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많은 시작 민음사 모던 클래식 37
존 맥그리거 지음, 이수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과제때문에 허투루 시를 짓고 있던 참이었다. 몇몇 나열된 단어를 보고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아 자신만의 시를 쓰면 되는 것이고 참여에 의의를 두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써냈다. 그래도 다른 사람 앞에 내보여야 했기에 여간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괜히 얼굴은 화끈거리고 수번을 다듬고 나서야 내 시에 만족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시 볼때 부끄러운 시이기도 했다. 쉼표를 사용하기도 하고, 이어지지 않는 수식을 원래 사용이 능숙한 마냥 연이어 놓기도 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장면을 상상하며 모아모아 예쁜 단어에 폭 숨겨두고 싶었다. 


존 맥그리거의 ’너무나 많은 시작’을 읽으면서 그의 시를 읽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낯설기만한 시를 써낸다고 머리를 한껏 싸맨 다음이라서인지 문맥이 시처럼 어질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쉼표를 앞두고 쓰인 작은 단어에 많은 의미가 담긴 것 같았다. 문장을 이리저리 뜯어보니 존 맥그리거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더욱 쉽게 다가왔다. 그래서 읽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상황을 문장을 풍부하게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잠깐 짬을 내어 이 책을 읽었을 때 왜 그렇게 책이 읽히지 않았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존 맥그리거의 소설은 시와 같아서 문장을 천천히 함께 낭독했을 때 더 깊게 읽히는 그런 글이었다. 


작가 소개를 보고, 차례를 보았을 때 처음에는 당황하여 호기심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다른 여타의 소설보다 빽빽한 차례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처음 프롤로그를 읽었을 때 흥미로운 메리의 이야기는 금세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 여자 아이가 어느 집에 하녀로 가게되었다가 있었던 일을 들려준 이야기는 매우 이국적이었고, ’1’이라는 숫자를 넘어 데이비드라는 다른 남성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시작된 의미있을 ’나열’은 낯설지만 의뭉스럽게 느껴졌다. 솔직히 처음에는 어려웠다. 왜 이러한 물건이나 자취를 찾아 떠나고,떠나고,떠나고 있는지 좀 더 분명하게 짚어줬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데이비드의 행적을 조심스레 따라갔다. 그는 스무살이 넘어 자신이 입양된 자식임을 알았고 자신의 생모를 찾고 있었다. 


각 장에 제시된 물건이나 흔적들은 모두 데이비드의 삶의 기록이었다. 그의 인생사였고, 결국 그는 그의 생모를 만났다. 이 이야기는 저자 존 맥그리거의 첫작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데이비드와 그의 부인 엘리너의 딸 케이트 카터의 이야기다. 물고 이어지는 존 맥그리거의 재치가 재미있었다. 구성이 독특한 ’너무나 많은 시작’을 보면서, 나의 삶을 조그맣게 표시해놓은 조각은 어떤 것이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이 분명 있었다. 나중, 그 조각들을 따라 하루를 되짚으면 어떨지. 추억이란 이름으로 아름답게 빛나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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