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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저넌에게 꽃을
다니엘 키스 지음, 김인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말을 많이 할수록 아쉬웠다. 단어 한마디까지 값진 의미를 지닌 앨저넌에게 꽃을 어떻게 주어야할까.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이 너무 많아 입을 꾹 닫고 싶었다. 좋은 소설이 입에서 새어나가지 않길 바랐다. 그저 작은 생쥐 앨저넌을 위한 꽃만 두고 나오고 싶었다. 남은 감동이 1ml도 쏟아지질 않도록. 바람이 찰랑찰랑 불 수 있도록.
’앨저넌에게 꽃을’은 남들보다 지능이 떨어졌던 찰리라는 사내에게 머리가 좋아지는 실험을 행했고, 그에 대한 결과보고를 적은 소설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찰리가 기록한 일기 형식으로 쓰여 있는데, 첫부분에는 맞춤법도 많이 틀리고 사용할 수 있는 단어도 한정되어 있어 마치 초등학생의 일기를 읽는 것 같지만, 실험에 성공한 뒤로 찰리의 지능은 급격하게 올라간다. 중간쯤에는 논문을 쓰듯 찰리의 보고서가 능숙하게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찰리의 정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볼 수 있다. 급속도로 좋아진 머리에 반해 상대적으로 정서적인 발달이 더뎌 다른 사람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그래서 머리가 좋아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화만 날뿐이다. 지능이 낮을 때 자신을 조롱했던 이들이, 이번에는 지능이 높다고 자신을 싫어한다고. 이후 찰리는 자신과 함께 같은 실험을 당했던, 똑같이 머리가 좋아진 생쥐 앨저넌이 뇌가 쪼글아들어 죽게 된 것을 목격한다. 이후 앨저넌처럼 찰리 역시 실험의 실패로 점차 머리가 나빠진다. 모두 1년 사이 일어난 일이다.
3월 5일
이 경가보고는 마니 쓰지 안아도 댄다면 조켓다 어째서인가하면 시간이 마니 걸리기 때무네 밤에 늦게 자서 아침에 일하러가면 몸이 피곤해저버린다. 가마으로 운반하는 롤빵이 가득 담긴 쟁반을 업질러서 김피가 소리를 막 질럿다 빵에 흑이 묻어서 김피는 굽기 전에 흑을 터러내지 안으면 안댑니다. 김피는 내가 먼저 실수를 하면 언제나 소리를 지르지만 내 친구이기 때문에 나를 조아합니다. 만약 내 머리가 조아지면 김피는 깜짝 놀라겟지. (17쪽)
5월 20일
누구 한 사람 내 눈속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이 없다. 뻐저린 적의가 느껴졌다. 전에 그들은 나를 조롱하며 내 무지와 우둔함을 경멸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지능과 지성을 갖췄다하여 나를 미워하고 있다. 그들은 도대체,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 (128쪽)
x월 x일
정상적인 감정과 분별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나면서부터 팔다리와 눈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을 놀리지 않는 사람들이, 태어나면서 부터 지능이 낮은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학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224쪽)
11월 21일
p.s. 니머 교수님한테 꼭 전해주세요. 사람이 선생님을 비웃어도 그러케 화를 내지 말라고요, 그러케 하면 선생님한테는 더 만은 친구가 생길 거니까. 남이 웃도록 내버려두면 친구를 만드는 것은 간단합니다. 나는 이제부터 갈 곳에서 친구를 만이 만들 생각입니다.
p.s. 어쩌다 우리 집을 지나갈 일이 잇으면 뒤뜰에 잇는 앨저넌의 무덤에 꼿을 바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34쪽)
이 소설에서 지혜를 획득하는 범위는 점차 확대된다. 작은 동물인 앨저넌이 수술을 통해 지능을 획득했으나 죽었다. 인간인 찰리 또한 수술로 똑똑한 사람이 되었다가 금세 불행을 얻게 된다. 인류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최초의 인간 아담은 선악과를 얻고 낙원에서 추방당한다. 여기서 ’앨저넌에게 꽃을’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추론할 수 있다. 지혜는 선악 판단의 기본 요소가 된다. 즉, 지혜를 얻으면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과 세계를 판단할 수 있는 변별력이 생길 수 있다. 즉, 인류는 지혜를 얻게 됨으로써 분별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로써 불행해진 사람들에 대한 축복 혹은 위안의 의미로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작은 생쥐 앨저넌에게 뿐만이 아닌 찰리 자신에게, 더 나아가 인류 전체에게까지 꽃을 바치고 싶었던 대니얼 키스의 마음이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