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에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
권하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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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악스러운 '말'의 힘이 무서웠다. 성훈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깨닫고 자행한 일이 발각되었을 때 성훈이 다니던 학교의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식의 상태에 대해 심각하게 무지하십니다그려. 강성훈 군은 우발적인 실수로 이런 일을 저지른 게 아니에요. 3학년 선배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그들의 사생활까지 캐고 다녔단 말입니다. 설문조사니 뭐니 악의거인 거짓말을 해가면서요. 몇몇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자면 강성훈 군은 그들의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문제를 집요할 정도로 캐냈다고 합디다. 피해 학생도 그중 한 명이었어요. 강성훈 군이 그걸 이용해서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했는지는 우선 본인에게 들어보아야겠지만, 이건 경악할 만한 사건입니다. 알아들으시겠어요, 어머니?" (66~67쪽)

이에 성훈의 마음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그 미묘한 왜곡. 대체 당시의 내 진심은 다 어디로 증발했을까? (67쪽) 

성훈이 순수한 진심으로 시작했던 일이 자퇴까지 감수해야했던 악질적인 사건으로 금세 둔갑했다. 성훈에게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기까지 대채 어떤 일이 있었던걸까?  

성훈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 의식을 많이 하게 되는 청소년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혼란은 겪게 되었다. 평범한 남자인줄 알았던 자신이 이성보다 동성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의식적으로 평범해지기 위해 여자 친구도 많이 사귀어 보았고 친구들과 자질구레한 또래의 남자라면 자연스러운 수다도 많이 떨었으나 그러한 노력이 모두 소용이 없었는지 우연히 본 한 남자 선배에게 푹 빠져버렸다. 그 3학년 선배와 친해지기 위해 거짓으로 설문조사를 벌였고, 선배가 있는 3학년 3반만을 대상으로 했던 설문조사가 한순간에 불어난 막무가내 소문처럼 3학년 전반을 대상으로 시행이 되자 그는 겁을 집어먹었지만 선배와 친해지기 위해 모든 거짓말을 감수하고 성큼성큼 거짓을 부풀려나갔다. 친형제처럼 친해진 상황에서 그 선배가 성훈을 부모님이 여행을 떠난 겸해서 집으로 초대했을 때, 성훈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맥주 캔을 들이마시고 놀다가 감정이 이성을 넘어선 키스를 선배에게 하고 만 것. 이후 성훈은 남자 선배를 유혹했다는 명목으로 학교에서 쫓겨났다. 누구에겐 얼굴을 찌푸릴 일이고, 성훈에겐 누구보다 고민이 많았던 스스로에게 죄스런 성장기였다. 하지만 세상은 다수가 이기기 쉬운 곳이었고 그들에게 성훈의 행동은 이상한 행동이 분명했다. 성훈의 그간의 행동은 결국 '경악할 만한 사건'으로, 성훈은 '의도적으로 악질스런 사건을 저지른 이단아'로 낙인 찍히고 말았다. 그 순간만은 세상은 소수의 '다름'을 인정해줄만큼 너그러운 곳은 되지 못했다.  

권하은의 장편 소설 '비너스에게'는 미성숙이 성숙으로 이어지는 청소년기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자각하는 한 소년에 관련된 드문 성장소설이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남들과 '다름'을 자각하고 그를 인정하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소년의 심리가, 또 그 소년을 둘러 싼 환경이 소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압박이 잘 드러나 미묘하게 공감을 하고 이 책을 읽는 독자로서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다행히 소년, 강성훈은 양양나라는 상담사에 의해서 마음을 열고 세상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마음의 치유 과정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 된다. 당신에게, '다름'을 '틀리다'고 치부해버리기 쉬운 세상에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을 좁히는 동시에 훌쩍 넓혀보고 싶지 않은가. 그간 많은 성장소설을 통해 공감하여 감동할 수 있었다면, '비너스에게'를 읽으면서 이해하고 알아가면서 또 다른 성장 일기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동성애'를 주제로 다룬 웹툰 '어서오세요. 305호에'이후로 한층 좁은 마음을 쾅쾅 망치질할 수 있던 그런 소설이었다.

성훈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었던, 비너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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