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 - 문자옥文字獄, 글 한 줄에 발목 잡힌 중국 지식인들의 역사
왕예린 지음, 이지은 옮김 / 애플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 문자

왕예린 지음/ 애플북스(2010. 11.19)

문자나 글 때문에 화를 당하는 일을 ‘문자옥(文字獄)’이라 한다. 루쉰은 문자옥의 속성을 시로 표현하였다.

글을 쓰다 글의 덫에 빠지고, 세상에 저항하다 세속 인정과도 멀어지네
계속 헐뜯으면 뼈도 녹으니, 종이 위 소리만 공허하네.

중국에서 문자옥이 처음 등장한 것은 춘추시대 제나라 장공 때의 일이다. 문자옥의 피해자인 문인들은 비록 붓밖에 가진 것 없는 나약한 처지지만 죽음의 공포에 맞선 채 붓을 굽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광폭하고 무자비한 문자옥도 역사의 진실과 그것을 지키려는 문인들의 정신을 영원히 가둘 수는 없었다.(7쪽)

이 책은 방대한 중국 역사를 보기 쉽게 정리하고 자칫 어렵게 여겨질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을 재미있게 풀어 쓴 책이다. 또한 통사적 체계 속에서 각 시대를 대표할 만한 의미 있는 문자옥들의 배경과 전개과정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가고 있다.

총 서른 가지의 에피소드 중에서 몇 가지만 간추려 본다. 먼저 진시황 때의 문자옥 사건.
진시황 때의 문자옥인 분서갱유는 악명이 높다. 사실 분서는 이사가 일으켰다. 사마천은 이사에 대한 평을 이렇게 내리고 있다.

이사와 주공, 소공 모두 나라를 세우는 데 큰 힘을 쓴 중신이다. 하지만 주공과 소공은 모
두 겸손하고 자신보다는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더 컸지만 이사는 국록과 관직을 탐했 다.(17쪽)

분서의 목적은 사상의 통제, 갱유의 목적은 왕권 수호였다. 이 끔직한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귀중한 자료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분서갱유를 일으킨 자들의 목적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두 번째로 나의 관심을 끈 문자옥은 주원장이 일으킨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일개 한량에 불과했다. 황제에 오른 주원장은 자신이 힘들게 닦은 기반이 오래 갈 수 있도록 네 가지의 조치를 취한다. 중앙집권제도, 지식인 탄압, 공신 제거, 지방 관리 통제 등이다.

뒤늦게 학문을 접한 주원장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자신의 얕은 지식을 척도로 삼아 수많은 인재를 사지로 몰아넣었다. 주원장의 무지로 인한 오해가 애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사건도 많았다. 그에 대한 칭찬도 그에게는 도전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능멸로 해석하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원장의 이런 행동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해석도 있다. 재능보다는 출신에 연연하던 당시의 지식인들을 향한 복수가 아니었을까?

끝으로 중국 역사상 가장 감옥을 많이 드나든 사람으로 꼽히는 이몽양의 경우를 보자. 그는 혈기 왕성하게도 국구인 장학령의 폭정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무종 때에도 이몽양은 유근의 죄악을 물어야 한다는 상주문을 쓰다가 비밀이 새어나가고 말았는데 강해라는 친구 덕분에 출옥할 수 있었다.

중국 역사를 통제하는 기능으로 작용했던 ‘문자옥’의 기록. 황제의 권력과 지식인의 진실 사이에서의 줄다리기 싸움은 그래서 늘 이야깃거리가 된다. 왕예린의 <황제의 영혼을 훔친 금지 문자>는 그래서 중국 지식인들의 역사이자 인문학적 저항의 기록이며 정치 권력 구도를 미리 보여주는 훌륭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거센 빗줄기도 그치자 거친 폭염이 밀려왔다. 역사는 이렇게 왔다가 가는 계절과 같은 것일까? 한때의 권력도, 엄청난 용기도, 죽음도 불사한 정의도 이제는 한풀 꺾인 폭염 아래의 한갓 풀잎에 불과할 뿐인가. 3천 년 전에도 트위터가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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