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여신 백파선
이경희 지음 / 문이당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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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독특한 구성을 따라 작가의 시선으로 백파선이란 여성의 삶을 허락도 맡지 않고 들여다본 것 같아 못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작가가 불현듯 부산에서 후쿠오카에 가는 배에 올라 그녀를 만났음을 책의 첫머리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 연장선인마냥 한 현대 여성이 헤어진 남편에게 위자료를 받고자 시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처음에는 백파선의 다사다난한 삶에 공감하지 못한 채 그 여성의 눈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추적하였는데, 백파선의 이야기와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하여 교차해서 드러났기 때문인지 나 또한 무임승차하여 그녀의 삶을 들여다 본 것 같아 위와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내용이 거듭할수록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현대 여성인 '나'의 이야기와 가맛골 사람들의 여수장으로서의 고뇌를 치밀하게 그려낸 백파선의 이야기 사이에 거리감이 느껴졌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야무지고 단단한 백파선이 일본 영주에 맞서 보란듯이 자신의 일을 잘 꾸려가고 있노라면 '나'의 이야기가 그 흥을 깨고 있었다. 조선에서 온 여인인 백파선과 자신들을 일본으로 데려 온 영주의 수하인 다다오와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을 끝마쳤을 때, 이어지는 '나'의 이야기는 '나'가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갔더니 그 집에서 수백 년을 떠돌았던 백파선의 자기를 결국 발견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맥이 풀렸다. '그럴듯한 허구'에서 '그럴듯한'이 빠진 느낌이었다. 불편한 작위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쉽게 읽혔으며 그 후 여운이 많이 남은 이유는, 속알맹이인 백파선의 이야기가 아름답고 단단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료 한 글귀가 그녀에 관한 사실적 기록이라면, 이 책 한권은 사실상 작가의 상상력의 소산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비장미가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역사소설에서 보기 힘든 여성적 어조와 섬세한 심리 묘사 그리고 작품을 이끌어가는 절제된 어조 덕분이었다. 임제의 <원생몽유록>에서 꿈 속에서나마 단종과 그의 신하들이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하며 한을 풀 듯, 가맛골을 이끌었던 수장으로서는 훌륭한 삶을 살았던 백파선이 하늘에서나마 연인이었던 다다오를 만나 여인으로서의 한을 풀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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