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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 어느 기지촌 소녀의 사랑이야기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6월
평점 :
카투사 정태와 여주인공 아이린, 혜주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작가는 또 다른 캐릭터가 되어 사건을 관망한다. 소설의 첫 머리에는 1992년 경기도 동두천시 기지촌에서 벌어진 피살사건이 있다. 동네에서 양공주라고 불리던 금이 누나를 좋아했던 어린 소년 승훈은 그녀가 피살당한 이후 작은 사진 하나로 누나의 사건을 머금고 살아간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유사한 사건인) 아이린 사건이 일어나던 밤 승훈은 정태의 외출을 묵인함으로써 그때 그 억울했던 마음(금이 누나가 죽어갔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승훈은, 훗날 같은 처지인 아이린이 죽기 직전 상대 미군을 죽인 것에 대해 묵인함으로써)을 훌훌 털어버린다. 작가는 관조적인 입장으로 승훈에게 투영되어 아이린 사건을 바라보았다. 마음을 드글드글 긁던 ’윤금이 사건’을 꽃다운 20세 아이린이 기지촌을 빠져나올 수 있는 것으로 위안을 주었던 것 같다.
독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위안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현재까지 ’윤금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 거주해 있던 미군들이 허망하게 한국 소녀들을 죽이고 저지른 일에 비해 미미한 대가를 받는 상황은 윤금이 사건 외에도 익숙할 정도로 되풀이 되었다. 한국 정부와 미군 사이에 맺은 SOFA 규정은 한국 내에서 주한미군의 법적인 지위를 그들에게 맡기면서 그들의 무책임한 행위를 작은 물가에서 노는 황소개구리마냥 손쓸틈도 없이 풀어놓았다. 그렇게 벌어진 사건은 민족적인 감정으로 가득 찬 한국 국민들의 분노를 키웠다. 우리의 분노도 위안을 받았을까.
아이린 사건은 환영받지 못하는 미군의 한 병사가 ’파라다이스’의 한 여종업을 죽이려 하다 도리어 자신이 죽게 됨으로써 종결된다. 또한 그 사건은 이제껏 미군과 관련된 대개의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의뭉스러운 결과로 처리된다. 작가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소설 ’아이린’에서는 윤금이 사건을 발판으로 당시 시대상의 면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 글을 쓰는 작가는 아직도 2011년, 현재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소설은 아쉽게도 회상조의 어조로 그려지고 있으며 ’추억’하면서 되새김하듯 그 때의 사건을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해피앤딩으로 끝난 소설 속 주인공들은 행복하다. 과거의 끔찍한 사건을 마음 속에 지닌 채 저만의 삶을 살고 있다. 다만 독자로서 해결되지 않은 무언의 메시지가 아쉽다. 하지만 응어리졌을 윤금이사건, 제2의 윤금이사건, 제3, 제4의 …….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한껏 쏟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