방자는 방아이, 각방서리, 각심이로도 불렸는데 ‘방아이’를 뜻하며, ‘말단 일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136쪽)
후궁에 대해서도 매우 흥미로운 통계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역대 후궁의 총 수는 몇 명이었을까? 이것에 대한 답은 101명이다. 그러니까 왕 한 명당 3.7명의 후궁을 둔 셈이다.
후궁을 가장 많이 둔 임금은 성종이었다. 후궁이 전혀 없었던 왕도 있었는데 단종, 현종, 경종, 순종이 그들이다. 최초의 후궁은 태조 때 정경옹주였던 류준이었고, 최후의 후궁은 덕혜옹주를 낳은 고종 때의 양귀인이다. 왕후로 승격한 후궁도 있었는데,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 성종 때의 정현왕후 윤씨, 중종의 첫 번째 왕후인 장경왕후, 그리고 숙종 때의 장희빈.
후궁의 성씨로는 김씨, 이씨, 박씨 순서로 많았는데, 김씨는 절대로 왕후가 될 수 없었다니 참으로 신기하다. 김씨의 금(金)과 왕의 성인 이(李)에 있는 나무 목(木)이 서로 상극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이씨가 후궁이 됐다는 사실도 의아하다.
후궁 선발 과정에서 미모는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사실도 새롭다.
미모는 후궁 선정에서 그다지 중요한 기준이 아니었다. 왕들 중 몇몇이 여인의 미모에 반해 후궁을 선발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의 왕들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내면이나 능력 등을 보고 후궁을 선발했다. 장희빈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지나치게 예쁜 여성은 왕실 여인들은 물론 조정 관료들의 견제 때문에 후궁의 반열에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188쪽)
왕후에 대한 통계도 참 재미있었다. 왕후를 많이 둔 왕은 누구였을까? 역대 왕후의 총 수는? 왕후를 한 명도 안 둔 왕도 있었다. 누굴까? 최초 및 최후의 왕후는? 쫓겨난 왕후는? 왕후의 성씨는? 등등 정말 알고 싶지 않은가?
왕후가 되는 길도 네 가지였다. 외부선정, 내부승진, 자동승격, 복합형 등. 그리고 왕후가 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예상을 깨고 금혼령이 내려지면, 사가에서는 오히려 왕후가 되는 걸 꺼려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얼마나 힘들고 걷기 어려운 길이었으면 그랬을까? 이해되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역시 왕후도 외모는 크게 중요하게 다뤄지는 항목이 아니었다. 그만큼 왕후의 정치적 역할이 요즘의 영부인보다도 훨씬 크고 막강했다는 점이 놀라웠고, 얼마나 힘든 길이었는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침실에서의 생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격하고 공적이었던 공간이라는 점이다.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는 공감을 가지게 하는 부분이다. 왕과 왕후는 그들만의 공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279쪽)
김종성의 <왕의 여자>는 참으로 많은 앎을 선사해 주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깨기도 하고, 때로는 공감하게도 만든다.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전개는 다분히 엄청난 자료 수집의 노력 덕이 아닌가 싶다. 지은이 덕분에 나도 한때나마 궁궐 속을 함께 누볐다는 행복감에 젖기도 했지만, 이제는 사라진 궁궐의 삶을, 여유롭게 더듬어가며 그냥 빈 궁궐을 걷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왕의 여자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