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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심오 지음 / 자음과모음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심상미. 심오하다, 그녀는. 책의 끝머리에 ’끝까지’ 실감 나게 읽을 소설을 쓰고 싶었고, 그로 인해 작가의 스타일이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소설이 아닌가 싶어 내심 못마땅하기도 했다는 그녀는. 실감 나는 소설을 위해 과거에서 현재, 순간순간의 심정까지 몽땅 드러낸 주인공이 있는가 하면 주인공의 아이디어로 보이지도 않는 세계에서 해외 광고제에까지 참여하게 된 사라 국장이 있는가 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H를 만들어낸 그녀는. 기막힌 상사의 억지에 가까운 고악소리를 함께 들어야 했던 독자로서 바라보는 그녀는. 심오하다. 아니, 심오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렌 와이스버거, 문학동네)’의 앤드리아를 다시 만난 것처럼 김 대리, 김준희가 반가웠다. 그녀는 안정적이라는 이유 하나로 회사원을 꿈꾸었고, 어느덧 5년 차 광고회사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그녀의 일상은 카피 그 자체가 되었고, 꿈꾸다가도 꿈같은 기가 막힌 카피를 뽑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녀야 했다. 신선한 아이디어가 생명인 광고계의 분주함이 그녀의 손과 발을 따라 그려졌다. 물론 억지 활력까지 담아낸 분주함이었지만. 네이버 인기 웹툰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과도한 과장이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과장은 오히려 현실을 더 잘 드러내는 요소로 작용한다. 여기저기서 보여주는 분주함은 둘의 요소가 오버랩되기 충분했다. 모두, 풀쩍풀쩍 뛰어다니는 아이디어를 잡느라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능력있는 카피라이터였다. 조여오는 시간과 함께 고민하기 무섭게 뚝딱 신선한 카피를 만들어냈으며,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런 그녀에게도 어려움이 있었는데 바로 상사와의 관계였다. 자신을 이끌어준다던 김이사는 불현듯 사퇴를 하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새로운 본부장을 맞아야 했다. 새로 온 사라 본부장은 확인할 수 없는 뒷소문이 무성했는데, 이른바 로열패밀리라는 것. 실력은 있으나 라인이 다른 김대리는 어처구니 없이 면박을 받다가 회사에서 쫓겨날 입장이 되었다. 실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이 우선이 되어버린 그곳은 계급권력의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심오의 비하인드는 단숨에 끝이 난다. 덩달아 조마조마하고 콩닥이는 가슴을 안고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시간이 늦지 않게 달리며,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자신의 의견을 전해야 했다. 당당한 내 의견이 아니면 소용이 없었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것 같은 익숙하고도 어설픈 의견은 바로 묵살되었다. 단, 계급권력이 부패하게 작용하지 않을 때만. 그녀를 그렇게 괴롭히던 사라 본부장은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갔다.
어디에서 오는 걸까? 집에만 있으면 사랑받는 느낌,
당신이 전부였던 남자가 짓고 싶었던 스토리, E-스토리. (330쪽)
김 대리가 짓고 싶은 집이 다른 이의 성이 되었을 때, 비하인드의 세계는 물씬 떠돌아다녔다. 강 약 중간 약이 배어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