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밀림무정의 앞머리에는 백석의 시 일부가 실려 있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간단한 강연을 들을 때마다 많은 분들이 추천해준 시라서, 고등학생 때는 수능에 나올 법한 시라서, 지난 여름에는 과제로 외워야 했던 시라서 여러모로 많이 보게된 ’나와 나타샹와 흰 당나귀’가 이렇게 적절하게 등장할 줄은 몰랐다. 그냥 김탁환의 힘있는 언어로 주인공 ’산’이 실로 내뱉은 한마디를 털썩 뿌리고 간 듯 싶었다. 백석의 시에서 아름다웠던 세상이 김탁환의 소설에서는 광할한 개마고원에서 펼치는 ’산’의 지독한 숙원으로부터 시작되는 강인한 세계로 펼쳐져 읽어나가는 마음부터 다시 고쳐먹어야 했다. 사람 몇은 그냥 죽일법한 숲 속의 호령자, 백호(’흰 머리’)를 쫓는 ’산’의 시선이 매우 매서웠기 때문이다. 눈을 뜨기 힘들정도로 흩날리는 눈발에 지친 사람들이 쫓기에는 힘든 여정이었다. 


실감나는 묘사에 실제로도 그럴까 싶을 정도로 가득 의심한채 소설을 보게 되었다. 백과 흑으로밖에 나뉘지 않는 세상에 해가 저물면 거센 눈발이 치는 산에서는 곧 죽음을 뜻한다. 잠깐 스치는 바람에 온 몸이 시릴만한 추위를 한껏 머금으면 그것도 죽음을 뜻한다. 고개를 들어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 그것도 죽음을 뜻한다. 얕은 상처를 돌보지 못해 풀석 쓰러져버린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무한히 펼쳐진 것만 같은 개마고원을 오직, 한 호랑이만을 좇아 살아 온 자가 바로 포수 ’산’이다. 그의 ’흰머리’에 대한 피로 문드러진 혈정은 세월을 무색하게 만든다. 어느덧 7년이 흘렀다. 


상대를 모든 것을 다 알아야지만 가능한 사랑과 증오, 종이 한 장 차이의 두 이름이 소설의 주축을 이룬다. 사방으로 대결구도가 팽팽하고 그 곳에 저자는 등장인물을 한 명씩 배치시킨다. 총성이 울리면 너나없이 덤벼들 삭막한 세상에 세심한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소설의 동적인 흐름이 모두 이 심리묘사로부터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독자를 매혹적으로 자신의 세상으로 끌어들이면서 ’산’은 깊숙히 발을 담근채 걸음을 옮기고 그에 따라 산을 뜨겁게 바라보던 주홍의 시선이 호랑이를 멸종시키고자 하는 히데오의 시선이 불의의 사고로 팔을 잃고 노름에 빠져든 산의 동생 수의 시선이, 그렇게 많은 시선들이 밀림을 바라본다. 밀림무정(密林無情). 과연 밀림에는 사사로운 정 따위는 없는가. 오히려 가장 팽배한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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