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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전상국 지음 / 민음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왜 중·단편집이라고 생각지 못했을까. 이 책은 총 5개의 중·단편으로 이뤄져 있다. 꼬리를 무는 듯이 이어지는 소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꾀꼬리 편지. 남이섬. 춘심이 발동하야. 지뢰밭. 드라마 게임. 호기심이 가는 제목만 여저물어 이어붙어도 한 편의 재미난 소설이 뚝딱 만들어질 것 같다. 남이섬에서 - 꾀꼬리 편지를 받아 - 춘심이 발동한 사내들이 - 그려낸 드라마 게임. 그 전조는 지뢰밭에 있었다. 한 작가의 소설이기에 은연 중에 풍기는 정서가 하나로 있었고, 각각의 소설은 저마다의 소재로 혹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색깔을 달리했다. 이 책에 대한 해설을 해 놓은 우찬제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은빛 상상력이 노련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작품의 매혹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첫 장을 읽으면서 장편으로 이어질 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호흡이 길고, 한 인물에게 쌓인 사연의 깊이가 그윽했다. 무심코 넘어가기에는 발을 들일 깊이가 너무 깊어 조심스러웠다. 한참 읽고 나서야 초헌, 우목, 용씨(꾀꼬리 편지 中) 사이에 얽힌 관계가 이방인에게 낯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온전히 보존되고 싶은 마을 특유의 정취가 있었다. 그 정취는 쓸쓸한 사람들이 한둘 떠나가면서 쓸쓸하게 풀렸다. 분명 이야기는 끝이 났는데, ’현실’로 깨어난 내 시간은 단편이 아니었다. 참 오랜 시간 그네 마을의 이방인으로 살았던 것 같았다.
이야기 진화의 발원은 대체로 그리움이다. (43쪽)
나미에 대한 그리움을 앓고 있던 두 사내의 이야기가 ’남이섬’이다. 남의 섬이니 남이 장군의 섬에서 들리는 애먼 귀신 이야기로 굳어진 ’나미’라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남이섬을 빙글빙글 떠돌았다. 그 끝에 다시 ’나미’라는 마지막 조각으로 완성되는 그 느낌이란. 과거의 나미와 현대의 나미가 오버랩되면서 소설은 끝났다. 사연을 가진 나미의 이야기는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 다는 말을 남기 듯이 사라졌다. 몽환적이지만 즐겁지 않은 쓸쓸하기 짝이 없는 몽환이 소설의 시작과 끝으로 이어졌다. 초헌, 우목, 용씨 그리고 나미와 나미를 떠올리던 두 사내까지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중편 ’남이섬’에서 보았던 한 구절에서 다섯 이야기가 모두 시작되는 것 같았다. 『남이섬』의 발원.
’춘심이 발동하야’를 읽는 마음은 한결 간편했다. 남이선과 달리 짧은 단편이기도 했지만, 안병신이라는 사내의 발자취만 쫓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는 어디에 갔을까, 를 쫓는 친구들의 수소문담이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그의 전처였던 성춘양은 이전의 나미처럼, 혹은 이전이전의 여시처럼 농간이 대단했다. 이어지는 다른 이야기에도 한 명의 뚜렷한 여성은 소설의 중요한 흐름이 된다. ’드라마 게임’에서는 고모로 이어진다. 하지만 고모는 이전의 인물들처럼 희희낙락 웃다가 금세 떠나버릴 것 같은 가벼운 존재로 묘사되지 않는다. 가족 모두의 큰 어머니마냥 모든 일에 관여하고 직접 나서 일을 보란 듯이 처리한다. 자신의 몸이 좋지 않는 것을 알고 스스로 교통 사고를 위장하여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나’는 부모같은 고모의 부고소식을 듣고 고향을 찾는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형, 먼 나라에서 시집 온 형의 아내, 평생 땅굴을 파던 아버지와 거슬러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까지. 갖은 사연의 중심이다. 그네의 죽음으로 엉킨 실타래가 풀린다. 마음의 상처가 있던 가족들이 다시 손을 맞잡게 되는 계기가 된다.
꾀꼬리가 아닌 거위벌레의 작품이었다. 거위벌레 성충이 낳은 알이 우화되기까지의 집이며 먹이였다. 애벌레에서 성충이 된 뒤 불과 20여 일 사는 동안 거위벌레 암컷은 짝짓기를 한 뒤에는 곧장 산란할 나뭇잎 하나를 선택홰 오랜 시간 재단을 한다. 잎 하나를 이리저리 깔출없이 재고 난 뒤에는 잎의 위쪽 부분을 가로로 3분의 1쯤에서 삭삭 절단, 다시 잎의 아래위를 오르내리며 엽맥 깨물기. 마지막으로 잎 끝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알을 한 개 낳은 뒤 잎을 착착 말아 올려 만든 요람이다. 그렇게 거위벌레가 말아 놓은 잎이 간댕거리고 있으면 호기심 많은 꾀꼬리가 그것을 부리로 쪼아 땅에 떨어뜨리렸다 …… 꾀꼬리 편지. (26쪽)
얼마나 울렁거렸을까. 장윈의 ’길 위의 시대’를 읽고 우리 소설에서 이 같은 몽환적인 소설을 꿈꿨다. 큰 원을 그리면서 돌다가 정착하는 그 지점의 소설을 주워올린 전상국의 소설은 이전 『우상의 눈물』 단편집을 읽고 느낀 그 느낌을 고스란히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