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백동수 - 조선 최고의
이수광 지음 / 미루북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조선 최고의 무사 백동수








이수광 지음/ 미루북스(2011. 7. 4)



무사 백동수의 닉네임은 야뇌(野餒)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이덕무가 붙여준 이름이다. 뇌(餒)란 굶주린다는 뜻이므로 야뇌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들판에서 굶주린다’는 뜻이다.

백동수의 추천으로 입시를 한 이덕무에게 백동수에 대해 묻자,



“그는 속세 사람과 다릅니다. 천하를 주유하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가 야뇌입니다.”

정조가 재차 야뇌가 무슨 말이냐고 묻자,

“얼굴이 순고하고 소박하며 의복이 시속을 따르지 아니하니 야인이라고, 말투가 질박하고 성실하며 행동거지가 시속을 따르지 아니하니 뇌인이라고 합니다.”

라고 이덕무는 대답한다. (이하 270쪽)



이 닉네임은 백동수의 삶과 삶에 임하는 자세를 그대로 나타낸다.

포천 출생으로서 비인 현감과 박천 군수를 지낸 백동수는 서자 출신이다. 그의 자는 영숙이며, 성대중에 의할 것 같으면 그는 정조 시대의 ‘기남자’였다. 참된 우정과 의리를 보여준 무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상하 귀천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과 교유하였으며, 사나이로서의 의리와 진한 우정을 보여준 무인이었다. 그만큼 그는 품성이 호방하였다. 아호도 잠재(천천히 나아간다), 야뇌, 인재(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등 몇 개가 있지만 그는 인재로 불리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이덕무와는 처남 매부지간이었고, 이덕무와 박제가를 박지원에게 소개한 이도 그였다. 그는 1771년 무과에 급제한 후 박지원과 함께 묘향산에서부터 가야산에 이르는 대장정에 오르고, 박지원에게 연암골에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박지원의 호는 이렇게 해서 얻어진 것이라고 한다. 박지원은 노론 출신 집안으로서 당시의 집권층이었지만 서얼출신들과의 교유를 서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백동수와도 상당한 교유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백동수가 활동했던 시대는 정조의 시대였다. 이 점은 백동수가 ‘백탑파’의 일원으로서 많은 지식인들과 교유할 수 있는 최고의 분위기를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각사지 10층석탑(백탑)을 중심으로 모여 살던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 박지원 등은 홍대용을 만나 더욱 학문적 외연이 확장될 수 있었고, 홍국영, 정약용, 김정희를 만나 실제로 활발하게 ‘앙가주망’적 경지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서자 출신의 꿈은 1800년의 정조 붕어와 함께 그 세를 잃고 말았다. 정조 집권 시기는 조선 후기의 역사 속에서 가장 커다란 기회와 아쉬움의 영역으로 남고 말았다.



백동수는 정조에 의해 장용영의 창검 초관으로 임명되었고, 장용위는 창덕궁 춘당대에 있는 정조의 최정예부대였던 것이므로, 그가 얼마나 정조의 신임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이 시기에 정조의 명에 의해 이덕무와 유득공, 백동수는 함께 그림으로 설명한 군사훈련서인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게 된다. 일,중,조선의 지상 무예 18가지와 마상 무예 6가지 등 무예 24반을 총망라한 이 책은 그간의 무술, 무예를 통합한 귀중한 사료이다.








백동수의 사랑방은 ‘초어정’(나무꾼과 어부처럼 살겠다는 뜻)이라 부른다. 이는 박제가가 15세 때 쓴 현판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선 무사의 계보는 김체건, 김광택, 백동수로 이어진다. 김체건은 조선 무예의 조사라 할 수 있는 인물이고, 김광택은 그의 아들로 금위영 교련관이었다. 김광택의 제자 백동수는 정조의 상무정신, 탕평책과 함께 정조를 가까이에서 보필한 무인이었다.



백동수에 대해서는 그간 김탁환의 소설들에서 간혹 보였었다. 방각본 살인사건,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 같은 책에서 ‘백탑파’를 다루면서 백동수도 함께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백동수를 다룬 창작물은 이재헌이 쓰고 홍기우가 그린 만화 “야뇌 백동수”가 최초가 아닌가 한다.

물론 만화와 소설은 본질적으로 그 다루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만화가 무협의 날카로운 칼자국에 초점을 맞춘다면, 소설은 허구적 장치 속에 흥미가 될 만한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하여 보여준다. 따라서 이수광의 “무사 백동수”는 최초 여부를 떠나 그 나름대로의 작품으로서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3인칭 객관적 시점의 완벽한 구사랄지 빠른 사건 전개에 따른 숨막히는 혈전은 아직도 선혈이 낭자한 살상 현장에 서 있는 듯한 간지럼을 남겨 놓고 있다.



게다가 팩션으로서의 호방한 터치는 생소한 무협 용어와 함께 더욱 그 맛깔스러움을 더한다. 백동수의 가는 길과 영조-사도세자-정조가 가는 길, 그리고 노론이 가는 길, 그 속에 수많은 갈등과 질곡을 숨기고 살아야만 했던 서얼 출신들, 그들의 이상과 야망, 그리고 현실이 빠른만큼 숨막이고 어지럽게 펼쳐진다.



드라마도 따라잡지 못할 사랑이야기는 더한층 나의 취기를 북돋은 듯했다. 일본 여무사 하향과의 비무, 그리고 그녀의 패배가 주는 의미, 매화계 나모란의 쌍검, 그리고 월도의 여인 유지연 등 출연하는 여자들마다 각기 다른 모습과 개성으로 그들만의 무기를 들고 그들은 화합하여 춤을 추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절대적 경지의 무예였다. 승부가 나든 안 나든 그것은 칼을 쥔 자만의 세계를 고스란히 옮겨다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료 수집과 해박한 역사 지식의 끝모를 경지를 계속 펼치는 이수광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청파계의 살의도, 수표교 아래의 거지 광문도 비록 지금은 조연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분명 정조의 개혁에의 꿈 프로젝트 범주 안에서 놀았던 주류였고 꽤 괜찮은 출연자였다.



서슬 퍼런 칼자국이 매 페이지마다 그어져 있는 걸 보면서 이젠 놀라지 않는다. 매운 더위도 야뇌 백동수와 함께 샤샤샥 소리없이 스러졌으면 좋겠다.

어디선가 백동수의 호쾌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야마모토 무사시, 자네도 나오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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