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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문화의 충돌과 융합 - 외래근대주택 100년의 이야기
민현석 외 지음 / 서울연구원 / 2021년 10월
평점 :
최근 대통령이 lh 행복 임대 주택을 묘사한것을 두고 여 야를 비롯 국민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분분했다. 20평형이 되지 않는 국민임대주택을 보고 최소 2명의 아이는 키울수 있겠다 라는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한편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발언이라고 이야기 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처럼 집에서 가족들이 다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기에 큰 평형대의 주택은 더이상 필요치 않다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의식주 중에 하나인 주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항상 민감한 뜨거운 감자와 같은 이슈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자가 소유에 대한 열망이 크기 때문에, 주택의 가격 변동과 수급에 대해 민감한 편이다.
이번 책은 주거 문화의 충돌과 융햡 이라는 책으로, 학술 서적에 가까운 책이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 이후 근대까지 우리나라의 주거문화가 어떻게 변동 해왔으며, 때로는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주거문화가 기존의 주거문화와 충돌하기도 하였으며, 그 충돌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도 하였음을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 이전 , 우리나라의 주거 문화는 초가집 또는 기와집이 대다수였다. 또한 한양 도성을 기준으로, 도성내부와외부의 빈부격차가 상당했으며, 상대적으로 도성내부에는 편의시설이 많아 외부에 비해 집 값도 비쌌다.
하지만, 강화도 조약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그리고 그 이후 일본과 체결된 여러 조약들에는 거류지 관련 조항들이 들어왔다. 예전에는 무역을 위해 강화도를 비롯 항구에만 거주 혹은 왕래할수 있었던 일본 중국인들이 소위 내지라고 불리우는 도성 내 외부에 거주 혹은 체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풍의 주택들이 이곳 저곳에 건설되기 시작하였고, 도성내부에서도 또다른 빈부격차가 시작된 것이다.
그 이후, 일본은 토지조사사업과 병참 기지화 정책을 통해, 더 많은 서울의 땅을 몰수 하기 시작하였고, 회사령 등을 통해 수많은 일본의 사업가들이 식민지 조선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보니, 완전한 일본풍의 주택보다는 서양의 주택 스타일이 가미된 개량형 주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그것은 또다른 빈부격차를 초래하였다.
일본의 패망이후, 적산주택(적이남기고 간 주택) 은 서울의 사업가와 일반 주민들에게 불하되었고, 그 주택들중 일부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적산주택은 서울 북부 인 종로와 왕십리 신당 등지에 분포해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우리의 고유 건축물 사이사이에 적산주택들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한 부분인 박용환 교수와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적산주택을 단순히 일본이 남기고 간 주택이기때문에 문화재로 보호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너무나 편협한 사고 라고 주장한다. 식민지 문화도 아프지만 우리가 마주해야할 역사의 한 페이지이기에 그것을 원형 그대로 잘 보존해서, 문화 산업으로 발전 시키는 것이 우리가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대비할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책의 뒷부분에는 일본 내지의 주거문화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그리고 우리와 비슷하게 타국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적산 주택을 문화산업으로 유지하고 있는 타이완의 모습이 나온다. 일본과 타이완의 주거문화 변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주거문화의 새로운 길을 찾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100년 전에도 주택을 투기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금처럼 편리한 교통을 가진 곳이나 편의시설이 많은 곳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기도 하였다. 주거 문화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단순히 어떤 주택이 지어졌는가 혹은 어떤 스타일의 주택이 지어졌는가가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어떠했으며, 그들이 그런 문화를 만들면서 추구 했던것은 무엇인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