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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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 거리는 나비 한 마리가 뚝 떨어져 갖은 기억을 함께 떼어내는 마냥 소설은 흘러간 듯 했다. 언제 읽었는지 모르게 본 적 없는 이야기의 쌍둥이 섬을 이해하면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깊숙히 그 세계에 빨려 들어갔을 쯤에야 나는 ’그곳’은 매우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낯선 중국의 소설이었고 이질적인 문화적 배경이 많이 담겨 있어 혹 거부감이 들면 어쩌나 읽기 전에 고민도 많이 했는데 허튼 고민이 단번에 씻기는 순간이었다. 외국문학은 첫 소설이 그 나라 전체의 소설의 이미지를 결정 지을 때가 많아 꺼린 적이 많았는데, 이번 소설 장윈의 ’길 위의 시대’는 그렇게 따지면 정말 잘 만난 소설이었다. 정확하게 나의 취향 또한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 더욱 ’끌림’이 있는 소설이었다. 
  

 ’길 위의 시대’는 벽 한 쪽에 걸어놓은 폴라로이드 사진 몇 장과 같은 소설이었다. 운치있는 배경 하나하나에 사진을 걸어놓은 주인의 소중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서로 상이해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모이는 사연이 담긴 사진 모움. 한 시인 ’망허’의 자취가 모든 이야기에 아스라하게 파편의 기억처럼 남아 있었다. 2010년이, 어느덧 작년이 되어버린 이름이 끝날때, 그리고 새해가 시작할 때 나는 이 책을 읽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혹은 가장 처음으로 읽게 된 책이 되어 그 세상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원래 함께 해를 보러가기로 했던 사촌들과 수다를 떨고 있을 시간일 수도 있었고 열심히 모레 있을 시험 공부를 하고 있을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주 평범하게 나는 간혹 도착하는 새해 문자에 답장을 하면서 ’길 위의 시대’를 읽고 있었고 지금은 이렇게 그에 대한 감상평을 쓰게 되었다. 쉽게 읽히고 애잔하게 다가오는 소설이라 정말 그때 그리고 지금 읽기 딱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상적인 감정에 물든 것처럼 진해져 오는 새벽이 멋스럽게 느껴졌다. ’중국’이라는 가깝고 먼 나라를 배경으로 쓰였지만, 그 배경이 전혀 낯설지도 않았다. 내가 언젠가 보았을 법한 세상 속에서 이야기가 들린 것 같았고, 깔끔했다. 거리낌없이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마냥 단순한 것도 아니어서 중간에 한번, 깜빡 속았을 때는 소소한 웃음이 동반되기도 했다. 작가의 기억의 파편들이 아름답게 수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참 많은 기억들이 소설에 별빛처럼 연이어 반짝이며 숨어 있었다. 짧고 단조로운 소설이었지만 시를 써내리고 싶은 열망에 관한 고뇌가 조심스레 놓여 있는 것 같았다. 각각의 주인공으로부터 계속해서 회자되고 대화의 주제가 되어갔다. 시를 좋아하고, 쓰고 싶다는 사람은 매일 어떤 생각을 할지. 일상은 당연히, 일상을 넘어서는 무엇까지 생각하고 적어내고 싶은 욕구가 가득한 것일까.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건 시인의 본능이에요, 라고 말한 예러우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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