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최민자 지음 / 연암서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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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수필

 

최민자/연암서가(2012.3.30)

 

우리는 가끔 문을 열 때가 있다. 그 문이 눈앞에 보이는 물질로 만들어진 문일 수도 있고 눈 속에 잡혀 있는 문일 수도 있다.

 

최민자의 <손바닥 수필>은 나에게는 잔잔한 꽃과 나무와 향기로 이루어진 숲으로 난 문이며, 거침없는 바람이 만들어낸 해탈의 문 같기도 하다.

 

우리는 간혹 곱게 나이가 든 한 여자를 본다. 명동 거리에서건 길을 걷다가든 여행을 하다가. 여기의 작은 수필들은 곱게 늙은 한 여자의 작은 숨소리를 담았다. 곱디고운 목소리로 단장한 곰삭은 여인네의 작은 숨결. 그리고 낮은 목소리와 차분한 서정을.

 

그리하여 우리는 본다. 바람이 빚어낸 빛깔과 파도소리가 일구어낸 붉은 빛깔을.

제주 바다도 좋고 어디 시선이 가는 작은 골목이어도 좋다.

 

단지 시선이 머문 곳에는 언어로 변주된 사색의 아름다운 빗줄기가 놓이고, 옴짝달짝 못하게 하진 않지만 잔잔한 감동이 주는 파문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에는 참으로 곱고도 도서관에 숨어 있을 만한 예쁜 단어들이 참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이 아닐 지라도, 어느 퇴역 수필가의 제자스럽게 그는 한 톨 한 톨을 촘촘히 박아가는 재봉틀 달인 같기도 하다. 물론 언어의 달인이라는 말이다.

 

우듬지, 사특한, 윤슬, 갈모산방, 옥호, 방퉁이, 째마리, 물꽃, 물테, 집장, 브로슈어, 헝겊별, 메나리조, 발발성, 부름켜, 에움길, 빈지문, 자우룩이, 그루잠, 설환조, 눈새, 아마득하게, 계면조의 울음, 사시랑이 육신, 적바림해 둔 글귀들, 거스러미, 빈탕, 알심이 없는, 풀쐐기, 수크령, 막귀, 한뎃잠, 모노크롬의 비트, 기어의 죄, 중인환시리, 신닥다리의 세상, 슬로빙, 생게망게한, 어리보기도, 영혼의 몸피, 사개, 곰비임비,

 

정말 와닿은 단어만 해도 무궁무진하며 언어 구사가 엄청 자연스럽다. 따라서 그는 이미 시인이고 언어의 마술사의 경지를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시인의 경지를 펼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또 있다.

에릭 사티의 ‘그노시엔느’에서 보이는 클래식과 같은 음악에 대한 조예, 라이혼트 메스너의 고비사막 이야기에서 보이는 교양미, 그리고 수많은 풀이름과 꽃이름, 나무이름.......

 

식물을 모르면 시인이 아닐진저. 비단 풀만 아니라 꽃과 나무까지도. 그것만이 아니다. 바람과 파도, 그 안에서 움직이는 물체까지에도 의미를 담아내는 솜씨. 거기에 그녀 특유의 사유의 잔상들을 달아 놓는다.

 

마느래 얘기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드는 느낌을 받고,

 

물을 볼 때는 가장자리를 먼저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중심으로, 중심으로 몰려들지만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야 동서남북이 몸으로 체감되는 법. 타종이 끝난 뒤 오래오래 그윽한 종소리처럼, 삶도 그렇게 느리게 또 둥글게 저물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117쪽)

 

에서는 삶의 희열을 등진 고요한 늦깎이의 혜안을,

 

눈이 아무리 밝아도 귀가 어두우면 윤똑똑이다.

매화 향기 같이 그윽한 것들은 귀로 들어야 제격이라는 말이다. “눈은 리얼리스트고 귀는 시인”이라는 아치볼드 매클리시의 말대로 이목구비 중 가장 정서적인 기관도 귀가 아닐까.(122쪽)

 

에서는 우리가 쉽게 흘려버릴 수 있는 요소에게 귀한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

 

다시 그녀는 트리움비라트의 ‘For You'를 듣고 미샤 마이스키와 클라라 하스킬을 생각한다. 나는 가히 그녀의 음악적 교양에 두 손을 들고 만다. 사실 내가 잘 아는 음악도 나오지만, 내가 모르는 음악에 대해 운운하는 사람을 보면 경이로움과 함께 존경심마저 들곤 한다.

 

다시 그녀가 시인이 이유,

 

지푸라기를 먹고 우유를 짜내는 소나, 간선도로 소음 속에서 순노랑 봄빛을 길어 올리는 개나리처럼 목숨의 저 안쪽, 컴컴한 지층을 탐사하여 반짝이는 별가루를 채탄해내는 시인들이야말로 내게는 경이로운 마술사들이다.

 

한 끼 밥값보다 헐한 시집을 팔아 수줍은 영혼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은 제각각의 언어로 발성하는 새들보다 더 다양한 운지법으로 세상을 클릭한다.(124쪽)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처럼 시인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그녀의 내면에는 시의 잔물결이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또 그녀가 건드리는 운명론에도 손을 들어주고 싶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예감하고 계획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나다니엘 호손의 <데이비드 스완>처럼, 운명도 가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저 혼자 슬쩍 다녀가기도 한다.(127쪽)

 

그녀의 철학에 동감하는 대목은 또 있다.

 

그대가 먼저 풀어지고 허물어져야 남의 속도 편안하게 풀어줄 수 있다고.(131쪽)

 

이렇게 죽에 대해 얘기할 때면 ‘죽’이 마치 나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니, 나도 참 많이 필자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하여 끝내 나는 형광펜을 찾아 주옥같은 글귀에 대고 긋기 시작한다. 아마도 보석보다도 찬란한 생각의 연줄들을 따라가다 보니 다시금 되새기며 읽고 싶다는 은연중의 모색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아직도 되새김질하고 싶은 문장들이 떠오른다.

 

지구열차의 좌석은 역방향인가.

강물에 안긴 달이 바람에 들썩인다.

달은 가장 오래된 서버, 눈으로 클릭하는 첨단의 윈도우이다.(145쪽)

사랑은 교통사고와 같다.

교통사고는 나다녀야 일어나지만 사랑은 앉은 자리에서도 피할 수 없다. 단지 옆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벼락치듯 끌려드는 속수무책의 운명은 접촉사고 아닌 천재지변에 가깝다.(149쪽)

골목도 사람처럼 병들고 늙는다.(154쪽)

하나의 존재가 무너져내리는 소리는 그렇게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날카롭거나 심오하지 않았고 무슨 울림 같은 것도 남기지 않았다.

꽃잎은 꽃잎의 무게로, 밤송이는 밤송이의 무게로,

존재는 다 제각각의 무게로 허공을 흔들며 내려앉는다.(156쪽)

 

이것이 시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것은 시고 이것은 인생이다.

그리고 나는 수많은 교양 덩어리들을 땄다. 하피즈의 <네 개의 단어만 아는 신>을 알게 되었고, ‘인체야말로 최상의 악기’라고 한 클리셰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신영옥과 카틀레야를 알게 되었고, “바다가 천개나 되는 젖가슴으로 태양을 향해 솟아오르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라고 니체가 말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백의 <장진주>가 “황하의 근원이 하늘에 있고, 바다에 이르러 다시 오지 못한다.”로 시작함을 알았다. 나의 짧은 교양이 스스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 ‘서리 맞은 가을 잎이 이월 꽃보다 더 붉다’는 말도 있었구나!

 

스스로 명멸하는 늙은 자는 아무에게도 애원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다가 그냥 그렇게 지는가 보다. 교양도 철학도 문학도 모두 부질없는 것. 그저 제주에 부는 바람 같은 존재, 제주의 둘레길을 돌아봐야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주 바다에 부는 바람만이 그 뜻을 알 듯이, 그녀는 하나의 상징만을 건져, 우리에게 빗대고 있을 뿐이다. 이 물극즉반의 논리를 알기까지 그녀는 무수히 많은 잔바람들을 맞아온 것일까?

 

나는 어느 새 트리움비라트의 ‘For You'를 검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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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10년 독서 1 - 포스코의 IDEA 서재 미래 10년 독서 1
고두현 지음 / 도어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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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10년 독서

 

고두현 지음(2011.11.28/도어즈Biz)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려면 정확하고 합리적인 계산과 함께 인문사회과학적 견해마저 융합한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 그만큼 예측이 어렵고 또 불확실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10년 후의 미래를 예측하기조차도 버거울 정도로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시인 고두현은 참 독특한 저자다. 경제신문사에서 문화부장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때는 지극히 심도 있는 인문적 교양의 세계를 펼치다가도, 어쩔 때는 극히 경영학적, 경제학적인 전문 용어를 앞세워서 사회과학적 미래를 조망한다.

 

이미 중국, 일본, 미국, 유럽, 러시아, 인도 등의 거대 국가들의 경합이 시작됐고 엄청나게 이기적인 방법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들 틈에 끼어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이러할 때 우리에게 저자는 이런 거대한 바위 틈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 방법은 그러나 쉽게 주지 않는다. 반드시 추천 도서를 완독하고 현장에 적용해야만 가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우리는 북극해를 놓고 또 한 판의 경제 전쟁을 치러야 한다. 우주도 그렇고 남극도 그러긴 마찬 가지지만 우선 급한 건 북극해다. 이쪽으로의 항로가 각광 받기 시작했고, 북극해의 가치가 그만큼 상대적으로 빠르게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우리는 쇄빙선을 끌고 세계의 새로운 전쟁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글러벌 사회의 중심점에 놓여 있다. 최근의 K-POP의 열기도 그렇고, 삼성, LG 등의 글로벌화도 그렇고, 한글이나 한복, 한약, 한식 등 우리가 나아가려고 하는 시대를 너머 이미 세계가 우리를 연구하고 우리를 까발리고 있다. 우리는 다 보여진 알몸인 상태로 여전히 몸치를 보여줄 것인가?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대한 시원한 답변을 하고 있다. 해박한 사회과학적 지식과 경영, 경제학적 데이터의 꾸준한 천착 속에서 우리는 책을 읽어나가는 잠시나마 미래에 대한 열망과 불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을 추슬러야 함을 느끼곤 한다.

 

이제 우리는 <포스코> 신화가 보여준 것처럼, 그들이 남긴 전략과 방침을 더욱 현대화하여, 미래의 10년을 준비해야 한다. 아니 더 나아가서 문화적 지배 관계를 털어버리고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문화적 영양을 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미래의 즐거운 날은 오늘의 아이디어에 달려 있지 않을까?

 

고두현의 또 다른 수작을 기대해 보며 춥기만 한 날씨에도 꾸준히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있을 대한민국의 모든 세일즈맨들에게 ‘파이팅’을 제안하고 싶다. 미래는 금방 내 눈 앞에 펼쳐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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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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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연암서가(2011. 10. 25)

 

 

그를 생각하면 책만 보는 바보(看書痴) 검서관 이덕무가 생각난다. 책 하나를 허투루 읽지 않는달지 세계의 어떤 구석에 있는 저자라도, 그리고 웬만해선 모두가 인정하는 저자의 견해조차도 그의 스펙트럼 앞에서는 갈기갈기 찢겨 버린다.

 

‘비판적 독서’는 참으로 많이 쓰이는 용어다. 문장에 드러난 겉 의미뿐 아니라 속 내용까지도 속속들이 파헤쳐서, 자기 나름의 판단으로 읽는 지극히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책읽기다.

그는 ‘비판적 독서’의 전형을 보여주는 참된 지식인이었다.

 

그는 아마도 ‘아르카디아’에 가 있을 것이다. 아르카디아는 자연적 풍요의 개념에 도덕적 의미가 첨가된 이상사회다.(375쪽)

 

책을 읽는 내내 서문을 대신한 아내의 헌사가 따라다녔다. 눈물을 보이며 시작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그렇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의 책을 읽고 싶었다는 생각이 났다.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가 그것이다. 이제 그를 알았으니 기회가 되면 꼭 읽어봐야겠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미러 게임 같은 것이 아닐까?

서평을 하기 위해 읽는 책이 책을 읽고 쓴 서평이라니. 거울 속의 실체를 보기 위해 거울을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그 반복되는 수많은 비침은 반복적으로 투영하는 생리를 보여주는 가운데, 알 수도 있을 법한, 도저히 모를 법한, 왔다리 갔다리 하는 속성 속에서 나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에움길’ ‘어섯눈’ ‘헌걸찬’ ‘고갱이’ 같은 단어를 새로 알게 된 것도 작지만 큰 수확이다. 그러니까 같은 서평이라 할지라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좀 더 멋들어진 표현이 좋다는 것이고, 더 좋은 것은 책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깊은 분석과 조망일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잘된 안내를 따라 더욱 의미 깊고 폭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득신과 같은 부류가 아님을 고백해야 한다. 아니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함을 부끄러워했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과, 좋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의 차이 말고도 엄청나게 나와는 동떨어진 독서의 세계가 존재함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읽은 책들을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간혹 만나는 몇 권의 책만 가지고는 그의 사고 체계를 줄그어가며 따라가야 하지만, 아직은 김득신의 ‘억만재’ 신화를 믿을 수밖에는 없다. 머리가 나쁘면 억만 번이라도 읽어서 내 것으로 체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책에 투영된 단편적 지식을 따라가기조차도 버거운 게 사실이다. 그만큼 격차가 느껴지긴 하지만, 체 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토(103쪽)이랄지, ‘실트’(129쪽) ‘간데라’(231쪽) 를 검색해 보고 싶어진달지,

 

프라우트 제도는 인도의 사상가이자 실천가인 사카르가 제시한 대안 모델이다. ‘진보적 활용론’을 뜻하는 프라우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동시에 지양한다. 그렇다고 ‘제3의 길’ 같은 노선은 아니다.(245쪽)

 

와 같은 글에서 나는 ‘프라우트’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알게 된다. 이렇듯 이 책은 책에 대한 소개뿐 아니라 우리에게 부족한 비타민을 시의 적절하게 투여할 의무가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전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세 권을 들고 그 책 속에 소개된 답사지를 따라 그대로 여행한 적이 있는데, 왠지 모방하는 면이 석연치 않은 점도 있었지만 그때로서는 굉장히 많은 걸 배우고 깨달은 적이 있다. 이 책도 나에게는 지식을 전달해 주는 노마드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책들만 따라간대도 나는 이미 간서치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와 나의 독서 편력이 거의 맞지 않은 덕분(?)에 공감하는 글도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깊은 끄덕임을 일으킨 문장이 있었다. 그것은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말한 ‘정보의 강조’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인용한 글이다.

 

“보다 많은 사실을 알면 알수록 실제의 지식에 보다 확실하게 도달한다는 슬픈 미신이 널리 퍼져 있다. 산발적이며 서로 상관없는 사실들이 학생들의 머릿속에 주입된다. 그들의 시간과 에너지는 사실을 보다 많이 주입받기 위해 소비되어 거의 생각할 틈조차 없다. 분명히 사실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허구적이다. 그러나 ‘정보’만으로는 정보가 없는 것만큼이나 사고에 장애가 된다.”(334쪽)

 

이 책을 읽으면서 감동과 느낌 대신에 늘 따라다닌 깊은 통찰에 대한 주눅이 이 인용구를 통해 조금은 누그러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도서관에 가 있을 저자가 보내 줄 다음 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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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똑똑한 세상을 만드는 미래 아이디어 80
지니 그레이엄 스콧 지음, 신동숙 옮김 / 미래의창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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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똑똑한 세상을 만드는
미래 아이디어 80

지니 그레이엄 스콧 지음/미래의 창(2011.11.17)

이제 갓 나온 책을 먼저 보는 재미는 더욱 쏠쏠하다. 게다가 책 내용이 평균 나이 100세 시대의 새롭고 재미있는 트렌드들을 미리 경험할 수 있게 장치해 놓았다니!

이 책은 미래에 우리가 경험할 것들을 참 알기 쉽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가벼운 상상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정말 희망적이면서도 가슴 뛰는 기분좋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를 사로잡은 몇 개의 트렌드를 소개하면,
‘하이브리드, 잡종의 진화’다.
“요즈음 여러 종자가 결합해 잡종이 생기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면서 동물학자와 과학자가 새로운 잡종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만들어진 잡종을 키워낼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제브로이드, 사바나 고양이, 레오폰, 재규렙, 홀핀, 그롤라 곰, 비팔로, 주브론, 야카우 등(46쪽)

이름만 들어서는 도대체 무엇과 무엇이 합쳐져서 된 종자인지 알지도 못할 만큼 엄청나게 다양하게 잡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예를 저자는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미래를 내나보는 우리에게 아주 포근한 신뢰감으로 다가오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한편 도덕적인 면도 살펴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원숭이 유전자와 인간의 유전자를 결합해 침프맨, 오랑맨, 배브맨, 골맨 같은 종자를 만들어내려 할지도 모른다.... 유전자의 반은 인간인 동물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생명체 창조에 관한 무한한 가능성을 불러일으켰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사회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그것이 바로 과학이 법과 윤리를 뛰어넘어가는 오늘날 우리가 고심해야 할 주된 문제이다.(48쪽)

단순히 미래에 대한 발칙한 상상만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까지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이는 매우 타당한 미래 예측 방향이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이 책은 다양한 용어를 알게 해 준다. ‘멀티태스킹’(다중 처리)랄지, ‘도파민’(58쪽), ‘부트 졸로키아’(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86쪽)이랄지, 2010년 최초의 민간 로켓 팰콘9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는 상식적 얘기들까지 기초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용어들은 융합 시대를 개척해 가고 있는 최근의 경향으로 봐서도 딱 맞아떨어지는 흐름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송도 신도시’를 언급하면서,
“송도 신도시는 빌딩, 자동차, 에너지 시스템까지 사실상 모든 것이 IT와 연결되는 하이테크 도시다. 기사에 따르면 네트워크 기술은 모든 가정, 학교, 공공기관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으며 고성능 원격 현장감 기술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시스코는 이를 ”스마트 + 커넥티드 커뮤니티“라고 부른다. (82쪽)

미래 예측 과학 도서에서 우리나라의 송도 신도시가 언급됐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히 고무적이다. 인천은 바다에 연한 여타의 외국 거대 도시처럼 크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본다면, 앞날이 상당히 밝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또 한편으로는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죽음을 맞추는 고양이가 있다니! 죽어가는 세포에서 나오는 화학 물질인 케톤의 냄새를 맡았던 것으로 분석된 고양이 오스카의 능력(133쪽)이랄지, 인도 성자 프라흐라드 자니가 물과 음식 없이 70년을 살았다는 AFP통신의 보도가 사실이라는 점은 정말 충격적이면서 굉장히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어떻게?

이 책은 우리의 궁금증을 해소해줄 뿐만 아니라 미래를 잘못 꿰지 않도록 디자인해 주는 역할도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빨리 미래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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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같이 걸을까
박민정 지음 / 스타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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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같이 걸을까



박민정/스타북스(2011.8.10)



처음에 이 책을 선택할 때는 나도 서른처럼 다시 생각하고, 좀 더 젊은 감각을 배워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읽어 나가면서 차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이 답지 않게 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생각이 깊으며 서른을 정말 알차고 아름답게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널리스트로서 또는 직장인으로서 그는 최첨단의 곳에서 누구보다도 더욱 뼈져리게, 그리고 더욱 치열하게 시간과 부딪히고 또 견디며 느낀다. 오히려 반생을 살아온 내가 부러울 지경이다. 그의 책 쓰기는 나의 멘토가 되어가고.



그녀는 주로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한다. 그러면서 참 많은 걸 배우고 깨우쳐 나간다.



그를 만나고 나오는 길, 눈이 내렸던 기억이 난다. 추워도 추운 줄 몰랐던 것 같다. 부유하고 넉넉해야만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는 것, 세상에 어려운 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부지기수라는 것. 다른 이의 생에 귀를 기울이고 작게나마 동참하는 건 살면서 꼭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139쪽)



참 소박하게 깨닫고 참 서른답게 느낀다. 나도 그 나이 때 그랬을까 싶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의 시집) 얘기도 나오지만 그녀는 서른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서른이기 때문에 젊음이 끝난 것이 아니라 잔치가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새로운 종소리를 얻은 양 그녀는 생기발랄하고 당차다.



소심한 에이형의 서른 살 여자가 느끼는 생활의 발견을 알아나가는 재미. 그것은 가끔 쏠쏠한 나만의 노하우를 접한 기분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녀만이 느끼고, 그녀만이 깨달아가는 과정을, 새로운 활력소라 여기면서 살아보고 싶어졌다.



아직은 인생의 여름인 그녀. 가을을 넘기고 있는 나. 그래서 그녀가 더욱 부러운 나.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동기생뿐 아니라 나와 같은 가을에게도 손짓을 하며 함께 걷자고 한다. 그가 사람을 만나서 느끼고 알게 된 모든 스키마를 어느 날 함께 공유하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그녀의 문화적 작업이 궁금해졌고, 그녀의 궁금증이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구절 하나 소개한다.



사람들은 왜 내 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까. 그리고 믿었던 사람이 내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왜 서운하고 화마저 나는 것일까. 나 또한 내 편 없어도 나만 옳으면 된다는 독불장군 식의 성격은 못 되기에 내 편이 전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다. 내 편을 얻었다는 것은 마음을 얻었다는 것.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까.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83쪽)



그녀는 그러면서 자기만의 노하우로 해결 방안을 소개하고 있다. 내 편이 되어주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그의 편이 되어 주라! 참, 어렵고 힘들지만 꽤 중요한 화두인 만큼 결코 소홀하게 다룰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외친다.



“내 편이 되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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